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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귀하께
요즘도 더욱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전부터 귀 기관을 통해 전달받은 바 있는 “해류 연구용으로 보이는, 붉은 밀봉 왁스가 붙은 맥주병”에 관해 보고드립니다.
해당 병을 발견 즉시 신고하라는 지침은 우리 섬 주민 전체에 이미 공지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본섬 남쪽 해안에서 별도로 포장된 듯한, 수지 밀봉 왁스가 붙은 맥주병 세 개가 떠밀려온 것을 발견하여 이와 같이 보고드립니다.
병들은 각각 서로 약 2km에서 4k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되었으며,
어떤 것은 모래에 파묻혀 있었고, 또 어떤 것은 바위 틈에 단단히 끼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보아하니 꽤 오래전에 이곳으로 떠밀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병 안에 든 내용물은, 귀 기관의 안내대로라면 관제 엽서가 들어 있어야 하겠지만,
이번에 발견된 것들에는 그렇지 않고, 공책을 찢은 듯한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떠밀려온 날짜나 시간 등을 기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연구에 참고가 될까 하여, 세 병 모두 밀봉 상태 그대로,
마을 예산으로 송부해 드립니다.
부디 잘 받아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월 ○일
××섬 마을 사무소
해양연구소 귀중
◇ 첫 번째 병의 내용
아아…… 마침내 이 외딴섬에도, 구원의 배가 도착했습니다.
커다란 두 개의 굴뚝이 솟은 배에서 보트 두 척이 거센 파도 위로 내려졌습니다.
배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 틈 사이로,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 저희 쪽을 향해 하얀 손수건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이 이곳에서도 똑똑히 보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저희가 맨 처음 띄운 맥주병 속 편지를 보시고 구하러 와주신 게 틀림없습니다.
큰 배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금 막 구하러 가겠다는 듯 높고 높게 뱃고동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 소리는 이 작은 섬의 새들과 벌레들을 한순간에 날아오르게 했고, 멀리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저희 둘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심판 날의 나팔소리보다도 두려운 울림이었습니다.
저희 눈앞에서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신의 눈빛과 지옥의 불꽃이 동시에 번뜩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아. 손이 떨려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흘러 시야가 흐려집니다.
저희 둘은 지금부터 저 커다란 배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구하러 와주신 선원들이 잘 보이도록 꼭 끌어안은 채로,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져 죽을 것입니다.
그러면, 늘 그곳을 헤엄치던 상어가 곧 저희를 먹어치우겠지요.
그리고 남는 것은, 이 편지를 담은 맥주병 하나뿐이 되어 물 위에 떠오르고,
보트에 탄 분들이 그걸 발견해 건져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받는 자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시고 체념해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멀리 고향에서 일부러 저희를 구하러 와주신 모든 분들의 친절에 대해서도,
이런 짓을 하게 된 저희 두 사람은 정말이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부디 부디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어머니 품에 안겨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기쁨의 순간이 찾아온 바로 그때,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저희의 불행한 운명을 가엾게 여겨 주세요.
저희는 이렇게 저희의 몸과 영혼을 벌하지 않으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이 외딴섬에서 저희 둘이 저지른 죄는 너무도 끔찍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더 이상의 참회를 허락해 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희 둘은 상어의 먹잇감이 되는 것밖에 가치가 없는, 미쳐버린 인간일 뿐이니까요.
안녕히 계세요.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는
슬픈 두 사람 드림
아버지께
어머니께
모든 분들께
◇ 두 번째 병의 내용
아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신이시여.
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제 죽음 말고는 정말로 없는 것입니까?
제가 '신의 발판'이라고 부르는 그 높은 절벽 위에 혼자 올라가, 늘 두세 마리의 상어가 헤엄치고 있는 그 끝없는 심연을 내려다본 것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곳에서 당장이라도 몸을 던지려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도 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여운 아야코의 얼굴이 떠올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위 가장자리를 천천히 내려오곤 했습니다.
제가 죽으면, 분명 아야코도 곧 뒤따라 몸을 던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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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아야코, 둘이서 그 보트 위에 타고 있다가, 동행하던 유모 부부와 선장님, 운전사 아저씨들이 모두 파도에 휩쓸려간 채, 이 작은 외딴섬에 표류해온 지 벌써 몇 년이 되었을까요.
이 섬은 1년 내내 여름 같아서,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구분이 어렵지만, 아마 십 년쯤은 지난 것 같습니다.
그때 저희가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는, 연필 한 자루와 칼 한 자루, 공책 한 권, 돋보기 하나, 물이 들어 있던 맥주병 세 개, 작은 신약성서 한 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행복했습니다.
