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도로 옆 가로등 아래를 걸었다. 그 눈은 앞쪽 지평선과 주변의 어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속도로는 광활한 숲 속에 묻혀 있었지만, 도시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개가 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결국 도시 외곽의 주택가나 주유소의 불빛을 보게 될 것이다. 개의 주변에는 이미 그런 문명의 흔적들이 드문드문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개가 사람이 사는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흔적 중 하나가 개의 주의를 끌었다. 개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고기 냄새였다.
도로 한복판에는 구겨지고 바스라진 종이봉투가 하나 있었다. 그 위에 인쇄된 로고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었지만, 바랜 붉은 글씨는 분명히 한 단어를 이루고 있었다. “스터비스(STUBBY’S).”
봉투에서는 아직 은박지에 반쯤 싸인 채, 기름지고 더러워진 햄버거 하나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두어 입 정도 베어 먹힌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이라면, 이 햄버거를 버린 사람이 터무니없이 낭비벽이 심하거나, 아니면 음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에게 그런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굶주린 위장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라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익숙하고, 유혹적이며, 무척이나 맛있는 것.
냄새의 근원을 알아챈 개는 곧장 햄버거 쪽으로 달려가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음식에 집중하느라, 개는 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들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올 때까지는.
트럭의 브레이크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충돌은 강력했다.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졌다. 개는 처음 햄버거를 발견했던 자리까지 튕겨 나가며 구르고 또 굴렀다. 일곱 번, 여덟 번, 아마 아홉 번 이상은 굴렀을 것이다.
운전자는 차를 멈추고 상황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았다. 개가 다시 도로변에 쓰러져 있는 것을 흘끗 보곤, 트럭은 다시 속력을 냈고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
✲
개는 눈을 뜬 채, 그러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가로등 아래에서 움직임 없이 누워 있었다. 창백한 노란빛의 가로등 아래, 주위의 짙푸른 나무들 위로는 달빛이 희미한 푸른 기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정지해 있었다. 그 순간 공기 속엔 어떤 공허함이 떠돌았다. 의식은 사라지고, 잠보다 깊은 잠, 오직 무(無)만이 존재했다. 가로등의 빛과 달빛,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또 다른 빛이 나타났다. 달빛처럼 희미한 푸른빛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밝고 뚜렷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은 죽은 개의 몸에서 피어오르듯 떠올랐다. 그 형상은 개와 같았고, 마치 몽롱한 꿈에서 막 깨어난 듯 비틀거리며 움직였다. 그러나 그 동작에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기미가 있었다. 이젠 어떤 자각이, 어쩌면 ‘의도’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감각이 깃들어 있었다. 그 몸짓은 더 이상 개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늦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앞발로 눈가를 문지르며, 그는 자신이 떠오른 자리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개는 자기 시신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트럭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이게 다 뭐야?”
✲
개의 영혼은, 더는 시체를 들여다봐야 할 이유도, 목적도 없이, 이전과 같은 방향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았고, 머리 위로 별들이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계속 그 길을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이상, 원래 가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그나마 가장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제 개는 도로를 지날 때 훨씬 더 조심스러워졌다. 눈은 숲과 도로 양쪽을 번갈아 살피며,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재빨리 고속도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덤불 하나가 바스락거리기 시작했다. 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며 방어 자세를 취했고, 그 안에서 한 스컹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와 마찬가지로, 스컹크 역시 달빛 같은 색의 반투명한 유령 모습이었다.
"우왓! 너, 뭐야! 뭐 원하는 거야?!" 개가 다급하게 물었다.
"앗!" 스컹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냥… 인사하려고!"
스컹크의 목소리는 어딘가 어린 여자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인사? 방금 나 죽었거든?!"
젊은 남자의 말투를 가진 개는, 스컹크의 너무도 태연한 말투에 당황하고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알아, 나 봤어. 완전 대박이었어!"
스컹크는 바로 그것이 얼마나 무심하게 들렸는지 깨닫고 서둘러 말을 고쳤다.
"그러니까, 대박이라기보단… 믿기 힘들 정도였다고 해야 하나? 서퍼가 파도에 휘말려 구르는 거 보는 것 같았달까? 너 적어도 열 바퀴는 굴렀어! 진짜 장난 아니었어! 그런 건 처음 봤어!"
개는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신나게 말하는 스컹크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겨우 침착함을 되찾은 그는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이네."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는 스컹크를 무시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스컹크는 미안한 듯 허둥대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 정말 미안해. 그런 식으로 들리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그런 건 정말 드물잖아. 적어도 난 처음 봤거든. 그리고 나도 오늘 밤 죽었어. 그래서… 뭐랄까… 말 걸 누군가가 없어서…"
개는 여전히 무시하며 묵묵히 걷기만 했다. 스컹크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진짜로, 너무 기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 우리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지금 괜찮잖아, 그치?"
그 말에 개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달을 올려다보며, 조금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상황을 곱씹었다.
"…그러게… 그러네." 개는 조심스럽지만 어딘가 희망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까는 좀 날카롭게 굴어서 미안. 그냥… 잘 적응이 안 돼서." 개는 짧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죽는다는 거 말이야."
"나도 그래." 스컹크가 대답했다. "사실, 너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좀 외로웠거든. 혹시 괜찮다면… 그니까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같이 가도 될까?"
"전혀 안 부담돼." 개의 목소리는 전보다 훨씬 따뜻했다. "사실 나도, 말 안 했지만… 누군가랑 같이 걷고 싶었어."
스컹크는 웃으며 개 옆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그날 밤의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날씨가 참 좋다는 말도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둘 다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
개와 스컹크는 여전히 목적지도 모른 채 도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두 친구의 시선을 끄는 안타까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개가 그러했던 것처럼, 도로 한가운데에는 주검이 된 주머니쥐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불쌍해라..." 스컹크가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로 저렇게 된 걸까?"
"아마 오늘 밤 우리를 치고 간 그 트럭이 또 그런 걸지도." 개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차에 치이고 난 다음에 어디로 갔을까? 혹시 우리처럼 외롭진 않을까..." 스컹크는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개는 마음속으로 '이 친구는 참 공감을 쉽게 하네'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위로하듯 안심시켜주려 했다.
"괜찮을 거야. 우린 지금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잖아. 죽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괴성이 들리더니, 주머니쥐의 유령이 비명을 지르며 시체에서 튀어나와 두 친구를 향해 돌진했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개와 스컹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곧 그 비명은 히죽거리는 웃음소리로 바뀌었고, 주머니쥐는 눈앞에 나타나 웃다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는 웃음 사이로 말했다.
"미안... 미안! 정말 미안한데... 진짜... 너무..." 웃느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개와 스컹크는 얼이 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래켜보고 싶었어! 다시는 못할 기회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번 웃음에 휘말려 바닥에 쓰러졌다.
둘은 전혀 웃기지 않은 얼굴로 그를 흘겨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쥐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벌떡 일어나며 뒤따라 뛰었다.
"야야, 그러지 마! 그냥 장난 좀 친 거잖아! 나 주머니쥐라고! 죽은 척하는 게 종특이야!"
개와 스컹크는 그를 잠깐 돌아보며 싸늘한 눈길을 주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아, 그래, 알겠어." 주머니쥐는 갑자기 비꼬는 말투로 바뀌며 말했다. "우린 죽었으니까 항상 진지하고 침울해야겠지! 와아~ 내가 분위기 깼다 그치? 죽고 나서도 웃으려고 한 내가 잘못이야, 미안하다 정말. 뭐, 이런 재미 하나도 없는 썰렁한 세상이 전부라면, 나도 더는 살고 싶지 않거든? 잘 있어!"
그 순간, 커다란 트레일러 트럭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주머니쥐는 그대로 차도로 뛰어들었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충돌을 기다렸다. 이를 본 개와 스컹크는 경악하며 외쳤다.
"안 돼! 그럴 가치 없어!" 개가 소리쳤다.
"미안해! 미안해! 제발 비켜! 비켜어어!" 스컹크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트럭은 이미 주머니쥐가 선 자리를 지나고 있었다.
"안 돼..." 스컹크가 흐느꼈다. 개와 함께 그는 땅만 바라보며 후회에 젖었다.
"설마..." 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설마 진짜로 그럴 줄은—"
바로 그때, 트럭의 마지막 바퀴가 지나가자마자, 주머니쥐가 또다시 그 자리에 나타나 소리를 지르며 튀어 올랐다. 개와 스컹크는 다시 한 번 놀라 비명을 질렀고, 주머니쥐는 땅에 뒹굴며 포복절도했다.
"또 속았지? 또 속았지? 하하하... 이걸 또 해냈다니 믿기지가 않아..."
이번엔 개가 진심으로 화가 났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래. 정말 웃기다. 잘 자라. 안녕."
그렇게 말한 그는 스컹크와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쥐는 여전히 뒹굴며 웃고 있었지만, 두 친구는 그를 뒤로한 채 점점 멀어졌다.
한참 뒤, 주머니쥐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다시 두 친구를 향해 뛰었다.
"야야! 미안해! 진짜 장난 이제 안 칠게, 약속! 그냥... 할 일이 없어서 그랬어. 몇 시간 전쯤 차에 치였거든. 그 뒤로 계속 돌아다녔어."
"우리도 마찬가지야," 스컹크가 냉랭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의는 남겼거든."
"진짜로 사과할게!" 주머니쥐는 절박하게 외쳤다. "앞에 가면 먹을 수 있는 데 알아! 배고프지 않아?"
개와 스컹크는 서로 의심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응, 배고프긴 해," 개가 말했다. "하지만 우린 그냥 우리끼리 갈 거야."
"제발! 바로 거기야! 내가 안내할게!"
