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이야기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모음집 『셜록 홈즈의 모험(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입니다.
✲
크리스마스 이틀 뒤 아침, 나는 셜록 홈즈를 찾아 새해 인사를 전하려 들렀다. 그는 자주색 실내 가운을 걸친 채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 있었고, 오른편에는 파이프 꽂이가, 가까운 탁자 위에는 방금 읽은 듯한 구겨진 신문 더미가 쌓여 있었다. 소파 옆 나무 의자 등받이에는 낡고 남루한 펠트 모자가 걸려 있었고, 모자의 여기저기는 심하게 해져 있었다. 의자에 놓인 확대경과 핀셋으로 보아, 그 모자는 분석을 위해 걸어 둔 것이 분명했다.
“방해한 건 아닌가?” 내가 말했다.
“전혀. 오히려 잘 왔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반갑지. 이건 아주 사소한 일이긴 한데,” 그가 손가락으로 낡은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에 제법 흥미롭고, 어쩌면 교훈적인 요소도 숨어 있지.”
나는 그의 안락의자에 앉아 손을 벽난로 불꽃에 녹였다. 날이 몹시 추워져 창문엔 서릿발이 하얗게 끼어 있었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데, 혹시 끔찍한 사건이 이 모자와 얽혀 있는 건가? 뭔가 단서를 품은 물건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아니. 범죄는 아니야.” 홈즈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단지 수백만 인구가 몇 제곱 마일 안에서 뒤엉켜 사는 도시에서 흔히 벌어지는 엉뚱한 사건일 뿐이지. 인구 밀도가 극심한 도시라면,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나기 마련이거든. 그중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도 꽤 인상적이고 괴이한 사건도 많지. 우리도 그런 경우를 자주 겪었잖아.”
“정말이지. 내가 기록해둔 최근 여섯 사건 중 세 건은 법적으로는 범죄가 아니었어.”
“맞아. 자네가 말하는 건 아마 아이린 애들러의 문서 회수 사건, 메리 서덜랜드 아가씨의 특이한 일, 그리고 비틀린 입술을 지닌 사나이의 사건일 거야. 이 일도 아마 그와 비슷하게 평화롭게 끝날 일이겠지. 혹시 피터슨을 기억하나? 우리 경비원 말이야.”
“알고 있지.”
“그 사람이 바로 이 물건을 발견한 주인공이야.”
“그럼 이건 피터슨의 모자란 말인가?”
“아니, 그는 길에서 이걸 주운 거야. 주인은 아직 누군지 몰라. 자네도 이 낡은 모자를 단순한 중절모가 아니라 하나의 추론 과제로 봐줬으면 해. 우선 이 물건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부터 말이지. 크리스마스 아침 네 시쯤, 아주 정직한 친구인 피터슨은 어느 작은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토트넘 코트 로드를 따라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가스등 아래서 어깨에 흰 거위를 멘 채 비틀거리며 걷는 키 큰 사내를 보게 되었지. 구지 거리 모퉁이에 다다랐을 무렵, 그 사내와 불량배 무리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중 한 명이 사내의 모자를 쳐 날려 버렸어. 그 순간 사내는 막대기를 휘둘러 방어하려다 뒤편 상점 유리창을 깨뜨리고 말았지.
피터슨은 즉시 그를 보호하려 달려들었지만, 유리를 깬 데다 제복 차림의 관리처럼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는 걸 본 그 사내는 겁을 먹고 거위를 떨군 채 뒷골목으로 도망쳐버렸어. 불량배들도 피터슨의 등장에 놀라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현장에는 피터슨만 남게 된거야. 전장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전리품으로는 구겨진 모자 한 개와 아무 흠잡을 데 없는 크리스마스 거위 한 마리가 남았지.”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줬겠지?”
“자네 말이야, 그게 바로 문제야. 분명 거위의 왼쪽 다리에는 ‘헨리 베이커 부인께’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카드가 매달려 있었고, 모자의 안쪽에는 ‘H. B.’라는 이니셜도 남아 있었어. 하지만 이 도시에 ‘베이커’란 성을 가진 사람만 수천 명이고, ‘헨리 베이커’란 이름도 수백 명은 족히 되지. 이걸 도대체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겠나?”
