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텐 당연한 일이지만… 당신까지 이걸 겪을 필요는 없어.”

「폭풍 / 세라 엘리자베스 어터슨」


“한밤중에 걸어 다니며 쇠사슬을 달그락대고

지옥의 횃불을 휘두르며 살인자의 침상을 밝히는 형상들.”

「Pleasures of Imagination」Mark Akenside



17—년 6월 12일 저녁, 몽브륀(Monsieur de Montbrun) 씨의 저택에서는 그의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는 즐거운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 조카는 오랜 시간 애정을 품어왔던 여인을 신부로 맞아 제단 앞으로 이끌었다. 이날 기쁨의 장소가 된 그 저택은 가스코뉴 지방, ——라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저택은 동맹전쟁 시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로, 외관은 견고함과 거주 편의를 동시에 추구하던 당시 건축 양식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었다. 낭만적이지만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위치한 까닭에, 몽브륀 씨의 가족은 대부분의 사교와 오락을 스스로의 내부에서 해결해야 했다. 가족 구성원은 솔직하지만 따뜻한 성품을 지닌 퇴역 군인인 몽브륀 씨, 그의 조카(남자 자식이 없었던 그는 이 조카를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외동딸 에밀리 양이 전부였다. 에밀리는 솔직하고 정 많으며, 다정한 성격을 지녔지만, 다소 몽상가적인 면이 있었다. 가족들은 시골의 다양한 일과 오락에 몰두했고, 특히 이 지역이 식물학 연구에 있어 무궁무진한 자원을 제공했기에 식물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인근에 거주하는 몇몇 외딴 가족들과는 깊은 교류를 맺지 않았다. 간혹 가까운 이웃과의 왕래는 있었지만, 먼 거리에 사는 이들과는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몽브륀 씨의 양아들 테오도르(Theodore)의 결혼이 다가오자, 이 지역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고, 사촌의 결혼식을 어떻게든 성대하게 치르겠다는 결심을 한 에밀리는 가능한 모든 이웃들을 초청하려 애썼다. 그 결과, 초대장은 사방으로 발송되었고,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는 몽브륀 가족이 처음 보는 얼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름조차 낯선 이들도 있었다.


에밀리는 모든 손님에게 예의 바르고 따뜻하게 대했으나, 그중 한 여성에게는 유독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마담 드 누녜즈(Madame de Nunez)였는데, 최근에 이웃에 정착한 인물로, 사회적 활동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왈롱 근위대 소속 스페인 장교의 미망인으로 추정되었으며, 그의 죽음을 깊이 슬퍼해 수년이 지나도록 검은 상복 차림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녀가 왜 스페인을 떠나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에 정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추측도 무성했다. 이사벨라 드 누녜즈는 28세가량으로 키가 크고 균형 잡힌 몸매를 지녔다. 그녀의 외모는 인상적일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했지만, 섬세한 관찰자는 그녀의 얼굴에서 인간의 강렬한 감정이 새겨진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고통에 눌린 자존심, 그리고 어떤 숨겨진 죄의 흔적처럼 느껴지는 찡그린 이마와 피하는 눈길—그것들은 그녀가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을 받을 때마다 더욱 뚜렷해졌다.


마담 드 누녜즈는 그 전까지 한 번도 몽브륀 저택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에밀리 또한 그녀의 존재를 눈여겨본 적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연회에서 그녀를 직접 마주한 후, 에밀리는 순식간에 그녀에게 매혹되었고 정성을 다해 친절을 베풀었다. 마담은 그 다정함에 감사하면서도 품위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응대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무더웠고, 숨을 쉬기조차 불편할 정도로 눅눅하고 답답한 공기는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특히 마담 드 누녜즈는 그런 공기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듯했다. 잠시 동안 보였던 그녀의 명랑한 표정은 서서히 사라졌고,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에 그녀는 때때로 완전히 멍해지거나, 아무 이유 없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불안한 분위기를 떨쳐내기 위해 사람들은 춤을 제안했고, 음악이 울려 퍼지자 금세 활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춤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고되었던 폭풍이 맹렬히 몰아쳤다. 인근 산맥에 부딪혀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에 손님들, 특히 여성 손님들은 큰 공포에 사로잡혔다. 마치 하늘이 갈라질 듯한 천둥과 비, 그리고 강 주변을 뒤덮은 번개는 그 장면을 더 끔찍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의 지하 통로와 아치형 지하실로 피신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천둥소리로부터 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오직 마듬 드 누녜즈만은 조금도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이전에 그녀를 괴롭히던 불안과 동요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의 무감각에 가까운 체념이 자리잡았다. 다른 젊은 여성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떨고 있을 때, 그녀는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내면의 고요가 아닌, 고통을 견디기 위한 절제된 인내의 결과였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고, 폭풍은 점점 더 강해졌다. 몽브륀 씨는 손님들에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중 귀가하지 말고, 가능한 한 오늘 밤은 저택에 머무르자고 제안했다. 비록 저택이 넓지는 않았지만, 간이침대와 방을 나눠 쓰는 방법으로 손님들이 어느 정도 편안히 묵을 수 있게 하려는 배려였다. 게다가 예정되었던 마차들이 전혀 도착하지 않았고, 도로 사정 또한 엉망이었기 때문에, 이 제안은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이었다.