스컹크는 개에게 속삭였다.
"사실 진짜 배고프긴 해. 그냥 데려가게 하자. 또 바보처럼 굴면 그때 가서 버리면 돼."
개는 스컹크를 바라보다가 다시 주머니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좋아. 우리를 데려가. 하지만 다시는 장난 안 치는 거다."
"좋아! 바로 이쪽이야!"
주머니쥐는 신이 나서 앞서 달리기 시작했고, 개와 스컹크는 그의 뒤를 따라 뛰었다.
✲
그들이 도로 옆 숲이 한풀 꺾이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작은 공터와 함께 몇 채의 집들이 나타났다. 주머니쥐는 제일 먼저 보이는 집으로 다가갔다. 하얀 외벽에 파란 문과 셔터가 달린 단층집이었다. 네 개의 창문 중 하나에만 불이 켜져 있었고, 그 외에는 위협적인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접시가 놓여 있었다. 애완동물용 사료처럼 보였지만, 그 모양새는 익숙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 음식은 그들 유령의 몸처럼 희미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냄새를 맡은 개와 스컹크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앞에 앉아 며칠 굶은 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주머니쥐는 흐뭇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거봐, 내가 괜찮다 했잖아!" 주머니쥐는 으쓱하며 자신의 장난에 대해 충분히 속죄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 집들이 몇 군데 더 있어. 이 근처에선 이게 일종의 의식처럼 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 유령을 위해 음식을 내놓는 거야!"
"근데 왜 그러는 걸까?" 개가 입에 음식을 물고 말하듯 물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유령이 배고픈 걸 알고 이런 걸 내놓지? 난 유령한테 밥을 주는 문화가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도 없어."
"아시아 어딘가에서 그런 종교 의식 있지 않나?" 스컹크가 중얼거렸다. "조상신한테 제사 지내는 거 비슷한 거 말이야."
"아, 나도 그런 얘기 들어본 것 같아." 개가 맞장구쳤다. "하지만 여긴 아시아도 아니고, 왜 이런 걸 할까?"
"이상하긴 하지..." 스컹크가 입 안 가득 음식을 넣은 채 말했다. "여기 혹시 아시아계 동네일 수도 있고..."
그때, 진입로 끝에 놓인 쓰레기통 하나가 요란하게 넘어지며 쓰레기가 잔디밭 위로 흩어졌다. 그 틈에서 또 하나의 유령 동물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너구리였다.
"야!" 개가 외쳤다. "너 뭐 하는 거야? 우리 얘기 엿듣고 있었지?"
"너희처럼 나도 먹으러 왔을 뿐이야." 너구리는 별로 들킨 것에 개의치 않는 듯, 자신의 희미한 털에 묻은 쓰레기를 털어내며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유령 음식' 같은 건 안 먹어. 너희들 스스로 좀 봐. 그게 너희한테 뭘 하고 있는지."
셋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처음엔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곧 너구리와 자신들을 비교하면서 어떤 차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뭔가... 더 실체가 있었다.
"나...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줄 알았는데," 개가 중얼거렸다. "우리... 예전보다 더 희미해진 거야?"
"정답이야, 친구." 너구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음식은 점점 투명하게 만들어. 그래서 난 끊었어. 너무 많이 먹으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어."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주머니쥐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논리야. 음식 = 더 많은 투명도. 음식 + 더 많은 음식 = 훨씬 많은 투명도. 너무 많은 투명도 = 존재 소멸." 너구리는 더욱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개가 끼어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게 단지 투명해지는 거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닐 수도 있잖아?"
"투명?" 주머니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난 원래 투명해지고 싶었어! 더 줘봐!" 그러고는 접시를 낚아채 남은 걸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이유는, 논리와 관찰을 더했기 때문이지." 너구리는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봐. 지금 그걸 먹고 나서 몇 분 전이랑 기분이 어때?"
"따뜻하고 배부른데..." 스컹크가 말했다.
"그 외엔?"
"글쎄... 약간... 흐릿해지는 느낌?" 개는 말끝을 흐리며 이어갔다. "...집중이 잘 안 돼."
"그렇지. 그게 시작이야. 그래서 난 끊었지."
"근데 너무 맛있단 말이야..." 스컹크가 투덜거렸다.
"그건 동의해." 너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그 맛보다 이대로 남는 걸 택했지. 그리고 말인데, 난 더 나은 걸 찾았어."
"뭐야?!" 주머니쥐가 눈을 번뜩였다.
"이거야!" 너구리는 쓰레기통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엔 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STUBBY'S'라는 익숙한 로고가 찍혀 있었다.
"와, 스터비스! 맞아! 내가 여기 근처에서 냄새 맡았을 때 정신이 헷갈렸던 게 아니었어!" 개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실제로 있었던 거였지." 너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남은 햄버거가 있었어. 그대로, 먹지도 않은 거."
"나 좀—"
"그리고 내가 먹었지."
"아..." 개는 풀이 죽었다.
"하지만!" 너구리는 마치 장터 상인처럼 외쳤다. "근처에 진짜 스터비스 매장이 하나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너희도 다시 실체감 있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오, 나도 거기 기억나!" 스컹크가 말했다.
"나도!" 주머니쥐가 덧붙였다.
"그거야." 개는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말했다.
"뭐가?" 스컹크가 물었다.
"그게 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던 이유야. 스터비스. 예전에 자주 갔었거든.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그렇게 자주 갔었다고?" 너구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쫓겨났던 거 아니었어?"
"맞아, 나중엔 그랬지만... 그보다 훨씬 전엔, 그곳에서 점심을 먹곤 했어. 기억나. 돈을 내고, 매장 오른쪽 앞 창가 옆 테이블에 앉았던 거. 매일매일 그 햄버거가 오아시스처럼 느껴졌지. 무언가...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쉼터였어. 다시 가야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야."
"정말 길이 기억나?" 너구리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오늘 밤 그 무엇보다 확실해. 뭐, 그게 별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같이 갈래?"
"난 원래 단체 행동은 잘 안 하는 편이야. 너희 셋이 먼저 가. 난 내 방식대로 따라갈게."
"정말 괜찮아?" 주머니쥐가 물었다. "여기 꽤 외롭잖아."
"그래," 스컹크도 거들었다. "그리고 우리 이 친구랑 밤새 단둘이 남겨지는 건 좀 곤란하다고!"
"야!" 주머니쥐가 발끈했다. "장난 안 친다고 약속했잖아!"
"괜찮아," 너구리는 그들의 말다툼을 무시하며 말했다. "가도 돼."
너구리는 말없이 집 뒤편으로 사라졌다.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우리, 사실 더 이상 할 일이 없긴 하지?" 개가 물었다.
"그래." 주머니쥐가 대답했다. "이... 사후 세계든 뭐든, 언제 끝날지도 몰라. 우린 아무것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이 순간뿐이지." 개는 철학적으로 말하며 점점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살아야 해! 스터비스를 향해! 스터비스로!" 그러곤 스컹크와 주머니쥐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스터비스?"
"스터비스." 스컹크가 대답했다.
"스터비스!" 주머니쥐도 따라 외쳤다.
"그럼 출발하자!" 개가 외쳤다.
세 유령 동물은 개의 희미한 기억을 따라, 다시 도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북쪽으로, 절반쯤 잊힌 과거의 익숙한 풍경과 소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세 동물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스컹크와 주머니쥐는 당황한 채 그의 시선을 따라갔고, 곧 세 마리 모두 도로 위의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것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기고 으깨진 시체였다. 부러진 뼈와 피, 터진 장기와 털이 뒤엉켜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전에 만났던 너구리의 시신이라는 것을 단 하나의 단서—줄무늬 꼬리—가 알려주고 있었다.
"세상에…" 개는 숨을 죽인 채, 경건한 슬픔이 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끔찍하네. 저 친구는 우리보다 훨씬 끔찍하게 당했어. 이건 그냥… 피투성이 고깃덩어리잖아."
"우리, 뭔가 말이라도 해줄까?" 스컹크는 조심스레 속삭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아." 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왜 말을 해야 하는데?!" 주머니쥐가 분위기를 깨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 친구랑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괜찮다니까!"
"아." 개는 약간 머쓱한 듯 말했다. "그렇지, 까먹고 있었네."
"그래도 슬프긴 하잖아..." 스컹크는 여전히 나직이 말했다. "우리랑 똑같이 유령이 된 거고, 괜찮아 보이긴 해도… 이렇게 죽었다는 건 정말 너무 안 됐어. 난 내가 죽을 때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
"정말?" 개는 생각에 잠긴 듯 되물었다.
"응. 다만, 이렇게까지 끔찍하진 않았던 건 확실해."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 순간이 기억나질 않아. 그냥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이었지. 꿈속에서 떨어질 때, 땅에 닿기 직전에 깨는 것처럼."
"나도 그랬어."
그때, 주머니쥐가 갑자기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가짜 아일랜드 억양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저렇게 말끔한 시체를 본 적이 있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개는 충격을 받은 듯 소리쳤다. "누가 죽었다고!"
"맞아. 나지." 주머니쥐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근데 너는 내가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은 걸로 뭐라 안 하잖아?"
"그게 아니라, 난 그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럼, 자기 자신한테 예의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주머니쥐가 비꼬듯 말했다.
"아니, 그게… 음, 그래, 뭐… 아니다, 됐어!" 개는 말끝을 흐리고 포기했다.
"기운 좀 내!" 주머니쥐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린 반대편에 와 있다고! 저 너머! 그 ‘진짜’ 반대편! 우린 죽음을 넘겼다고! 이제 멋진 버거 먹으러 가는 거잖아! 축하해야지, 축하를!"