“그래서 피터슨은 어떻게 했나?”
“그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이 모자와 거위를 나에게 가져왔지. 자네도 알다시피, 난 사소한 문제라도 흥미롭게 여기는 사람이니까. 거위는 오늘 아침까지 보관해두었는데, 약간 서리가 있었지만 더 지체했다간 상할 우려가 있어서 결국 먹기로 했어. 그래서 거위를 가져간 사람은 이미 그것의 운명을 이행 중이겠지. 나는 이 정체불명의 신사가 남기고 간 모자만 보관 중이고.”
“광고는 내지 않았나?”
“아니.”
“그럼 신원이 누군지 알아낼 단서는?”
“우리가 추론해낼 수 있는 만큼만 말이야.”
“그 모자에서?”
“정확히.”
“설마 농담은 아니겠지? 이 낡고 구겨진 펠트 모자에서 뭘 알 수 있다는 거야?”
“여기 확대경이 있네. 자네도 내 방법을 알잖아. 이 모자를 쓴 사람의 성격에 대해 자네 스스로 추측해보게.”
나는 낡은 모자를 받아 들고는 어쩔 수 없이 안쓰러운 눈길로 살펴보았다. 평범한 검은색 중절모였고, 형태는 둥글며 단단하지만 낡은 데다 이곳저곳 해져 있었다. 안감은 원래 붉은 비단이었지만 색이 많이 바래 있었다. 제조업체 이름은 없었고, 다만 한쪽에 ‘H. B.’라는 이니셜이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챙에는 고정 끈을 달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고무줄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심하게 먼지투성이였고, 얼룩도 여기저기 있었다. 얼룩을 숨기려 검은 잉크로 덧칠한 흔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모자를 친구에게 돌려주었다.
“그 반대지, 왓슨. 자넨 모든 걸 보고 있어. 다만 본 것을 가지고 추리하지 못할 뿐이야. 자네는 추론하는 데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그럼 자네가 이 모자에서 추론할 수 있다는 게 뭔지 좀 알려주게나.”
홈즈는 모자를 들고는 자신 특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더 많은 단서가 있었을 수도 있지. 그래도 아주 명확한 추론 몇 가지는 있고, 그 외에도 꽤 높은 확률로 추정 가능한 것도 있어. 우선, 이 모자의 주인은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다는 건 명백해. 그리고 최근 3년 전까진 상당히 넉넉한 형편이었지만, 지금은 몰락한 상태지.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도덕적인 타락—아마도 술 같은 악습—이 그에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싶네. 그런 상황이라면, 부인도 더는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겠군.”
“자네 말이 지나치군, 홈즈!”
“하지만 그는 아직 자존심은 조금 남아 있어.” 홈즈는 내 항의를 무시한 채 계속 말했다. “이 남자는 앉아서 지내는 생활을 하고, 외출도 거의 없고, 전혀 운동을 하지 않으며, 중년이고, 머리는 잿빛으로 희끗희끗해졌고, 최근 며칠 사이에 머리를 잘랐으며, 라임크림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있지. 이런 사실들은 모두 이 모자로부터 추론할 수 있어.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이 사람의 집에는 가스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자네, 농담이지?”
“전혀. 내가 이 모든 결과를 자네에게 말해주었는데도, 아직도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감을 잡지 못하겠나?”
“내가 좀 어리석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자네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추론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지적인 인물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홈즈는 대답 대신 그 모자를 자기 머리에 푹 눌러썼다. 모자는 이마를 덮고 콧등까지 내려앉았다.
“두개골의 부피 문제일세.” 홈즈가 말했다. “이 정도로 큰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안에 뭔가가 있어야겠지.”
“그럼, 몰락한 처지는 어떻게?”
“이 모자는 3년 전쯤 유행했던 모자야. 챙이 평평하면서 끝이 말린 스타일이 당시 유행이었거든. 게다가 이건 최고급 모자지. 리본 실크로 된 띠와 안감의 품질을 보게. 이 사람이 3년 전에는 이런 고급 모자를 살 여유가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새 모자를 사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생활이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증거야.”
“그건 확실하군. 하지만 예지력과 도덕적 퇴보는 어떻게 알았지?”