모든 손님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단 한 사람만이 강하게 반대했다. 바로 마담 드 누녜즈였다. 그녀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을 만큼 단호히 귀가를 고집했다. 마차가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폭풍 속을 혼자서라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했다. 몽브륀 저택의 하인들이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녀가 사는 지역과의 교통은 몇 시간 내에는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이 제안에 동의했으나, 그녀의 완강한 태도는 연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의문을 남겼고, 각자의 추측과 수군거림을 불러일으켰다.


각자의 숙소 배정은 금세 마무리되었고, 대부분의 숙녀들은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기꺼이 휴식을 취하러 물러났다. 에밀리는 여전히 그녀의 매혹적인 새 친구에게 꾸준히 관심을 보였고, 함께 방을 쓰자며 따뜻하게 권유했다. 에밀리는 자신이 소파에서 잠을 자겠다고 고집하며, 침대는 마담 드 누녜즈가 사용하라고 청했다. 그러나 마담은 이 제안에 단호히 반대하며, 책 한 권만 곁에 둔 채 응접실 중 한 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녀는 이 고집스러운 결정을 굽히지 않는 듯 보였지만, 에밀리는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만약 그녀가 정말로 응접실에 머물겠다면 자신도 함께 있겠다고 선언했다. 밤새 이야기하며 새벽을 기다리거나, 그녀의 하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에밀리의 제안—혹은 결심—은 이사벨라의 얼굴에 뚜렷한 불쾌감과 당혹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그녀는 다소 짜증 섞인 어조로, 에밀리 양이 불편을 겪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내 다시 원래의 예의 바른 태도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내 방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이미 대부분의 손님들이 물러난 터라 에밀리가 여느 때처럼 친절하게 그녀를 그 방까지 동행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사벨라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눈에 띄게 격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잇기 힘들어했지만,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에밀리… 왜 굳이 이 밤을 나랑 함께하려는 거지? 나한텐 이 밤이 벌 같은 거야. 나한텐 당연한 일이지만… 당신까지 이걸 겪을 필요는 없어.” 마담이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마담? 무서운 시간은 이미 지나갔어요. 천둥도 거의 멈췄고, 번개도 덜하잖아요. 그리고 저기… 보세요, 서쪽 하늘엔 아직 여름 해거름이 남아 있어요.” 에밀리는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폭풍은 지나갔으니, 편하게 쉬세요. 곧 잠드실 수 있을 거예요.” 


“쉬라니?” 마담은 거의 목이 메인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모르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이 밤이 얼마나 끔찍한 기념일인지.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당신에겐 지금 이게 다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나처럼 직접 느끼게 될 거야. 여섯 해 동안 이 밤을 겪은 내가 어떤지 보면… 지금도 그 기억만 떠올려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아… 더는 말하지 않겠어.”


그녀는 갑자기 열려 있던 문 쪽으로 달려가 거칠게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에밀리는 그 기이한 행동에 놀라 말을 꺼낼 틈도 없이, 마담 드 누녜즈는 그녀의 두 손을 강하게 움켜쥐고, 허공을 향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외쳤다.


“공포의 신들이여, 보증해 주세요! 나는 이 끔찍한 장면을 이 여자에게 일부러 보여준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 그녀는 반드시 침묵을 맹세해야 해요. 그래야만 해요!”


마담은 마들모아젤 드 몽브륀, 즉 에밀리를 향해 야생 짐승처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어리석게 굴었니, 에밀리. 왜 굳이 내 방에 같이 자겠다고 고집한 거야? 독사를 네 품에 안고 자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아니면 자정의 암살자가 네 가슴에 칼을 겨누었더라도… 그 편이 나았을 거야. 적어도 그런 죽음은 순식간일 테니까. 하지만 오늘 밤 네가 보게 될 이 끔찍한 광경은, 그런 죽음보다도 더 잔혹하고 고통스러울 거야. 그래, ‘보게 될 거야’—왜냐하면, 지옥의 모든 악령이 오늘 밤 저지르는 광란의 의식을… 넌 이제 피할 수 없거든. 네가 직접 선택한 길이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에밀리는 외쳤다. 그녀는 자기보다 마담의 정신이 상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병 때문이든, 오늘 하루 겪은 일 때문이든 그녀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담 드 누녜즈 몇 분간 침묵하며 감정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마침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에밀리… 내 친구야. 그렇게 불러도 되는걸까? 너의 미래와 행복을 내가 원치 않게 짓밟게 됐으니까… 내가 지금 흔들리는 게,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마. 슬픔은 컸지만, 내 이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어. 차라리 미쳐버리는 게, 이 모든 기억을 잊고 사는 게… 어쩌면 나한테는 축복이었을 거야. 하지만 운명은 그런 도피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내가 마주해야 할 일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야.”