"알아. 그냥… 아직 정신이 안 차려져서 그래." 개는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이게 다야? 죽고 나서도 여전히 그대로?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환생도 없고? 그냥 죽기 전처럼 방황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친구. 카르페 디엠 어쩌구 하던 건 어디 갔어? 현재를 살아야 한다며?"
"알아, 그냥… 이 모든 게 너무 싱겁게 끝난 느낌이야. 살아 있는 게 기쁘긴 해… 아니, 존재한다는 게. 근데 뭔가 비어 있어. 신은 어디 있는 거지? 뭐라도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삶이란 건… 아니, 이번엔 ‘삶’이라는 단어는 빼자. 존재. 존재란 건 결국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난 계속 뭔가—"
그 순간, 스컹크가 갑자기 주머니쥐처럼 똑같이 가짜 아일랜드 억양으로 노래를 불렀다.
"팀, 아보르닌, 왜 죽었나요~!"
"뭐야 이건?!" 개는 어리둥절했다.
"그 노래잖아!" 스컹크는 신나게 말했다. "『피니건의 웨이크』 맞지?"
"아, 그게 제목이었어!" 주머니쥐도 덩달아 기뻐했다. "계속 머릿속에 멜로디가 맴돌았는데, 제목이 뭐였는지 몰랐거든!"
주머니쥐는 다시 아일랜드 억양을 흉내 내며 노래를 이어갔다.
"훽 폴 더 다오, 파트너와 춤을! 바닥을 밟아, 발굽을 흔들어! 사실이잖아, 내가 말했지? 피니건의 웨이크는 정말 신난다고!"
"나 그 노래 진짜 좋아해!" 스컹크가 소리쳤다. "어릴 때 진짜 많이 들었어! 가사가 뭔지 몰랐지만, 아빠가 들려주긴 했었거든. 술 마시고 죽는 얘기라서 설명은 안 해줬지만."
"네가… 아버지를 기억한다고?" 주머니쥐가 놀라며 물었다.
"어렴풋이. 조그만 방이 있었고, 턴테이블이랑 레코드가 잔뜩 있었어… 포크 음악이 많았지. 아빠는 키가 크고 검은 수염이 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음악도, 아빠도 그리워."
스컹크가 말없이 생각에 잠기자, 세 동물은 다시 한 번 너구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몇 순간의 침묵이 흐르고, 개가 조용히 말했다.
"가자."
그들은 다시 스터비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스컹크가 개에게 물었다.
"너는 기억나는 거 없어? 스터비스 말고는?"
"명확한 건 별로 없어. 식탁 위로 햇빛이 비치던 부엌, 싱크대 위의 초록색 커튼, 흑백 영화 틀던 극장에 앉아 있던 거… 다 조각이야. 의미 있는 연결이 없어."
"잠깐만," 주머니쥐가 끼어들었다. "도대체 누가 인생을 조리 있게 살아? 너 지금 뭔가 멋진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거잖아. 근데 인생이란 게 그렇게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아. 지금 우리가 겪는 것도 딱 그런 거야."
"그래도… 사람은 뭔가를 위해 살잖아."
"넌 진짜 세상 물정 모르네, 친구."
"내가 살아 있었다면," 스컹크가 말했다. "동물들을 돕고 싶었을 거야."
개와 주머니쥐가 놀란 듯 스컹크를 바라봤다.
"너도 동물이잖아!" 주머니쥐가 외쳤다.
"알아. 그래서 더 잘 돌볼 수 있잖아, 안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개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곰한테 습격당한다면, 내가 가서 그놈 엉덩이를 물어줄게!"
"으악, 더러워!" 주머니쥐가 소리쳤다.
그들은 수다에 푹 빠져서, 도로 옆에 검은 밴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밴은 너구리의 시신 옆에 멈춰 섰고, 운전석 문이 열렸다. 그제야 셋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밴은 뭐 하는 거야?" 스컹크가 물었다.
"시체 수거차지." 주머니쥐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시체 수거차?"
"죽은 동물 치우는 공무원일 거야." 개가 주머니쥐의 설명을 덧붙였다.
"우웩, 끔찍한 일이네. 난 유령이라 햄버거 먹으러 가는 중이라서 다행이다."
밴에서 내린 남자는 측면 수납칸에서 삽을 꺼내 너구리의 시체를 천천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셋은 멍하니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으며, 검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은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검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너구리 시체를 밴 뒷문 쪽으로 가져갔다. 문을 여는 순간, 셋은 충격에 빠졌다. 안쪽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나왔기 때문이다.
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었지?!"
남자는 문을 닫고, 다시 측면 수납칸으로 돌아가 삽을 넣고는 이번엔 동물 포획용 와이어 후크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셋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스컹크가 물었다.
"모르겠어…" 주머니쥐가 대답했다.
"도망쳐." 개는 눈을 크게 뜬 채 속삭였다.
"뭐라고?" 주머니쥐가 되물었다.
"도망치라고."
"응?"
"지금 당장 도망쳐!!"
개는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스컹크와 주머니쥐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후드 쓴 남자는 더 이상 천천히 걷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전속력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두 마리는 망설일 틈도 없이 개를 따라 전력질주했다. 어둠 속, 후드의 사냥꾼이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그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
세 동물은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외따로 선 거대한 나무 뒤에 숨죽인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헐떡이며 지쳐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를 본 거야?! 어떻게? 우린 유령이잖아! 사람들은 유령 못 본다고!" 스컹크는 여전히 공황 상태였다.
"진정해 봐." 개도 진정하려 애쓰는 듯했지만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자식, 아직 우리 뒤에 있나?"
주머니쥐가 나무 오른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았다.
"안 보여."
"진짜 어떻게 본 거지? 그냥 인간일 뿐이잖아!" 스컹크는 더 크게 소리쳤다. "우린 유령이라고! 그런데 대체 뭘 원하는 거야?!"
"조용히 해!" 개가 목소리를 낮춰 단호하게 말했다. "듣고 있을지도 몰라! 이대로 계속 도망만 다닐 순 없어. 우리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 왜 여기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해. 안 그러면 언제 또 무슨 놈이든, 무슨 일이든 닥칠지 몰라."
"아니면," 주머니쥐가 제안하듯 말했다, "그냥 스터비스까지 죽어라 뛰면 되는 거 아냐? 자, 얼른 가자—"
그 말을 끊은 건 스컹크의 외마디 숨소리였다.
"야! 욕하지 마!"
"왜 안 되는데?"
"그건… 그러니까…" 그녀는 설명할 말을 더듬었다. "욕은 나쁜 말이잖아! 나쁘다고!"
"어떻게 나쁜데? 사회적으로는 보기 안 좋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둘 다 좀 닥쳐줄래?!" 개가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생각 좀 하자고!"
"그냥 우연이었을지도 몰라…" 스컹크가 조심스레 말했다.
"뭐가?" 개는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 남자, 우리 쫓아온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야. 우리 뒤에 살아 있는 동물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못 본 걸 수도 있고…"
"아, 그래." 주머니쥐가 비웃듯 말했다. "아마도 투명 동물들이었겠지. 우리처럼 말야. 우린 곧 그렇게 될 테니까, 스터비스 못 가면—"
그 순간,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들어와! 지금 당장!"
덤불 사이에서 너구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숲 가장자리였다.
"너구리잖아!" 개가 놀란 듯 말했다. "무슨 일이야?"
"그 자식이야!"
너구리는 세 마리가 숨어 있던 큰 나무 뒤를 가리켰다. 주머니쥐가 다시 오른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확인했고, 개와 스컹크도 함께 뒤에서 넘겨다보았다.
"거기 아무도 없어!" 스컹크가 너구리에게 외쳤다. "대체 왜 그러는—"
하지만 그 순간, 남자가 나무의 왼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반응할 틈도 없이, 그의 고리 장비가 스컹크의 목을 낚아챘다. 주머니쥐와 개는 이미 도망치려는 순간이었지만, 스컹크가 붙잡힌 것을 본 개는 방향을 바꿨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고리 장비의 손잡이를 물어 당겼고, 한참 실랑이 끝에 스컹크의 목에서 줄을 풀어낼 수 있었다.
두 마리는 도망쳐 숲속으로 달려들었고, 거기엔 이미 주머니쥐와 너구리가 도망쳐 있었다.
✲
다시 한 번, 개와 스컹크, 주머니쥐 셋은 헐떡이며 거대한 나무 밑동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너구리는 근처에 앉아 태평스럽게 바나나를 먹고 있었다.
"너… 너 나 구해줬잖아!" 스컹크는 감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그러니까… 그럴 수가 없었어…" 개는 스컹크의 과한 칭찬에 당황해 말끝을 흐렸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어, 너를… 그게…"
"고마워고마워고마워!" 스컹크가 환호하며 앞발로 개를 꼭 껴안았다.
"아,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정말 괜찮아…" 개는 그런 포옹에 익숙지 않은 듯 어색해했다.
"그래서!" 주머니쥐가 너구리를 향해 돌아서며 외쳤다. "네가 우리랑 같이 안 가겠다고 하지 않았냐? 혼자서 천천히 가겠다고?"
"그랬지," 너구리는 대답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었어. 적어도 그 미친놈이 밧줄이랑 밴을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숲으로 도망쳤다가 너희를 쫓아왔어. 혹시라도 그자가 다시 나타날까 봐 경고해주려고. 여긴 안전해. 그 자는 이 안까진 못 들어와."
"그걸 어떻게 알아?" 주머니쥐가 물었다.
"논리적으로. 나를 쫓던 발걸음이 숲 가장자리에서 멈췄거든. 뭔가 이유가 있어 숲 안으로는 못 들어오는 거겠지."
