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가 그놈을 해치웠습니다……”

「붉은 알약 / 유메노 큐사쿠」



※ 아래 이야기는 유메노 큐사쿠의 단편 모음집 『시골의 이야기』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번역에 약간의 묘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작가 본인은 지어낸 이야기라기 보다는 경험담이자 혹은 살면서 들은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유메노 큐사쿠가『시골의 이야기』말미에 남긴 아래의 말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모두 제 고향 기타큐슈의 모 지방에서 일어난 일로, 제가 견문한 것 뿐입니다. 기사로 신문에 실린 것도 있지만, 얼빠진 부분이 도리어 도에 사는 분들의 흥미를 끌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기억하고 있는 만큼 써 보았습니다. 장소도 있으므로 장소와 이름을 제외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뭐라고…… 카네키치가 자네를 독살하려 했다고?”


순경 부장이 눈을 번뜩이자, 그의 앞에 선 광산 노동자 차림의 사내가 묶인 손을 움켜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얼굴을 번쩍 들어올렸다.


“예…… 그래서…… 제가 그놈을 해치웠습니다……”


마치 내뱉듯이 말하고는, 눈앞 책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올려진 곡괭이를 노려보았다. 한쪽 끝에는 여전히 핏덩이가 덕지덕지 엉겨붙어 있었다.


순경 부장은 뜻밖이라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흠…… 그건 또 왜…… 무슨 이유로 독살하려 한 거지?”


“예, 그게 말입니다……”


광부 차림의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구의 다다미 위에 멍석을 덮은 채 누워 있는 피해자의 시체를 뒤돌아보았다.


“제가 그제부터 감기에 걸려서 헛간에 누워 있었는데, 어제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놈 카네가 일찍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는 ‘몸은 좀 어떤가’ 하고 묻더군요.”


“……음, 그럼 원래 카네와 자네는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단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부님…… 제가 이참에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만, 사실 그놈과 저 사이에는 옛날에 여섯 구역의 일과 관련된 열 냥 정도의 거래가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놈에게 열 냥을 빌렸는지, 그놈이 저한테 빌렸는지…… 그건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안 납니다. 뭐, 적은 돈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놈 얼굴만 보면 자꾸 그 일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놈이 먼저 뭐라 말을 꺼내면, 어느 쪽이 빌린 건지 알 수 있을 테니 하고, 전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병문안을 온 그놈 얼굴을 보니 또 그 일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몸은 여전히 괴롭고 열은 오르고…… 이런 건 처음이라 혹시 이대로 죽는 거 아냐 싶다고 말했더니, 그놈이…… 그럼 내가 의사를 데려오겠다고 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더군요. 전 그놈이 나를 버리고 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화를 삭이고 있었는데, 자정이 되자 어디서 술을 걸치고 얼굴이 벌겋게 돼서는, 비에 흠뻑 젖은 채 들어오더니 내 머리맡에 퍽 주저앉아 고함을 쳤습니다. 말하길, 회사 소속 의사 놈은 며칠 전부터 창녀골목으로 사라져버려서 진찰실을 비웠다…… 다음에 만나면 정강이를 부러뜨릴 거라고…….”


“……흠, 문제가 있군. 그건.”


“그렇지요, 경부님…… 그놈들도 결국 양복 입은 짐승들이라고요……”


“그렇지, 그렇지. 그 다음엔?”


“그 다음에는…… 산 너머 마을의 의원에게 갔더니, 거기도 아침부터 장어 잡으러 나갔다고 하더랍니다.”


“뭐? 장어 잡으러?”


“예, 그렇다네요…… 요즘은 매일같이 장어 잡으러 나가고 집엔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더군요. 잘 들어보니, 그 의사는 본업인 진료보다 장어잡이에 더 소질이 있답니다.”


“풋…… 말도 안 돼. 여하튼, 잡담은 그만하고 계속해 봐.”