셜록 홈즈가 웃었다. “예지력은 이 부분에서 알 수 있어.” 그는 손가락으로 모자 끈을 고정하는 고리와 작은 클립을 가리켰다. “이건 모자에 기본으로 달려 있는 물건이 아니야. 주문해야만 달 수 있는 거지. 일부러 이런 장치를 주문했다는 건, 바람에 날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심성 있는 사람이란 뜻이야. 그런데 지금 보면 고무줄이 끊어졌는데도 교체하지 않았지. 그건 예전보다 신중함이 줄었다는 뜻이고, 이는 곧 성격이 약해졌다는 증거야. 한편으로 그는 모자에 묻은 얼룩을 감추려고 먹으로 칠하기도 했어. 아직 자기 체면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라는 징조지.”
“자네의 추리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네.”
“중년이며 머리가 잿빛이고, 최근에 머리를 잘랐고, 라임크림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모두 안감 아랫부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어. 확대경으로 보면 이발소 가위로 깔끔히 잘린 머리카락 끝이 잔뜩 붙어 있지. 그 머리카락들은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고, 라임크림 냄새도 분명히 나. 이 먼지는 거리의 회색 모래 먼지가 아니라 실내의 보송보송한 갈색 먼지야. 모자가 대부분 실내에 걸려 있었다는 뜻이지. 안감에 있는 습기 자국은 착용자가 땀을 많이 흘렸다는 걸 보여주고, 그 말인즉슨, 그는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야.”
“그런데 아까 부인이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지 않나.”
“이 모자는 몇 주 동안 한 번도 먼지를 털지 않은 상태야. 자네가 먼지 낀 모자를 쓰고 나타나고, 부인이 그걸 말리지 않는다면 나도 자네가 아내의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하지만 혹시 그가 총각이라면?”
“아니야. 자네도 기억하겠지만, 그는 거위를 사서 집에 가져가고 있었지. 그것도 화해의 선물로. 새의 다리에 달린 카드 말이야.”
“자네는 모든 질문에 답이 있구먼. 그런데 그 사람 집에 가스등이 없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건가?”
“기름 얼룩 한두 개쯤은 우연히 생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섯 개나 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촛불과 자주 접촉했단 뜻이야. 아마도 밤마다 모자를 한 손에, 꺼져가는 촛불을 다른 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생활을 했던 거겠지. 아무튼, 가스등으로는 그런 기름 얼룩이 생길 수가 없어. 이제 만족했나?”
“정말 기발하긴 하군.”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방금 말했듯이, 범죄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거위 한 마리 잃은 게 전부인데, 이 모든 추론이 어찌 보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네.”
셜록 홈즈는 뭔가 대답하려 입을 열려던 찰나, 문이 갑자기 열리며 피터슨이 불그스름한 얼굴로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얼굴에는 경악한 사람 특유의 멍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거위예요, 홈즈 씨! 그 거위 말입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응? 그게 어쨌다는 건가? 다시 살아나서 부엌 창문을 통해 날아갔단 말인가?” 홈즈는 소파에서 몸을 틀어, 흥분한 피터슨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걸 보세요, 선생님! 제 아내가 거위 모이주머니에서 찾아냈습니다!” 피터슨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고, 그 중심에는 콩알만 한 크기의 푸른빛이 번쩍이는 보석이 놓여 있었다. 맑고 눈부신 빛을 띠고 있어 어둠 속 손바닥 안에서 전기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셜록 홈즈는 휘파람을 불며 벌떡 일어났다.
“이런, 피터슨!” 그가 외쳤다. “이건 정말 대단한 보물인데. 자네도 그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다이아몬드 아닐까요, 선생님? 귀한 보석 같았습니다. 유리를 마치 점토처럼 뚫더군요.”
“보석인 건 맞네. 하지만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 '그' 보석이야.”
“설마 모카르 백작부인의 ‘블루 카번클’?”
“바로 그거야. 최근 며칠 동안 더 타임스 지면에 실린 광고를 매일 읽었기에, 크기와 형태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이고, 그 가치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천 파운드의 현상금이 실제 시장가의 20분의 1도 못 된다고 하더군.”