"그럼 이제 우린 뭘 해야 하지?" 스컹크가 물었다.
"우선, 우리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해," 개가 말했다. "그 자가 돌아올 수도 있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스터비스에 가는 것도 좋지만, 그건 지금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단서일 뿐이야. 우리가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도 있어."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뭐 그런 거지?" 너구리가 말했다.
"맞아."
"그거 누구 말이야?" 스컹크가 물었다.
"플라톤 아니야?" 주머니쥐가 말했다.
"소크라테스일걸," 스컹크가 대답했다.
"소크라테스가 맞아," 너구리가 단언했다.
"근데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라는 가상 인물을 소설 같은 데 쓴 거 아냐?" 주머니쥐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소설은 아니지! 소크라테스의 존재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그건 철학적 담론이지 소설은 아니야!"
"조용히 좀 해!" 개가 외쳤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소리 지르지 마…" 스컹크가 상처 받은 듯 말했다. "우리 그냥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이야."
"미안해. 그냥,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얘긴 아닌 것 같아서…"
"그럼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과 관련된 얘기를 해야겠네?" 너구리가 되물었다.
"맞아!"
"그러니까, 너는 우리가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네. 우리가 살고 죽을 수 있는 의미를 가진, 그런 진리 말이야?"
"음… 그런 셈이지…"
"누가 그런 말 했는데?" 주머니쥐가 물었다.
"키에르케고르."
"키에르케고르는 바이킹이 죽고 나서 가는 데 아냐?" 스컹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아스가르드야. 완전히 다른 '가르드'지."
"그만해!" 개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미안해…" 스컹크가 풀이 죽어 말했다.
"좋아,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개가 말했다.
"그게 뭐야?" 너구리가 물었다.
"우린 기도해야 해."
모두가 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스컹크만은 어쩐지 그 말에 위안을 얻는 듯했다.
"기도?!" 너구리가 외쳤다. "신이 있다면 우리 같은 존재에 관심이 있으시겠어? 설명도 없이 이렇게 방치해 놓고선."
"잠깐," 주머니쥐가 끼어들었다. "근데 네가 내가 한 말을 어떻게 알아?"
"그러게!" 스컹크도 놀랐다.
"내가 따라왔잖아. 혹시라도 그 인간이 다시 나타나면…"
"엿들었잖아!" 스컹크가 정색하며 외쳤다. 주머니쥐는 낄낄 웃었다.
"정신 좀 차리자, 얘들아!" 개가 다시 집중을 유도했다. "자, 같이 기도해줄 거야, 안 할 거야?"
"글쎄…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주머니쥐가 말했다. "뭐, 잃을 것도 없잖아?"
"맞아. 우리 뭔가 해야 해!"
"좋아," 너구리도 못마땅하지만 동의했다. "그럼 주임신부님, 우리가 따라야 하나요?"
개는 그의 비아냥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진지하게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앞장설게. 다들 고개 숙이고… 눈 감고… 자… 하느님…"
"별로 경건하진 않은데," 너구리가 태클을 걸었다. 개는 눈으로 단단히 경고하고 말을 이었다.
"전능하신 하느님, 우주의 주인이시여, 만물의 주인이시여! 저희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방향이요. 저희는 유령이고, 길을 잃었고, 햄버거 말고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거나 환생하거나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긴 도무지 출발점에 머물러 있는 기분입니다. 부디, 어떤 방향이라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너구리가 헛기침을 했다.
"저희는 당신의 무한하고 변치 않는 자비에 영원히 감사드릴 것입니다. 아멘!"
"정말 멋진 기도였어!" 스컹크가 감격스럽게 말했다.
"고마워… 정말, 신이 들었기를…"
"있다면 말이지," 주머니쥐가 덧붙였다.
"누구든, 뭐든, 전능하고 자비롭기만 하다면 정말 고마울 거야. 자, 얘들아, 우리 이제 다시 움직이자…"
그때였다. 신비로운 목소리가 숲 전체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숲 자체가 말을 하는 듯한 울림이었다.
"정보를 줄 수 있다."
목소리는 또렷하고 깊었으며, 신비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네 동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개가 서서히 그들을 에워싸고, 머리 위 숲의 나뭇잎들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정보를 줄 수 있다."
그 목소리는 담담하게 울렸다. 맑고도 깊은 그 음성에는 신비한 울림이 서려 있었고, 넷 중 누구도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음성과 함께, 짙은 안개가 동물들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고, 머리 위 숲의 천장은 어슴푸레하게 빛을 띠었다.
“지, 지금… 들었어? 다들 들었지?!” 개가 더듬으며 물었다.
“어쩌면… 신일지도 몰라!” 스컹크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럼… 천사예요?” 스컹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다.”
“그럼… 악마…?” 스컹크는 점점 겁에 질려갔다.
“그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예요?”
근처에서 안개가 서서히 짙어지더니, 마침내 그것이 거대한, 뿌연 흰 여우의 형상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나는 너희와 같은 존재다.”
개는 나머지 셋을 자기 뒤로 밀어넣으며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뭘 원하는 거야?” 개가 주춤거리며 물었다. “혹시… 우리가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인가요?”
“그렇다,” 여우가 대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자주… 기도에 응답하나요?” 개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들을 수 있고, 응할 수 있을 때는 응답한다.”
“자주 듣나요?”
“아니다. 이번이 처음이다.”
“아…” 개는 어째선지 그 말에 약간의 안심을 느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죠?”
“말했듯이, 정보를 줄 수 있다.”
“어떤 정보요?”
“문 앞에 놓인 음식은 너희를 더 빨리 희미하게 만들었다.”
“봐!” 너구리가 끼어들었다. “내가 경고했잖아!”
“너희가 찾는 음식은 희미해짐을 지연시킨다,” 여우는 말을 이었다. “많이 먹을수록,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스터비스…?” 주머니쥐가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곳이다.”
“내 입엔 그냥 싸구려 패스트푸드 맛이던데…” 너구리가 투덜거렸다.
“그 음식은 영혼의 소멸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그것이 유일함의 이유다.”
“우린 왜 여기 있는 거죠?” 개가 물었다.
“너희가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여기 있다.”
“그게 아니라… 존재의 이유 말이에요. 우린 왜 유령이 된 거죠? 사후세계에 방황 말고도 다른 길은 없는 건가요?”
“왜 어떤 영혼은 이승에 머무는지, 나는 모른다. 나 역시 다른 운명을 경험한 적 없고, 그러한 이도 만나본 적 없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선택에 대한 경고뿐이다.”
“선택…?”
“그 음식을 계속 먹으면,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결국 너희는 사라질 것이다. 또 하나의 선택은, 사람들의 집 앞에 놓인 음식을 먹고 빠르게 사라지는 길이다. 머무는 쪽을 택하면 너희는 결코 그 너머를 알 수 없다. 사라지면, 그 너머의 미지의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젠장—” 너구리가 내뱉으려다, 스컹크의 “쉿!” 소리에 말을 삼켰다.
“너희는 이 숲을 한 번은 떠날 수 있다,” 여우가 계속 말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면, 이 숲에 얽매이게 된다. 이 숲의 일부가 되고, 여기에 묶이게 된다. 이 숲은 ‘많음’이다. 많은 눈을 가졌고, 많은 것을 안다.”
그 순간, 하늘을 덮은 숲의 천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나뭇잎들 사이사이로 수많은 눈이 떠올랐다. 공중에 떠 있는 해체된 눈들이 빽빽히 도열하자, 스컹크는 겁에 질려 작은 비명을 지르고 개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잎에서 초록빛이 빠져나가더니, 거대한 팔이 형성되어 땅으로 내려와 흙을 한 움큼 집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흙이 시계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색이 빠진 잎들은 이상한 빛으로 번뜩였고, 그 빛은 섬유 광섬유 장식처럼 천천히 색을 바꾸었다. 그들 주변엔 반투명한 형상들이 나타났다. 그들처럼 투명했지만 빛나지는 않았다. 시간은 왜곡되었다. 각 장면은 실시간처럼 느껴졌지만, 끝난 뒤엔 마치 꿈처럼 희미했다. 노인과 아이가 숲속을 거닐고, 남녀가 멀리 떨어진 나무에 이니셜을 새긴 뒤 입을 맞추었다.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저장했고, 들고양이가 숲속을 어슬렁거렸다.
어떤 남자가 커다란 자루를 숲으로 끌고 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하나의 거대한, 연한 초록빛 팔이 하늘에서 뻗어와 그를 덮치려 했다. 그는 도망쳤다. 뒤에서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려한 말투였지만, 그녀의 말은 기묘하고 무서운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낯선 언어로 속삭이다, 마침내…
“…숲은 알고 있어, 숲은 너를 보고 있어…”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거대한 손 안의 흙이 거의 다 빠져나가자, 초록빛은 다시 나뭇잎으로 흘러들어갔다. 색은 사라졌고, 손은 부드럽게 흙으로 부서져 땅에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우는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숲의 힘을 보았느냐. 이곳을 지나가는 자들의 비밀을 안다. 너희에게 주어진 다른 운명은 ‘포획’뿐이다. 그건 피하길 바란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그 말과 함께, 여우의 머리는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흐릿한 노란빛이었던 여우의 눈은 마치 배터리가 닳아가는 자동차 전조등처럼 깜빡이더니 점점 사그라졌다. 짙은 안개가 다시 그의 거대한 몸을 감쌌고, 마침내 여우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진 뒤 안개도 흩어졌다.
잠시, 네 동물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진짜… 그런 날 있잖아,” 주머니쥐가 마침내 말했다.
“어떤 날?” 너구리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런 날. 그냥 그런 날 있잖아.”
“이제 어떻게 할까?” 개가 물었다. “그냥… 이렇게 사라질까? 운명에 맡길까?”