“예…… 그래서 그놈은 결국 마을의 잡화점 주인을 찾아가서, 감기에 듣는 좋은 약 없냐고 물었는데…… 요즘 감기가 대유행이라 다 팔리고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 열을 식히는 데 쓰는 붉은 알약이라면 있다. 말에게 듣는 약이면 사람에게도 들지 않겠냐’고 해서 샀다더군요…… 그런데 이놈 말이, 짐승은 약이 잘 들어서 적은 양만 먹어도 되니까, 사람은 더 많이 먹어야 효과가 날 거라고…… 그래서 두 알을 사 와선, 이걸 한 번에 먹으면 효과가 클 거라고 하면서, 돈은 필요 없다며 마셔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직접 끓인 미지근한 물을 갖다 주면서 제 머리맡에 놔뒀습니다. 전 그놈의 친절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죠. 이 정도면 내가 그놈에게 열 냥을 빌렸던 게 맞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약 봉지를 뜯었는데, 붉은 알약이랬지만 파란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고, 크기가 거의 삼 센티 가까이 됐습니다…… 그걸 하나씩 물과 함께 삼켰는데, 워낙 커서 삼키는 데 엄청 애를 먹었습니다. 숨이 막히는 줄 알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습니다.”


“……흠. 그럼 감기는 나았나?”


“예…… 오늘 아침엔 아직 좀 어지럽긴 했지만, 열은 내린 것 같아서, 기분을 내려고 한 잔 하고 있었는데…… 어제 그놈에게 말을 전해 들었다며, 장어잡이 의사가 자전거를 타고 찾아왔습니다. 쉰 살쯤 된 더럽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그걸 보는 순간 화가 확 치밀었습니다. 이 더러운 개똥의사 놈…… 너 같은 돌팔이는 필요 없다. 나한텐 이미 붉은 알약 두 알이 들어가 있으니, 꺼져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사는 겁을 먹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꼼짝 않고 제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군요.”


“흠…… 그건 또 왜?”


“그 영감은 한참 제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그 두 알, 도대체 언제 먹었냐고 묻더니, 이젠 덜덜 떨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도 좀 무서워졌죠. 예, 붉은 알약은 맞지만 곰팡이 핀 거였고요, 어젯밤 열두 시 넘어 삼켰습니다. 그 덕에 오늘 아침엔 이렇게 열도 내렸는데…… 왜요, 뭐 문제라도? 라고 묻자, 그 영감은 안도하는 얼굴로 말하더군요. 운이 좋았다고. 곰팡이 때문에 약효가 약해졌던 게 분명하다고. 그 약 하나에 들어간 해열 성분은 사람용보다 몇 배는 강한 거라, 정말로 제대로 약효가 돌았으면 심장이 마비돼서 죽었을 거라고요. 그러면서 술은 절대 마시지 말라며 제 손을 붙들더군요.”


“흠…… 정말 그런가?”


“그 말을 듣고 저는 바로 헛간을 나와, 광산으로 내려가서, 일하던 카네 놈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그놈의 정수리를 후려쳤습니다. 그리곤 경부님 앞에 나와 이대로 출두했습니다. 도망도 숨을 생각도 없습니다. 예, 정말입니다……”


“흠…… 하지만 이상하군. 아무래도 자네가 그놈을 죽인 이유가…….”


“이상합니까, 경부님? 그놈은 제가 병든 틈을 타서 절 독살하고, 열 냥을 빼돌리려 했던 게 분명합니다. 원래부터 간사한 놈이었으니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경부님.”


“음…… 정말 그게 전부인가?”


“그게 전부라뇨, 경부님…… 그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허허, 어처구니가 없군. 그럼 자네는, 열 냥은 자네가 빌려준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난 건, 그놈이 저를 말이랑 헷갈렸다는 점입니다.”


“하하하하하…… 점점 더 어이없구먼, 자넨…….”


“예…… 하지만 전, 굴욕을 당하면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흠……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말이야, 자네 말은 하나도 앞뒤가 안 맞는단 말이지.”


“왜입니까…… 경부님……?”


“왜냐고? 곰곰이 생각해 봐. 처음부터 그놈의 태도로 돈 거래를 판단하겠다? 그게 말이나 되는가…….”


“말이 됩니다…… 걔가…… 절 죽이려고 했습니다…… 경부님이 틀렸습니다.”


“닥쳐!”


순경 부장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고함쳤다. 그 사내의 말이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


“닥쳐…… 파렴치한 자식. 애초에 네가 증거 삼은 그 약으로, 감기가 다 나았잖아!”


“……예……”


광부는 넋이 나간 듯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푹 떨구더니, 주저앉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


“……카네…… 내가 큰 죄를 지었어…… 경부님…… 저를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