“천 파운드라니! 세상에 자비로우신 주여!” 피터슨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더니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게 바로 현상금이야. 백작부인은 감정적인 이유도 있어서, 이 보석만 되찾을 수 있다면 자신의 재산 절반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보석은 코스모폴리탄 호텔에서 분실됐었지?”
“그렇지. 바로 12월 22일, 다섯 날 전이었지. 배관공 존 호너가 백작부인의 보석함에서 그것을 훔친 혐의를 받았어. 증거가 워낙 확실해서 사건은 형사재판소로 넘겨졌지. 아마 그 사건 기사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홈즈는 신문 더미를 뒤적이더니, 결국 한 장을 골라 펼쳐놓고 단락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코스모폴리탄 호텔 보석 도난 사건. 스물여섯 살의 배관공 존 호너는 12월 22일, 모카르 백작부인의 보석함에서 ‘블루 카번클’로 알려진 귀중한 보석을 훔친 혐의로 기소되었다. 호텔 수석 직원 제임스 라이더는, 도난 당일 백작부인의 드레싱룸 난로의 두 번째 격자봉이 헐거워져 그것을 납땜하게 하려고 호너를 안내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잠시 호너와 함께 있었으나, 곧 다른 일로 자리를 떴다고 한다.”
“다시 돌아왔을 땐, 호너가 사라졌고, 보석함이 억지로 열려 있었으며, 백작부인이 늘 보석을 넣어두던 모로코 가죽 케이스가 드레싱 테이블 위에 텅 빈 채로 놓여 있었습니다. 라이더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경보를 울렸고, 호너는 그날 저녁에 체포되었지요. 하지만 보석은 그의 몸에서도, 집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백작부인의 하녀인 캐서린 커색은, 라이더가 도난 사실을 발견하고 외친 비명을 들었으며 곧장 방 안으로 달려가 보니 앞선 증인이 말한 상황 그대로였다고 증언했습니다. B 관할구역의 브래드스트리트 경감은 체포 당시 호너가 격렬히 저항하며 극구 무죄를 주장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피고에게는 이전에 절도 전과가 있었고, 재판부는 즉결심판을 거부하고 사건을 형사재판으로 넘겼습니다. 재판 과정 내내 호너는 깊은 충격을 받은 듯했고, 마지막에는 기절해 법정 밖으로 실려 나갔다고 합니다.”
“흠! 경찰 쪽 조사는 대강 이렇군.” 홈즈는 신문을 던지며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그 보석함이 털린 사건에서부터 토트넘 코트 로드에서 거위의 모이주머니 안에서 보석이 나온 이 사건까지, 그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일이야. 보게, 왓슨. 우리 둘이 농담 삼아 추리하고 있던 일은 이제 훨씬 더 심각하고, 무고하지 않은 국면으로 접어들었어. 이 돌을 보게. 이 돌은 거위에게서 나왔고, 그 거위는 헨리 베이커라는 그 낡은 모자를 쓴 신사에게서 온 거지.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 신사를 반드시 찾아내고, 그가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혀야 해. 그걸 위해선 우선 가장 단순한 방법부터 써보자고. 그게 바로 모든 석간신문에 광고를 내는 거야. 만약 그것도 실패한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뭐라고 쓸 건가?”
“연필하고 종이 조각 좀 줘. 자, 이렇게 쓰면 되겠군. ‘구지 거리(Goodge Street) 모퉁이에서 거위 한 마리와 검은 펠트 모자를 발견함. 헨리 베이커 씨는 오늘 저녁 6시 30분에 베이커 가 221B로 오시면 찾아가실 수 있음.’ 간단명료하지 않나?”
“응. 아주 깔끔하군. 하지만 그 사람이 그걸 볼까?”
“그는 분명 신문을 살펴볼 거야. 그 거위는 가난한 사람에겐 큰 손실이었으니까. 그는 창문을 깨뜨리고 피터슨이 접근해오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일단 도망치기만 급했겠지만, 그 뒤로는 새를 놓쳐버린 걸 무척 후회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신문에 자기 이름이 실리면,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광고를 보라고 알려주겠지. 피터슨, 자네 이거 들고 광고 대행사에 가서 석간 신문들에 광고를 내주게.”
“어느 신문에 넣을까요, 선생님?”