“모르겠어…” 스컹크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국엔 그렇게 될 것 같긴 해,” 주머니쥐가 말했다. “하지만 말이지, 나는 마지막 스터비스 버거 하나 먹지 않고선 이 세상을 떠날 생각 없어. 갈 사람?”
나머지 셋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심을 다잡은 그들은 다시 숲의 가장자리로 향해 나아갔다.
✲
스터비스 간판 불빛은 고속도로 옆에서 자랑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나라 전체에서 사랑받는 패스트푸드 체인의 존재를 알리는 듯, 그 빛은 멀리서도 분명했다. 그 빛이 번지는 경계, 숲의 어둠 속에서 네 마리의 유령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흘렀다는 증표처럼,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투명해져 있었다. 가장 최근에 스터비스 음식을 먹은 개와 너구리는 비교적 선명했지만, 스컹크와 주머니쥐는 심각하게 희미해져 있었고, 서서히 찾아오는 깊은 탈진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기야,” 개가 외쳤다. “스터비스. 정말 오랜만이야…”
“그 밴 타고 다니던 사람이 우릴 봤잖아,” 스컹크가 말했다. “그럼 다른 사람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얘긴데… 어떻게 들키지 않고 음식을 구하지?”
네 마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그들은 아직 그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간단해,” 너구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쓰레기통 뒤지면 돼.”
“절대 안 돼,” 개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 먼 길을 와서 또 버린 음식이나 먹으려고 온 게 아냐. 우린 ‘갓 만든’ 버거를 먹을 거야.”
“그럼 어쩔 건데?” 너구리가 되물었다.
“협력하면 해낼 수 있어…”
“나는 그 밴에 다시 잡히고 싶지 않아. 난 뒤쪽으로 갈 거야, 쓰레기통 있는 곳으로. 같이 갈 사람?”
스컹크와 주머니쥐는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와 너구리보다 훨씬 더 희미해졌다는 걸 서로 깨달았다. 기운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는 게 뚜렷했다.
“우리, 아마 진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스컹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가는 듯 희미했다.
“미안, 친구,” 주머니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선 남은 음식이라도 조금 먹고, 그 다음에 갓 만든 걸 시도하면 안 될까?”
“곧 해 뜰 거야…” 개가 초조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늦으면 저녁 메뉴가 끝나고 아침 메뉴로 바뀔 거라고.”
스컹크와 주머니쥐는 그 말에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주머니쥐가 투덜거렸다. “스터비스 아침 메뉴 진짜 별로란 말이야! 그래도… 우리 여기서 뭐라도 안 먹으면 진짜 끝장이야…”
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 그는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둘은 저 친구랑 같이 뒤로 가서, 당장 기운 차릴 만한 거라도 찾아봐. 난 앞문 쪽으로 가서 신선한 걸 가져올게.”
“혼자 간다고?” 스컹크는 더욱 불안해졌다.
“나, 여기서 수도 없이 음식 받아본 경험 있어. 이번에도 할 수 있어.”
개는 더 말하지 않고 바로 앞으로 뛰어갔다. 나머지 셋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자,” 너구리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너희 둘 먼저 뭐라도 먹어야 해.”
✲
개는 테이블 밑에 몸을 숨기고,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며 익숙한 스터비스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단단한 흰색 금속 의자들과 연한 갈색 타일로 된 바닥은 청결과 오염 사이를 영원히 오가는 듯한 상태였다. 지금은 방금 청소한 듯 바닥이 번들거렸고, 의자 아래와 벽 근처에는 치워지지 않은 찌꺼기 때가 뭉쳐 있었다. 아이보리색 벽, 커다란 전면 유리창, 그리고 다양한 할인 행사와 세트 메뉴 광고가 붙은 창문. 이곳은 그에게는 오랜만에 되찾은 집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정말 오랜 시간 이곳을 떠나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어렴풋한 서류 작업, 스트레스, 늦은 밤의 기억들이 스치듯 지나가고는 곧 사라졌다.
그는 바로 이 자리에 앉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잊혀진 어느 시간이었다. 막 구워져 보온 랙 위에 놓인 고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침이 고이기 시작했고, 흘러내린 침은 바닥에 닿자마자 증발해버렸다. 개는 조심스럽게 기회를 엿보며 기다렸다. 하지만 계산원이 한동안 전혀 움직이지 않자, 개는 직접 기회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쓰레기통을 쓰러뜨리고 재빨리 원래 숨었던 자리로 돌아갔다.
계산원은 또다시 놀라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쓰러진 쓰레기통을 바라보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는 쓰레기를 주우며 투덜거렸다. 이때를 틈타 개는 카운터 뒤로 달려가, 그릴 옆 보온 랙 위에 놓인 래핑된 스터비스 버거 하나를 발견했다. 재빨리 그것을 입에 물고 다시 테이블 밑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포장을 너무 시끄럽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심스레 버거를 풀었다. 마침내 눈앞에 놓인 스터비스 버거. 더는 참지 못하고 그는 허겁지겁 버거를 먹어치웠다.
그의 소리를 들은 계산원이 다시 주위를 살폈지만, 마침 그 순간 문 위의 종이 다시 울리며 한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그 청년은 핏발 선 눈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마치 몽유병자처럼 비틀비틀 걸어와 카운터에 섰다.
“안녕하세요,” 그는 말하듯 한숨 쉬듯 말했다. “클래식 스터비스 버거 세 개요. 치즈랑 마요네즈, 특제 소스는 빼고요. 나머진 다 넣어주세요.” 메뉴판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덧붙였다. “아, 그리고 무가당 아이스티 스몰 사이즈 하나요.”
“다 해서 5달러 67센트입니다,” 계산원이 응답했다. 졸음에 찌든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이런 걸 먹는다니… 좀 늦지 않았어요?”
“네. 하지만 오늘 밤은 길었거든요. 그럴 자격은 있죠.”
“뭐, 본인 선택이죠.”
청년은 계산을 마치고 금세 음식이 담긴 쟁반을 받았다. 그는 개가 숨은 테이블 바로 옆에 앉았다. 그리고 버거 하나를 포장지에서 꺼내며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아, 젠장. 빨대 깜빡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스티에 쓸 빨대를 가지러 갔다. 그 사이 개는 쟁반을 들고 도망치려 했지만, 청년이 돌아오자 할 수 없이 다시 숨었다. 자리에 앉은 청년은 버거를 다시 바라보다가 또다시 중얼거렸다.
“아, 이런! 케첩도 까먹었네.”
청년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케첩을 가지러 간 틈을 타, 개는 이번에는 쟁반 위의 버거 하나를 훔치는 데 성공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온 청년은 의아한 얼굴로 쟁반을 바라보았다.
“어라?”
“왜요?” 계산원이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버거 세 개 맞죠?”
“네, 그런데 왜요?”
“여기 두 개밖에 없는데요?”
“말도 안 돼요! 분명 세 개 드렸는데…”
계산원이 청년의 테이블로 다가가는 사이, 개는 버거를 물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테이블 밑을 빠져나왔다. 테이블 사이를 재빠르게 이동해 출입문에 도달하자, 또다시 문 위의 종이 딸랑 울렸다. 두 남자는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고, 아무도 보이지 않자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다람쥐, 주머니쥐, 그리고 너구리는 스터비의 뒷마당에 있는 쓰레기통과 더스트빈을 뒤져 각종 버려진 음식 찌꺼기를 씹고 있었다. 스컹크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주머니쥐는 체념과 긍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으며, 너구리는 진심으로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게 어떻게 맛있을 수가 있어?" 스컹크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냥 뭐든 다 그렇지," 너구리가 대답했다. "익숙해지면 되는 거야."
"쓰레기 먹는 데 익숙해지라고?" 스컹크의 말은 빈정거림으로 가득했다.
"그래," 너구리가 계속했다.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있었어. 아, 아니, 실제로 알진 않고,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이제 돈 안 쓸래’ 하고 결심한 거야. 그리고 진짜로 돈을 완전히 끊었지."
"돈을 끊었다고?!" 주머니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맞아. 그냥 세상이 지긋지긋했던 거야. 나 같아도 싫었을 것 같아. 헛소리도, 구속도, 책임도 없는 인생. 완전 자유."
"그래서 어떻게 먹고살았는데?" 주머니쥐가 물었다.
"우리처럼 살았지. 주워 먹고, 쓰레기통 뒤지고. 쓰레기 다이빙도 기술이야. 일종의 과학이지. 요령이 필요해. 초보자들한테 실망스러운 건 당연해. 요령이 있어야 진가를 아는 법이거든."
"그럴 수도 있겠네." 스컹크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말인데," 주머니쥐가 말을 꺼냈다.
"응?" 너구리는 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 있었다.
주머니쥐가 스컹크 쪽을 바라봤다.
"네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했지?"
"응, 있어."
주머니쥐가 건물 쪽을 가리켰다.
"그 아빠가 여기 와서 밥 먹고, 돈 내고 했던 것도 기억하지?"
"응..." 너구리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짐승이었잖아. 우리가 죽었을 땐, 말하는 주머니쥐나 개나 뭐 그런 존재였던 기억은 없잖아."
"나도 그거 생각해봤어." 너구리는 몽롱한 표정으로 말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걔 말이 맞았던 것 같아. 우리 상황을 좀 파악해볼 필요가 있어. 우리가 진짜 인간이었던 거라면, 그럼 우린 한 번 죽고 나서 동물이 된 거잖아."
"난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 가는 줄만 알았어." 스컹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환생 같은 건 안 믿었거든."
"그럼 너는 종교적이었나 보네." 너구리가 말했다. "유대-기독교 계열을 믿었겠지."