“아뇨, 마담,” 에밀리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책하지 마세요. 아무리 큰 죄라도, 신앙은 용서와 위로를 줄 수 있어요.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그보다 훨씬 더한 죄도 씻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 종교는 방황하는 사람을 품어주지.” 마담이 조용히 대답했다.

“이방인에게도 집이 되어주고, 피로 물든 죄인조차 품에 안아주지. 하지만… 나 같은 죄는 어떡하지? 어떤 회개로 이 죄를 씻을 수 있을까? 아니, 이럴 시간 없어.” 마담은 말을 바꾸며 덧붙였다.

“곧 자정이야. 탑 위 시계가 그 시간을 알리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이 말을 남기고 그녀는 곁방에 딸린 기도실로 들어갔다. 에밀리가 평소 기도를 올리던 작은 제단에서 상아로 된 십자가를 발견한 그녀는, 그것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려 있는 에밀리의 손을 다시 움켜쥐며, 저음이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맹세해. 오늘 밤, 이 특별한 밤에 네가 보게 될 모든 걸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지옥이 두렵든, 천국의 약속이 유혹하든… 내가 무덤 속에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당장.”


에밀리는 이렇게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맹세를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녀가 말끝을 고르는 사이 마담 드 누녜즈는 더 강하게 손을 쥐며 거칠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맹세해! 아니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거야.”


그때 에밀리는 마치 기도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듯한 낮은 메아리를 들었다.


“…맹세해.”


공포에 사로잡힌 에밀리는 거의 의식을 잃을 듯한 상태로, 이 이성을 잃은 듯 보이는 여인이 자신에게 시킨 그 무시무시한 맹세를 따라,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밀리가 그렇게 무거운 맹세를 입 밖에 내자, 마담 드 누녜즈의 동요는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십자가를 다시 제단 위에 올려놓고, 거의 기운이 빠진 듯 무릎을 꿇고, 생기를 잃은 에밀리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 조용히 엎드렸다. 그리고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에밀리… 방금 내 행동은 미친 짓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내가 아니라, 당신의 운명이 그런 상황을 만든 거야. 지난 6년 동안… 나는 이 밤에 벌어질 일을 혼자 품고 살아왔거든.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그 일을 말할 수가 없어.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전까지는, 당신의 맹세… 꼭 기억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비밀은 당신 마음속에 묻혀 있어야 해. 내가 왜 당신 집에 머무는 걸 꺼렸는지 눈치챘을 거야. 왜 같은 방을 쓰는 걸 피하려 했는지도… 곧 이유를 알게 될 거야.

부디 나를 미워하지 말아. 나도 어쩔 수 없어. 내 안의 공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만 했어. 세상의 눈은 여전히 두렵거든. 그 눈 앞에서는 내가 나 자신을 잃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그래서… 당신에게 그런 맹세를 부탁했던 거야.”


그러나 이때, 그녀의 말을 끊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탑 위 시계가 자정을 알리고 있었다. 종소리가 막 끝나기도 전에, 자갈 깔린 마당 너머로 천천히 굴러오는 마차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마담은, 에밀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이 잠갔던 방 문 쪽으로 달려갔다.


에밀리는 곧 이어,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참나무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상황을 이해할 틈도 없이, 단단히 잠가두었던 방문이 천천히 삐걱이며 열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에밀리는 바닥에 쓰러지며 의식을 잃었다.


인간의 육신에게 다행인 점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 앞에서는 무의식이라는 피난처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마주할 수 없는 공포를 피하려 본능적으로 의식을 끊어낸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마담 드 누녜즈는 하인들과 함께 몽브륀 씨의 저택을 떠났다. 밤새 몰아쳤던 폭우가 잦아들면서, 그녀의 하인들은 이제 주인의 지시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몽브륀 씨에게 형식적인 인사만 간단히 남긴 채, 다른 사람들의 안부도 묻지 않고 떠났다.


평소 아침 식사 시간, 에밀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는 그녀의 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딸은 어젯밤 그대로의 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거의 생명이 없는 듯 보였다.


즉시 의료진이 불려졌고, 그녀는 겨우 의식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주변을 둘러본 직후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다시 깊은 무감각 상태에 빠져버렸다. 자극제와 강장제를 여러 차례 투여한 끝에, 에밀리는 다시 눈을 떴다. 그러나 이번엔 고열과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고, 며칠 후 그녀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 병의 초기, 잠시 정신이 또렷해졌던 한 순간,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대로, 맹세로 묶인 진실만큼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그녀를 미쳐가게 만든 그 끔찍한 밤의 기억은—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마담 드 누녜즈 역시 오래지 않아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 역시—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