“글로브, 스타, 펄 몰, 세인트 제임스 가제트, 이브닝 뉴스, 스탠더드, 에코, 그리고 생각나는 다른 신문들 전부.”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이 보석은요?”
“아, 맞다. 이건 내가 맡아둘게. 고맙네. 그리고, 피터슨,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거위 한 마리 사서 내게 좀 남겨주게. 자네 가족이 먹고 있는 그 거위 대신, 우리가 그 신사에게 돌려줘야 하잖아.”
피터슨이 나가고 나서 홈즈는 보석을 들어 빛에 비추어 보았다.
“정말 멋진 돌이야.” 그가 말했다. “보게, 얼마나 반짝이는지. 물론 이런 돌은 언제나 범죄의 핵심이자 초점이 되지. 모든 훌륭한 보석은 악마의 미끼 같은 존재라네. 큰 보석일수록, 그 면 하나하나에 피비린내 나는 사연이 얽혀 있기 마련이지. 이 보석은 아직 스무 해도 안 됐지만, 이미 불길한 전력이 있어. 중국 남부 아모이 강 유역에서 발견되었고, 홍색이 아닌 청색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석류석의 모든 특성을 지니고 있지. 그런데도 이 사탕알만 한 탄소 덩어리 하나 때문에 살인 두 건, 황산 테러 한 건, 자살 한 건, 도둑질은 헤아릴 수도 없이 일어났어. 누가 이런 예쁜 장난감이 교수대나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는 물건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그는 보석을 조심스레 금고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 이걸 잘 보관하고, 백작부인에게 우리가 돌을 확보했다는 짧은 전보를 보낼 참이야.”
“자네는 호너가 무죄라고 생각하나?”
“모르겠어.”
“그럼 혹시 그 헨리 베이커란 사람이 뭔가 관련이 있다고 보나?”
“오히려 그 사람이 완전히 무고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자기가 들고 다닌 새가 순금보다 더 귀한 물건을 품고 있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겠지. 하지만 그건 광고에 대한 응답이 오면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그 전까진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건가?”
“그렇지.”
“그렇다면 난 맡은 일을 계속하러 나가야겠군. 하지만 자네가 정한 그 시간에 다시 들를게. 이 복잡한 사건의 결말이 궁금하거든.”
“언제든 환영이야. 나는 일곱 시에 저녁을 먹어. 아마 우드콕이 메뉴일 텐데, 최근 사건들을 떠올리니 허드슨 부인에게 그 새의 모이주머니도 점검하라고 해야겠군.”
나는 다른 사건 때문에 약간 지체되어, 베이커 가에 도착한 시각은 여섯 시 반을 조금 넘긴 때였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스코틀랜드식 모자를 쓰고 목까지 단추를 채운 외투를 입은 키 큰 남자가 현관 위 둥근 채광창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불빛 아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우리는 함께 셜록 홈즈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헨리 베이커 씨시죠?” 홈즈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손님을 친근한 인사로 맞으며 말했다. “벽난로 옆 의자에 앉으시죠. 오늘 밤은 제법 쌀쌀하군요. 체온을 보아하니 여름 체질이신 듯한데요. 아, 왓슨, 자네도 딱 좋은 때에 도착했군. 저 모자는 당신 것 맞습니까, 베이커 씨?”
“네, 틀림없이 제 모자입니다.”
그는 어깨가 둥글고 머리가 크며, 지적이고 너그러운 인상을 주는 얼굴을 지닌 사내였다. 턱에는 갈빛에 가까운 흰 수염이 뾰족하게 뻗어 있었다. 코와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내민 손에는 약간 떨림이 있었다. 홈즈가 추측했던 생활습관을 상기시키는 모습이었다. 그의 오래된 검은색 프로크코트는 단추가 모두 잠겨 있었고, 칼라도 세워져 있었으며, 손목 끝에서는 셔츠나 소맷단 하나 없이 앙상한 손목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말수를 줄이고 단어를 신중히 고르며 또박또박 이야기했고, 전반적으로 학문과 문필에 종사해 왔지만 운명의 가혹한 장난을 당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며칠 동안 이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었지요.” 홈즈가 말했다. “솔직히 주소를 밝힌 광고를 낼 거라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왜 광고를 안 내셨습니까?”