"나는," 주머니쥐가 말했다, "특별히 종교적이지도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허무하지 않냐? 죽는다는 게,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거야 뭐 납득이 간다 쳐도, 천국이나 지옥이나 환생, 그런 건 뭔가 '그럴 듯한 결말' 같잖아. 물론 전부 다 즐거운 건 아니지만. 심지어 유령으로 떠도는 것도 뭔가 분위기가 있잖아, 이론적으로는. 근데 우리 지금 이 꼴은 뭐야. 그냥 버거 사 먹으러 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쓰레기 뒤지는 유령이라니. 남을 괴롭히는 유령도 아니고."
"유령은 미련이 남아야 떠돈다던데," 스컹크가 말했다.
"그럼 우리도 미련이 있는 걸까?" 너구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기억이 없잖아!" 스컹크가 울컥했다. "어떤 미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뭘 알아!"
"진짜 난감한 일이야." 너구리가 공감했다.
"나는 미련이고 뭐고 상관없어," 주머니쥐가 단호히 말했다.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난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다고. 뭐,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긴 하지. 그래도, 이거 다 먹고 나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네."
"이게 무슨 먹는 거야," 스컹크가 반박했다. "존재를 유지하려고 쓰레기를 억지로 밀어넣는 거잖아."
"그게 바로 먹는 거지," 주머니쥐가 받아쳤다.
바로 그때, 건물 모퉁이에서 개가 나타났다. 입에는 스터비 버거를 물고,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세 마리는 흥분하며 그 주위를 에워쌌고, 개는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발과 코로 밀어 벗기며 버거를 땅에 내려놓았다.
"보라!" 주머니쥐가 외쳤다. "성배시여!"
"뭐라고?" 스컹크는 어리둥절했다.
개는 스컹크의 혼란스러운 얼굴은 무시한 채 말했다.
"너희 둘이 나눠 먹는 게 좋겠어." 그는 스컹크와 주머니쥐를 가리켰다.
"그럼 나는?" 너구리가 물었다.
"걔들이 유령 음식 제일 많이 먹었잖아," 개가 설명했다. "그 영향을 줄이려면 이걸 먹어야 해."
"하지만 너야말로 먹어야지!" 스컹크가 외쳤다. "넌 이걸 위해 그렇게 애썼잖아!"
"난 이미 하나 먹었어. 게다가 더 가져올 수 있어."
"다음엔 우리가 도와줄게," 주머니쥐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걱정 마. 혼자서 들어가는 게 훨씬 수월해." 개는 자신만만했다.
"그럼," 너구리가 선언했다. "우리 중에서 내가 제일 손재주가 좋으니, 이건 내가 나눠줄게." 근처에 굴러다니던 양철 캔 뚜껑을 이용해, 너구리는 버거를 반으로 잘랐다.
"너도 조금은 먹어야지," 스컹크가 말했다.
너구리는 개를 바라봤다. 개도 그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쥐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머니쥐는 버거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다가 결국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래, 먹어. 공평하잖아." 잠시 멈추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도."
"와아!" 스컹크가 기뻐했다.
너구리는 각 반쪽에서 조금씩 떼어내 네 명에게 나눠주었다. 스컹크와 너구리에게는 큰 조각을, 개와 자신에겐 작은 조각을.
"이거 뭔가 성찬식 같지 않아?" 스컹크가 중얼거렸다. "빵을 떼어 나눠주는 거 말이야."
"포도주만 없네," 주머니쥐가 농담을 던졌다.
너구리는 스터비 버거와 와인을 함께 먹는 상상을 하곤 몸서리쳤다. 재빨리 그 생각을 털어내고 마지막 조각을 개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자기 조각을 높이 들며 건배하듯 외쳤다.
"정신과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육체는 뭐… 별수 없고!"
"사는 동안 즐기자!" 주머니쥐가 외쳤다. "죽었든 살았든 간에!"
"같이 어울릴 친구들이 있다는 게 최고야!" 스컹크도 덧붙였다.
"그만 말하고 빨리 식기 전에 먹자!" 개가 마무리했다.
네 마리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다. 개, 스컹크, 너구리는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었지만, 주머니쥐는 한 입에 삼켜버렸다. 식사를 마친 후, 네 마리 모두 등을 기대고 앉아 만족스럽게 숨을 돌렸다. 그들의 몸은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는걸," 개가 말했다.
"정말이지," 스컹크도 공감했다.
"우리가 도로에서 처참하게 치인 것부터 시작된 밤이라곤 믿기지 않네," 주머니쥐가 말했다. "희한하긴 해도, 꽤 괜찮은 밤이었어."
"동감이야," 개가 말했다. "다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처음엔 좀 걱정했는데, 너희들 꽤 괜찮더라."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잠시 더 별빛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개가 일어섰다.
"좋아," 그가 말했다. "이제 다음 차례야."
"이번엔 우리가 도와줄게!" 스컹크가 또다시 외쳤다.
"아냐, 나 혼자 가는 게 더 쉬워. 아침 되기 전까지, 각자 하나씩은 먹게 될 거야!"
"와! 좋아!" 주머니쥐는 침을 꼴깍 삼켰다.
"금방 돌아올게!" 개는 다시 건물 앞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괜찮은 밤이야," 주머니쥐가 말했다. "이대로 좀 즐겨보자고..."
✲
건물 뒤편 벽에 등을 기대고, 세 마리 동물은 자신들의 작지만 확실한 승리를 누리며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배도 채웠으니," 너구리가 주머니쥐에게 말했다. "그 철학적인 고민들은 좀 줄었나?"
"좀 그래.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긴 해. 그냥 앉아서 사라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게 다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뭐, 앉아서 보내는 전통적인 삶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고..."
"전에 우리가 누굴 따라다니면서 귀신처럼 괴롭히자는 말 했었잖아. 어쩌면 그게 답일지도 몰라."
"난 사람들 무섭게 하고 싶지 않아!" 스컹크가 삐죽이며 말했다.
"굳이 무섭게 안 해도 되지," 너구리는 생각에 잠기듯 말했다. "위험을 경고하는 방식으로라도... 착하게 괴롭히는 거지."
"있잖아..." 스컹크는 마치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약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건 어때?"
"뭐?!" 주머니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약을 잔뜩 하고 있어. 우리가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삶을 바로잡게 도와주는 거야. 립스틱 같은 걸 찾아서 욕실 거울에 ‘약 하지 마!’라고 써놓는 거지. 아침에 일어나서 그걸 보면 완전 소름 돋아서 약을 끊고, 직장도 잡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손주도 보고... 다 우리 덕분이 되는 거야!"
스컹크는 들뜬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주머니쥐와 너구리는 당황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그냥 그 사람 약을 싹 모아서 변기에 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주머니쥐가 말했다.
"아, 그렇긴 하네." 스컹크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말인데, 우리 꼭 유령으로만 남아있을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너구리가 흥미롭게 물었다.
"천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내가 어릴 때 '인어공주' 읽었거든. 그 이야기에서는 인어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하늘나라로 간다고 나와. 우리도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천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선과 악의 정의가 얼마나 애매한가에 따라 다르지."
"응?" 스컹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령, 왼쪽엔 자동차에 치일 위기의 아기가 있어. 오른쪽엔 탈선하려는 기차가 있는데, 그쪽엔 다른 기차랑 충돌할 수도 있지. 우린 둘 중 하나만 막을 수 있어."
"야," 주머니쥐가 끼어들었다. "우리 지금까지 차 피한 적 있긴 했냐?"
"우린 아기를 구할 거야!" 스컹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근데... 기차 안에도 아기가 있으면? 기차 안에도 아기 있어?"
"기차 안엔 아기 넷이랑 교도소 가는 연쇄살인범 다섯이 타고 있어," 너구리가 말했다.
"왜 그런 조합이 같은 기차에 타 있는데?" 주머니쥐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어휴..." 스컹크는 머리를 싸맸다. "너무 많은 아기들 얘기야..."
"그리고 차에 치일 아기는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아기고, 기차에 있는 아기 중 하나는 술에 찌든 엄마와 집 나간 아빠 사이에서 자란 아기야. 또 다른 아기는 힘들게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간호사의 아기고."
"난 그냥 다 죽게 놔둘래," 주머니쥐가 툭 던졌다. 스컹크와 너구리는 충격을 받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최악의 경우면 어때?" 주머니쥐가 덧붙였다. "다시 동물로 태어나고, 또 차에 치이고, 햄버거 찾으러 떠도는 유령이 되는 거지. 내가 겪어봤는데... 그렇게 나쁘진 않더라."
스컹크와 너구리는 조용히 그 말에 잠겼다. 주머니쥐는 분위기가 너무 정적이 되자 주제를 바꿨다.
"근데 우리 왜 유령일까? 왜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남아있는 거지? 우리 인간이었잖아. 근데 지금 이 모양이야. 여우... 그 녀석은 또 뭐였을까. 왜 스터비 버거가 우리를 이승에 붙잡아두는 걸까?"
"아마도," 너구리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살아 있을 때든 죽은 후든, 이 음식이 우리하고 뭔가 영적인 끈으로 이어져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계속 여기에 묶여 있는 걸지도."
"그럴지도..." 스컹크가 말하다 말고 멈췄다.
그녀의 생각은 곧 커다란 검은 밴의 등장으로 끊겼다. 세 동물은 식당 구석 쓰레기통 뒤로 숨었다. 잠시 후, 식당 뒷문이 열리며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차량의 운전석에서는 후드티를 뒤집어쓴 남자가 내렸다.
두 남자는 밴 뒤쪽 문을 열고, 커다란 하얀 상자들과 쓰레기봉투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이 든 남자는 '매니저'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고, 젊은 쪽은 명백히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이런 걸 어떻게 먹는 거지?" 매니저가 투덜거렸다.