이 작고 푸른 식물들로 무성한 섬에는 드물게 보이는 큰 개미 몇 마리를 제외하곤, 저희를 괴롭힐 만한 새나 짐승, 벌레 같은 건 단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열한 살이었던 저와 일곱 살이 막 된 아야코 둘이 지내기에는, 먹을 것이 넘칠 만큼 많았습니다.
구관조나 앵무새, 그림에서만 본 극락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화려한 나비들이 있었고,
맛있는 야자 열매, 파인애플, 바나나, 붉고 자주색의 큰 꽃들과 향기로운 풀들,
또 크고 작은 새의 알들이 1년 내내 어딘가에는 늘 있었습니다.
새나 물고기 따위는 나뭇가지로 툭툭 치면 얼마든지 잡혔습니다.
저희는 그런 것들을 모아와 돋보기로 햇빛을 마른 풀에 모아 흐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 구워 먹었습니다.
그러다 섬 동쪽의 곶과 바위 사이에서, 썰물 때에만 맑은 샘물이 솟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근처 모래사장의 바위틈에, 부서진 보트를 이용해 작은 오두막을 지어, 부드러운 마른 풀을 모아 아야코와 둘이 함께 잘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오두막 바로 옆의 바위 옆면을 보트의 낡은 못으로 네모나게 파내어 작은 창고처럼 사용했습니다.
결국엔 겉옷도 속옷도 비와 바람, 바위 모서리에 찢기고 닳아 없어져,
둘 다 진짜 야만인처럼 알몸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저희는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함께 ‘신의 발판’ 절벽에 올라가, 성경을 읽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후 저희는 아버지 어머니께 편지를 써서, 소중한 맥주병 하나에 담아,
단단히 수지로 봉하고 나서, 둘이서 몇 번이고 입을 맞추고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 병은 섬을 둘러싸는 해류를 따라 점점 멀리 바다로 나아가, 다시는 이 섬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누군가 구하러 오실 때 눈에 띄도록, ‘신의 발판’에서 가장 높은 곳에 긴 나뭇가지를 세우고,
항상 푸른 나뭇잎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때때로 저희는 다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세 화해했고, 함께 ‘학교 놀이’ 같은 것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아야코를 학생 삼아, 성경 말씀이나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성경을 신이자, 아버지이자, 어머니이자, 선생님으로 여겼고,
돋보기나 맥주병보다 훨씬 소중히 여기며,
바위 속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습니다.
저희는 정말로 행복했고, 평온했습니다.
이 섬은 천국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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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외딴섬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 속에, 무서운 악마가 숨어들어오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정말로 스며들어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아야코의 몸이 기적처럼 아름답게 자라나고, 눈부시도록 고운 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 뚜렷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때는 꽃의 정령처럼 찬란하게, 또 어느 때는 악마처럼 아찔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슬픔과 어둠이 제 마음속에 서려 들었습니다.
“오빠…”
아야코가 그렇게 부르며, 죄 하나 없는 맑은 눈빛을 반짝이며 제 어깨에 뛰어드는 순간마다,
제 가슴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두근거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매번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은 뭔지 모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야코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예전과는 전혀 다른… 더없이 애틋하고, 눈물에 젖은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눈길 속에서, 그녀는 제 몸에 닿는 것을 부끄럽고, 어딘가 슬퍼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후로 우리는 전혀 다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이유 없이 서로 우울한 얼굴을 하고, 가끔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이 외딴섬에 둘만 있다는 사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과 기쁨, 쓸쓸함으로 뒤섞여 다가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눈앞이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처럼 어두워졌고,
신의 계시인지, 악마의 장난인지도 모를 어떤 충격이 가슴을 내리치듯 몰려와,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이 번쩍 들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그런 마음을 뚜렷이 알고 있으면서도,
신의 벌이 두려워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 뒤에 구원의 배가 도착하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을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맑고 고요한 오후,
바다거북의 알을 구워 먹고, 모래밭에 다리를 쭉 뻗고 멀리 바다 위를 흘러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던 중,
아야코가 문득 말했습니다.
“오빠… 우리 둘 중 한 명이 병에 걸려 죽게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말을 하며 아야코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군 채,
뜨거운 눈물을 후두둑 모래 위에 흘리며,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픈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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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숨이 막힐 듯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듯 요동쳤으며,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일어서서,
조용히 아야코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신의 발판’이라 부르던 절벽 위로 올라가,
머리를 쥐어뜯고, 바위에 엎드려 울부짖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아야코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런 말을 제게 했던 것입니다.
제발… 저 순수한 소녀를 벌하지 마소서.
언제까지나 맑고 깨끗하게 지켜주소서.
그리고 저도……
아아… 하지만… 하지만…
신이시여.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아야코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죄입니다.
하지만 제가 죽게 되면, 아야코는 더욱 깊은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 신이시여……
제 머리는 모래에 엉겨 붙고,
제 배는 바위에 짓눌려 있습니다.