손님은 멋쩍은 듯 웃었다.
“요즘은 실링 한 푼도 넉넉치 않아서 말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저를 습격한 건달들이 제 모자와 거위를 모두 훔쳐 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 되찾으려 또 돈을 쓰는 게 허무하다고 느껴졌지요.”
“충분히 이해되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새 말인데요, 저희가 어쩔 수 없이 그 거위를 먹어치우고 말았습니다.”
“먹었다고요?” 손님은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듯 몸을 들썩였다.
“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식탁 위에 놓인 저 거위는 무게도 비슷하고 아주 신선하니, 충분히 대체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이지요, 물론입니다.” 베이커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물론, 거위의 깃털과 다리, 모이주머니 등은 저희가 보관 중인데요, 원하신다면—”
그는 크게 웃어버렸다.
“그건 제 사건의 기념품으로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이상은... 제게 별 쓸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요, 선생님. 제 생각엔 저 훌륭한 거위에만 온 정신을 쏟는 게 좋을 듯합니다.”
셜록 홈즈는 나를 힐끗 바라보며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러면, 모자는 여기에 있고, 거위도 여기에 있습니다.” 홈즈가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거위를 어디서 구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가금류를 꽤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훌륭하게 살찐 거위는 좀처럼 보기 어려워서요.”
“물론이지요, 선생님.” 베이커는 새를 소중히 팔에 안으며 일어섰다.
“우리 몇몇은 박물관 근처의 알파 여관에 자주 들르곤 합니다. 낮 동안엔 박물관 안에 있고요. 올해 우리 주인장, 윈디게이트 씨가 ‘거위 조합’을 만들었어요. 매주 몇 푼씩 내면 크리스마스 때 거위를 한 마리씩 받을 수 있는 방식이었죠. 저도 꼬박꼬박 냈고요. 그다음은 선생님도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제게 큰 은혜를 입혔습니다. 스코틀랜드 모자는 제 나이나 체모에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었거든요.”
그는 익살스럽고 근엄한 자세로 우리 둘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이제 헨리 베이커 씨는 끝났군.” 홈즈가 그를 문 밖으로 보내며 말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어. 왓슨, 배고프지 않나?”
“그다지.”
“그렇다면 저녁은 간단히 때우고, 이 단서가 식기 전에 바로 추적을 시작하는 게 좋겠군.”
“전적으로 동의하네.”
그날 밤은 살을 에는 듯 추웠다. 우리는 외투를 단단히 걸치고, 목에 머플러를 감았다. 밖은 별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차갑게 빛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김은 권총 연기처럼 허공에 퍼졌다. 우리가 걷는 발걸음은 의사들이 많이 사는 윔폴 가, 할리 가, 그리고 위그모어 가를 지나 옥스퍼드 가까지, 또렷한 울림을 내며 이어졌다. 십오 분쯤 지나 우리는 블룸즈버리의 알파 여관에 도착했다. 이는 홀번 쪽으로 내려가는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자그마한 선술집이었다. 홈즈는 사적인 바의 문을 열고, 붉은 얼굴에 흰 앞치마를 두른 주인에게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거위만큼 맥주도 훌륭하겠지요?” 홈즈가 말했다.
“거위 말입니까?” 주인은 놀란 듯 되물었다.
“네. 방금 전 헨리 베이커 씨를 만났습니다. 당신네 거위 조합 회원이었지요.”
“아, 네, 기억납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거위는 아니었어요.”
“그래요? 그럼 누구 거였죠?”
“코벤트 가든에서 장사하는 상인한테서 샀습니다.”
“정말요? 그쪽 사람들 몇 명 압니다. 누구였죠?”
“브레킨리지라는 사람입니다.”
“아, 나는 그 사람은 모르겠군요. 어쨌든, 좋은 술집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제 브레킨리지 씨를 만나러 가야겠군.” 홈즈가 얼어붙은 밤공기 속에서 외투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
“왓슨, 자네도 알다시피 이 사건의 한쪽 끝에는 평범한 거위 한 마리가 걸려 있지만, 다른 쪽 끝에는 죄가 없을지도 모를 사람이 중형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 걸려 있네. 이 수사가 그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죄를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그래도 경찰이 놓친 실마리를 우연히 우리가 잡은 이상, 끝까지 따라가야겠지. 남쪽을 향해 전진!”