"모르겠어요. 사람들 입맛은 이상하잖아요. 그 돈 안 쓰고 사는 사람 얘기 들려드렸죠?"
"수백 번은 들었겠지..."
후드티를 쓴 남자는 말없이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냉동고로 향했다. 알바생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근데 저 남자는 도대체 뭐야? 완전 또라이 아냐?"
"나도 몰라," 매니저가 대답했다. "원래 일하던 애가 몇 주 전에 그만뒀거든. 그런데 이 남자가 갑자기 이력서를 들고 나타나서는, 말도 안 하고 그걸 카운터에 내리꽂고 그냥 가버렸어. 면접도 안 보고, 인사도 안 하고. 그냥 이력서 툭 놓고 사라졌지. 다른 지원자도 없었고... 나도 기사 구하느라 급했어."
"나였으면 했을 텐데!"
"넌 지금 자리에 너무나도 소중한 인재잖아!"
"와, 감사합니다!" 직원은 매니저의 비꼼을 눈치채지 못하고 감탄했다. "이런 말 해주는 상사는 진짜 드물어요. 진짜 멋진 매니저세요."
"어, 어... 고, 고마워..." 매니저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래서 그 남자 이름이 뭐예요?"
"아놀드 젠킨스."
"아놀드 젠킨스?!"
"그래, 왜? 아는 사람이야?"
"아니요, 그냥... 왠지 이름이 고딕풍일 줄 알았거든요. 나이트셰이드 스파이더베인 같은 그런 거요."
"이력서엔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아놀드 젠킨스를 썼나 보지."
"전에 무슨 일 했던 사람인데요? 영혼 수확하거나 죄 없는 자의 피를 마시는 일 말고요."
"글쎄," 매니저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대충 예상 가능한 거 몇 가지 했더라. 일단 묘지 파는 일. 그 뒤엔 장례식장에서 일했는데, 거기서 짤렸더라고. 궁금해서 전화해봤는데, 이유가 뭐였게? 그 후드티를 벗지 않아서 사람들이 농담인 줄 알고 기겁했다나 뭐라나. 그다음엔 회계사로도 일했대. 잘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동물 관리 자격증 땄다더니 우리랑 연결됐지 뭐야."
"와... 진짜 미쳤네."
"그러게 말이야. 딱 이런 데 어울리는 사람이지."
매니저는 말끝을 흐리며 쓰레기봉투 하나를 열어 들여다봤다. 뭔가에 감탄한 듯한 표정이었다.
"오늘 밤 완전 물 올랐는데? 이건 뭐가 뭔지 구분도 안 돼. 아예 분쇄해놔서 편하긴 하겠어. 창의력이 죽은 줄 알았더니... 전에 가져온 건 개, 스컹크, 주머니쥐, 그리고 너구리 하나 찌그러진 거였는데 완전 허접했지. 그런데 이건... 이건 지구 생명체라고도 못 하겠어."
"특제 소스만 잔뜩 뿌려두면," 직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뭐든 먹거든요..."
숨어 있던 세 동물은 그 말을 듣자마자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구토를 끝낸 그들의 모습은 더욱 희미해지고, 반투명해졌다. 두 남자는 그 소리를 들었다.
"방금 뭐였어요?" 직원이 물었다. "쓰레기통 뒤에서 노숙자가 토하는 거 아냐?"
그 순간, 후드티를 쓴 남자가 식당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소란을 들은 듯했다. 그는 말없이 세 동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매니저와 직원은 여전히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 남자는 그들을 감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걸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 얼른 나머지 짐도 들여가자," 매니저가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저 남자가 뭔가 찾기라도 하면... 그 다음은 보고 싶지도 않아..."
매니저와 직원은 마지막 상자와 봉투를 챙겨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후드티를 쓴 남자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공포에 얼어붙은 세 동물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
계산원과 손님은 카운터 뒤에서 연달아 떨어지는 수상한 물건들에 대해 조사 중이었다. 개는 몇 가지 기지를 더 발휘해 이것저것을 쓰러뜨리고는 다시 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산만해진 사이, 개는 따끈따끈한 스터비 버거가 담긴 트레이 하나를 입에 물고 잽싸게 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 나가려는 찰나, 천장 구석에 걸린 텔레비전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걸음을 멈췄다. 잘 차려입은 뉴스 앵커가 ‘스터비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패스트푸드 마니아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인기 체인점 ‘스터비스’가 현재 그들의 제품에 사용된 방부제 성분으로 인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코우드 의학연구소의 에드먼드 로젠탈 박사는 해당 성분이 거의 모든 스터비스 제품에서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화학물질은 ‘프리저비타탄(Preservitatan)’이라는 이름으로 한때 노화 방지 크림으로 판매되었으나, 이후 그 효과가 방부 처리용 약품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장에서 퇴출됐습니다. 실제로 이 물질은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신경 기능과 세포 성장의 급격한 저하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시판 당시 이 약물은 외용 크림으로만 사용되었고, 식용 형태로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인 연구팀은 식품 보존제로 사용된 경우, 소비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로젠탈 박사는 해당 조사 결과를 FDA에 공유했으며, 오늘 오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보건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전례 없는 조치—전국 스터비스 매장의 즉각적인 폐쇄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은 계속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개는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벌인 소란으로 두 남자가 다시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그는, 더 생각하지 않고 입에 물고 있던 트레이를 들고 곧장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
개는 트레이를 입에 문 채로 여전히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다른 동물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개는 보지 못했다—건물 모퉁이 너머, 후드를 쓴 사내가 그 셋에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개는 들뜬 얼굴로 트레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얘들아! 이번엔 진짜 제대로 챙겼어! 다들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만큼이야! 게다가 방금 뉴스에서 들었는데, 스터비스 오늘 문 닫을 수도 있대! 완전 간발의 차로 구해낸 거라니까! 자, 이제 먹을 준비됐지?"
하지만 세 동물은 꼼짝도 하지 않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다가오는 후드 쓴 사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그래? 너희들 괜찮아?" 개는 당황했다.
"도망쳐." 너구리의 목소리는 마치 넋이 빠진 듯, 공허하고 무미건조했다.
"뭐?"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뭐라구?!"
"지금 도망쳐!!!"
세 동물은 일제히 숲 가장자리 쪽으로 튀어나갔다. 그들은 숲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도 그 경계 가까이를 따라 달렸다. 마침내 모퉁이 너머에서 후드를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개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친구들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
네 마리 동물은 숲 가장자리의 작은 공원, 이동식 화장실 부스 뒤에 숨어 있었다. 하늘 위로 아침의 빛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숨통을 베듯 날카로웠고, 그들의 숨결은 증기가 되어 점점 더 흐릿해져 가는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넷 모두 지쳐 있었고, 겁에 질렸으며, 숨이 턱에 차 있었다.
“어떻게…” 개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어떻게… 그자가 우릴 찾아낸 거지?”
셋은 서로 걱정스러운 눈길을 교환했다.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주머니쥐가 말했다.
“뭔데?”
“스터비스 말이야.”
“말하지 마!” 스컹크가 간절하게 외쳤다. “얘한텐 말하지 마!”
“그거, 폐업 얘기?” 개가 물었다.
“폐업?!” 너구리가 놀란 듯 반문했다. “우린 그 얘긴 못 들었는데!”
“어. 음식에 들어간 보존제 때문에 말이야. 우리한테는 해 없을 거야. 우린 유령이니까. 이미 죽었잖아! 그러니까… 잠깐.” 개가 말을 멈췄다. “그 얘길 몰랐다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던 거야?”
“…있잖아.” 주머니쥐는 그날 밤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듯 보였다.
“뭔데?”
“스터비 버거 말이야. 그게… 우리였어.”
“뭐라고?!”
“그 남자, 후드 쓴 그 남자. 걔 스터비스 직원이 아니야. 시민 공무원도 아니고. 도로에서 치인 동물들을 스터비스에 갖다 주는 거야. 거기서 그걸로 버거를 만들어. 우리가 먹은 건… 우리 자신이야.”
개는 잠시 충격에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토악질을 쏟아냈고, 토를 다 하고 난 뒤 그는 이전보다 훨씬 희미해져 있었다.
“미안해…” 스컹크가 슬프게 말했다. “그냥… 너무 끔찍해서. 우리 몸을 먹었다니… 그보다 더 역겨운 일이 또 있을까…”
“그 보존제 말인데,” 너구리는 개에게 말하면서도,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주머니쥐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후드맨의 진짜 이름이 아놀드 젠킨스래. 믿겨지냐?”
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속이 안 좋은 듯 보였다. 스컹크는 그의 목에 앞발을 얹고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너구리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 무언가를 곱씹고 있었고, 주머니쥐는 침울한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결국, 똑같은 질문이 돌아오는 거지.” 그가 말했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 후드 쓴 남자가 그들 뒤에 조용히 나타났고, 손엔 커다란 그물이 들려 있었다. 넷은 또다시 도망치려 몸을 일으켰지만, 개는 여전히 기운이 없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스컹크는 돌아서서 그를 부축했다.
“가야 해!”
하지만 그녀가 더 이상 손을 뻗기 전, 그녀는 그물에 휘감겨 버렸다. 주머니쥐와 너구리는 이미 숲 가장자리까지 도달해 있었고, 뒤를 돌아보며 공포에 질렸다.
“또야?!” 주머니쥐가 소리쳤다.
개는 다시금 놀라운 힘을 쏟아 부으며 행동에 나섰다. 그는 후드맨에게서 그물을 낚아채고, 스컹크를 그물에서 풀어주었다. 그녀는 곧장 달려갔다. 하지만 개는 따라가지 않고, 대신 몸을 돌려 후드 쓴 사내를 마주 섰다.