만약 제 죽음을 바라는 이 기도가 당신의 뜻에 부합한다면,
지금 당장 저를 벼락으로 태워 없애주소서.
숨겨진 것을 굽어보시는 신이시여,
부디 당신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시고,
그 징표를 이 땅 위에 나타내주소서……”
그러나 신은 아무런 응답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만이 실처럼 흘러가고 있을 뿐,
절벽 아래로는 새파랗고 새하얀 소용돌이치는 파도 사이로,
헤엄치는 상어의 지느러미와 꼬리만이 가끔씩 반짝이며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 푸르고 깊은 심연을 한없이 내려다보는 동안,
언제부터인지 제 시야는 빙글빙글 어지러워졌습니다.
그만 휘청거리며 파도 거품 속으로 떨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절벽 끝을 붙잡고 버텨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절벽 가장 꼭대기로 단숨에 뛰어올랐습니다.
그 꼭대기에 세워 두었던 나뭇가지와,
그 끝에 매달아 두었던 마른 야자 잎을 단번에 꺾어 내리고,
그대로 저 멀리 깊은 심연 속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제 괜찮아.
이렇게 해두면, 구원의 배가 와도 그냥 지나쳐 갈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무언가에 씌인 듯 낄낄 웃으며,
짐승처럼 절벽을 달려 내려와 오두막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시편이 펼쳐져 있던 성경을 들어,
바다거북 알을 구운 불씨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마른 풀을 던져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지도록 아야코의 이름을 부르며,
모래사장으로 달려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야코는,
멀리 바다 쪽으로 뻗은 곶의 큰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르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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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세 걸음 뒷걸음질치며 휘청거렸습니다.
거친 파도에 휩쓸린 자줏빛의 거대한 바위 위,
석양을 받아 피처럼 붉게 빛나는 소녀의 등은,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점점 밀려오는 조수에 무릎 아래 해조류가 씻기고 떠내려가는 것도 모른 채,
황금빛 파도를 온몸에 맞으며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숭고하고, 눈부시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몸을 돌처럼 굳힌 채, 한동안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아야코가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
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정신을 잃은 듯한 상태로 달려가며,
조개껍데기로 가득한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 기어올라,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곶의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울부짖는 아야코를
두 팔로 꼭 껴안고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간신히 오두막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오두막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성경과 마른 풀들과 함께 하얀 연기가 되어
푸른 하늘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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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우리 둘은, 육체도 영혼도 진짜 어둠 속으로 내몰려,
밤낮없이 슬퍼하고, 이를 악물며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서로를 껴안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하며 함께 슬퍼하는 것은 고사하고,
같은 곳에 누워 잠드는 것조차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성경을 불태운 벌이었을 것입니다.
밤이 되면, 별빛과 파도 소리, 벌레의 울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마치 성경의 말씀을 속삭이는 듯 우리를 에워싸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잠조차 들 수 없는 상태로,
멀리 떨어져서 괴로워하는 우리 둘의 마음을
누군가가 엿보고 있는 듯한, 무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긴 긴 밤이 지나면,
이번에는 똑같이 긴 긴 낮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이 섬의 햇살도, 노래하는 앵무새도, 춤추는 극락조도,
보석처럼 빛나는 벌레도, 나방도, 야자수도, 파인애플도,
꽃의 색도, 풀의 향기조차도, 바다도, 구름도, 바람도, 무지개도—
모두가 아야코의 눈부신 모습과,
숨이 막힐 듯한 피부의 향기와 뒤섞여
끝없이 소용돌이치며 빛나면서
사방에서 저를 덮쳐 죽이려 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저와 같은 고통에 사로잡힌 아야코의 아련한 눈동자가
신과 같은 슬픔과, 악마와 같은 미소를 담고서
끝없이 끝없이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연필심이 거의 닳아 없어져서, 더는 길게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토록 깊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신의 계율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우리 둘의 진심을
이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려고 합니다.
내일이라도, 악마의 유혹에 굴복하게 되기 전에……
적어도 두 사람의 육체가 아직 맑고 깨끗한 이때에……
✲
아, 신이시여……
이토록 지독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 둘은 병치레 하나 없이
날이 갈수록 살이 오르고, 건강하게, 아름답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섬의 맑은 바람과 물, 풍족한 먹을거리,
아름답고 즐거운 꽃과 새들에게 둘러싸여……
아아, 이 얼마나 끔찍한 형벌입니까.
이 아름답고 즐거운 섬은 이제 완전히 지옥입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왜 우리 둘을, 단 한 번에, 차라리 죽여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타로 씀
◇ 세 번째 병의 내용
아빠, 엄마.
저희는 사이좋게, 건강하게 이 섬에서 지내고 있어요.
어서, 구하러 와 주세요.
이치카와 타로
이치카와 아야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