“이미 우리 몸은 가졌잖아!” 개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더 뭘 바라는 거야?!”
후드로 가려진 얼굴은 말없이 개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야?!” 너구리가 짧은 거리 너머에서 비명을 질렀다.
“잘 생각해 봐!” 개가 소리쳤다. “우린 어차피 점점 사라질 거야! 도로에서 치인 버거 따위 더는 못 먹겠어! 오늘 밤은 지옥 같았어! 난 죽었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점은 엉망이 됐지! 그런데 이 남은 시간까지 후드 뒤에 숨어 있는 찌질이한테 쫓겨 다니고 싶진 않아! 이름도 아놀드 젠킨스라고? 우습지도 않다! 그는 우리를 겁주는 것밖에 못 해! 하지만 우린 어차피 사라지고 있어!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더 이상 무섭지 않아. 넌 날 해칠 수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 마지막 시간을 즐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뿐이야. 그런데 난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잠시 후드 쓴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놀랍게도 천천히 몸을 돌려 멀어지기 시작했다.
스컹크와 너구리, 주머니쥐는 말 그대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개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뿌듯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주머니쥐가 중얼거렸다. “이 밤은 점점 더 허무해지네. 우리가 해야 했던 게 그냥 꺼지라고 말하는 거였다고?”
“그냥 논리적인 빈틈이었던 거야,” 너구리가 말했다. “사실 진작에 알아챘어야 했어. 우리가 도대체 뭘 걱정해야 하지? 유령으로 남든 사라지든… 저자가 우리한테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 스컹크가 물었다. “그냥 사라지게 내버려두는 거야?”
“나는 그럴 거야,” 개가 말했다.
셋은 충격에 빠져 그를 바라보았다.
“그냥 포기할 순 없어!” 스컹크가 외쳤다.
“나는 스터비 버거 더는 안 먹어. 그 고기가 누굴지 알 수가 없잖아. 우리일 수도 있어. 역겨워.”
“그래, 역겹긴 하지,” 주머니쥐가 맞장구쳤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잖아!”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어. 내가 오늘 배운 건 그거야.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있어. 각자가 선택할 수 있어.”
“숲이 있잖아!” 스컹크가 외쳤다. “그 여우가 말했잖아, 숲 안에 있으면 괜찮다고!”
“나는 그것도 싫어. 그냥 사라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 숲은 안전할지 몰라도 감옥이야. 거기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온다고 했잖아. 반면,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존재가 완전히 끝날 수도 있고,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천국이나 지옥, 혹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어딘가로 갈 수도 있겠지. 너희는 숲에 남아도 돼. 그 버거를 또 먹어도 되고. 하지만 나는 나아가고 싶어. 갖고 있는 걸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잃게 되는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까지도.”
물러서 있는 이동식 화장실 뒤, 숲 가장자리의 작은 공원 안에서 네 마리 동물은 조용히 숨어 있었다. 하늘 위로 아침빛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을 바늘처럼 찔러왔다. 그들의 숨결은 점점 더 희미해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처럼 뿌옇게 피어올랐다. 모두 지치고, 겁먹고, 숨이 가빴다.
개가 스컹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말이 반은 맞았어. 그냥 포기할 순 없어. 하지만 다시 버거를 먹으러 가거나 숲에 남는 건, 그건 포기하는 거야. 그건 그냥 두려움에 머무는 거라고."
셋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내 스컹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어조였다.
"우리가 기도했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 신도... 아무도. 우리가 놓아버리면, 기다리는 존재 따윈 없을 수도 있어."
“적어도 여기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 개가 말했다. “그건 확실해. 근데, 우리가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몰라. 난 그걸 알고 싶어. 나는 떠날 거야. 나랑 함께 있고 싶다면, 앉아. 아니라면, 숲은 바로 저쪽이야. 아니면… 스터비 버거나 더 먹든가.”
개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셋은 불안과 혼란 가득한 눈빛을 나눴다. 결국 너구리가 조용히 개 옆에 앉았다. 스컹크와 주머니쥐는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얘 말이 맞아.” 너구리가 말했다. “오늘 밤 들은 말 중에 가장 논리적이야.”
그러자 주머니쥐도 너구리 옆에 앉았다. 스컹크는 세 마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조용히 그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넷은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천천히 물러가고 별빛이 사라지는 하늘 아래, 그들은 수평선을 향해 침묵 속에서 앉아 있었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너구리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스터비스가 문 닫는 이유가 위험한 보존제 때문이었다고?”
“그래.” 개가 대답했다. “뭐였더라… 프레저브게뭐시기…”
“프리저비타탄?”
“그래! 그거야! 왜, 알아?”
“어렴풋이 기억나. 인간이었을 때 뭔가 화학 관련 일을 했던 것 같아. 그 이름, 낯익어. 내가 그걸 알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흠.” 개가 중얼거렸다. “뭐랄까. 신기하네.”
“인간이었다가 동물이 됐고, 이제는 유령이잖아. 그렇다면 직전의 기억은 몸을 바꿀 때마다 이어지지 않는 거야. 유령 상태에서만, 그것도 아주 희미하게, 일부만 남는 거지.”
잠시 너구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인간은 정말 많은 걸 알아냈어. 과학은 발전했고, 삶은 많이 나아졌지.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도 정말 많아.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이 세계처럼,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도 존재해. 심지어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 말이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주머니쥐가 물었다.
“그냥 생각을 정리해보는 중이야.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과 이 우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과학으론 설명 못 할지도 몰라. 모든 약엔 경고 문구가 붙잖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약 광고 진짜 싫어.” 스컹크가 엉뚱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궁금했는데…” 주머니쥐가 말을 이었다. “그 유령 음식은 뭐였을까? 왜 거기 있었던 걸까?”
“모르지.” 개가 대답했다.
“그냥 일반 음식이었을지도 몰라. 여우가 말했잖아, 스터비스 음식은 특별하다고. 아마 스터비스 음식은 유령을 유지시켜주지만, 일반 음식은 오히려 더 빨리 사라지게 만드는 걸지도.”
“입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스컹크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입에서 나오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그 후드맨한테서 도망칠수록, 걔는 더 집요하게 쫓아왔지.” 개가 말했다. “아마 일반 음식을 먹을수록 더 빨리 희미해졌던 것도, 유령이 지상 음식을 먹으면 안 돼서였던 걸지도.”
“그럴싸하네.” 주머니쥐가 말했다. “근데 그 여우 녀석은 뭐였을까? 그 숲도. 뭔가 현실 같으면서도 낯설었어.”
“그 숲엔 천 개의 눈이 있다고 했잖아.” 너구리가 떠올렸다. “자기도 그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했고. 전부 연결돼 있다고 했지. 아마도 그 숲에 들어가면, 지구의 일부가 되지만, 동시에 자신을 잃는 거 아닐까. 지식은 많았지만, 개성은 거의 없었잖아.”
“그 녀석이 우리가 기도했을 때 온 답일까?” 스컹크가 물었다. “아니면 그냥 우연이었을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두 조용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우리가 사라진 다음에… 신이라도 만나면 좋겠어.” 스컹크가 말했다. “아니면 좋은 사람이라도.”
“나도.” 개가 말했다. “나도 그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너구리가 조용히 말했다. “이런 건 받아들여야 해.”
“알 수 없는 걸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해.” 개가 덧붙였다. “안 그러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데에 갇히는 거야.”
“근데 말이지,” 주머니쥐가 말했다.
“응?” 개가 물었다.
“아무리 징그러워도… 너희 진짜 맛있었어.”
넷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쌓여온 긴장이 잠시 녹아내렸다.
“힘든 밤이었지만,” 스컹크가 웃음이 잦아든 뒤 조용히 말했다. “결국 나쁘지 않은 마지막 밤이었어. 그래도 너희랑 같이여서 다행이야.”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외곽선만이 겨우 보일 뿐이었다.
“이제 가는 것 같네.” 너구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못 보게 되더라도,” 개가 말했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모든 것에 대해서.”
“그래.” 스컹크가 말했다. “아놀드 젠킨스한테서 날 구해줘서 고마워.”
“내 시체에서 튀어나와 너희 놀라게 했는데도 안 버려줘서 고마워.” 주머니쥐가 말했다.
“다들 정말 고마워.” 너구리가 조용히 말했다.
셋은 너구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마워.”
그들의 외곽선마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목소리도 더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단지 공기 속에 잔잔한 메아리처럼 퍼질 뿐이었다. 해는 수평선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아침이 마침내 밝았다.
“아!” 개가 외쳤다. “생각났다!”
“뭔데?” 스컹크가 물었다.
“마리오 피자.”
“마리오 피자?!” 주머니쥐가 놀란 듯 외쳤다.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거기 우리 지금 위치에서 겨우 1마일 거리야. 밤새 여는데! 거기로 갔어야 했어! 마지막 식사는 거기였어야 했다고!”
“나 마리오 피자 좋아해!” 너구리가 감탄하며 말했다. “젠장.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러게.” 스컹크도 덧붙였다. “거기 갔으면 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고기 없는 피자 시켜서 우리 시체 먹을 걱정도 없었을 텐데.”
“젠장!” 주머니쥐가 외쳤다. “항상 이런 식이지 뭐!”
“그냥 그런 날인 거지…” 너구리가 중얼거렸다.
“그런가 봐.” 개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와 함께 그의 몸도 완전히 사라져 갔다. 주변에서 지저귀는 아침 새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모르지.” 개의 마지막 속삭임. “어쩌면, 우리가 가는 곳에도 마리오 피자가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