우리는 홀번을 건너 엔델 가를 따라 내려갔고, 이어진 미로 같은 빈민가를 지나 코벤트 가든 시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가장 큰 노점 중 하나에는 ‘브레킨리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말쑥한 구렛나루에 날렵한 얼굴을 한 말 마굿간 주인 같은 풍채의 장정이 한 소년과 함께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오늘 밤은 제법 쌀쌀하군요.” 셜록이 인사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거위는 다 팔리신 모양이군요.” 셜록이 텅 빈 대리석 진열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다섯 백 마리 들여올 겁니다.”
“그건 의미가 없네요.”
“가스등 밑 진열대에 몇 마리는 남아 있습니다.”
“아, 하지만 제가 추천을 받고 찾아왔거든요.”
“누구한테?”
“알파 여관 주인입니다.”
“아, 예. 거기로 두 다스 보냈죠.”
“정말 훌륭한 거위더군요. 그런데 혹시 어디서 가져온 건지 여쭤도 될까요?”
뜻밖에도 그 질문은 판매상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자, 이보세요.” 그는 고개를 비틀고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뭘 속이려 드는 겁니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죠.”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알파 여관에 납품하신 거위는 어디서 구하신 건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안 가르쳐드리겠어요. 이제 됐죠?”
“뭐,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도 아니잖습니까?”
“화가 난다고요? 자기도 나처럼 계속 귀찮게 굴 당해보세요. 좋은 물건에 돈을 지불했으면 그걸로 끝나야 할 텐데, ‘그 거위 어디서 났소?’, ‘누구한테 팔았소?’, ‘얼마면 그 거위 넘기겠소?’ 라며 난리법석이에요. 세상에 거위가 그것뿐인 줄 아는 사람들 같아서 말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셜록이 무심하게 말했다. “정보를 주지 않겠다면 그만이고요. 다만, 저는 가금류에 대해서는 나름 소신이 있어서 말이죠. 제가 먹은 그 거위가 시골에서 자란 거라고 믿고 오 파운드를 걸었습니다.”
“그럼 돈 날렸군요. 시내산이에요.” 판매상이 딱 잘라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니죠.”
“내가 그랬다고 하잖소.”
“난 믿을 수 없군요.”
“나보다 가금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해왔어요. 알파 여관에 간 새들은 죄다 시내산이었소.”
“그 말을 날 설득해 믿게 할 순 없을 거요.”
“그럼 내기하시겠소?”
“그냥 자네 돈을 가져오는 셈이지. 내가 옳다는 걸 아니까. 그래도 자네 고집을 꺾어줄 겸, 금화 한 닢 걸겠네.”
판매상은 음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부 좀 가져와, 빌.”
소년이 작은 책 한 권과 두꺼운 장부 한 권을 가져와 매달린 등잔 아래에 펼쳐 놓았다.
“이봐요, 자네 같은 독불장군 씨.” 판매상이 말했다. “난 분명히 거위가 다 팔렸다고 했는데, 자네한텐 한 마리가 더 남아 있을 수도 있겠군. 자, 이 작은 책 보이십니까?”
“그래서요?”
“이건 내가 물건을 사는 사람들 명단입니다. 이쪽 페이지에는 시골 거래처가, 이름 뒤 숫자는 이 장부에서 해당 계정을 찾을 수 있는 페이지 번호죠.”
“이제 이쪽 붉은 잉크로 된 페이지 보이십니까? 이건 시내 거래처 목록입니다. 자, 셋째 이름을 읽어보세요.”
“오크숏 부인, 브릭스턴 로드 117번지 — 249.” 셜록이 읽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장부에서 그 항목을 찾아보시죠.”
셜록이 해당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 있네요. ‘오크숏 부인, 브릭스턴 로드 117번지, 계란 및 가금류 판매.’”
“자, 마지막 거래 기록이 뭐죠?”
“12월 22일. 거위 24마리, 7실링 6펜스씩.”
“그렇죠. 그리고 그 아래는?”
“알파 여관 윈디게이트 씨에게 판매, 12실링.”
“이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셜록은 얼굴을 찌푸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어 진열대에 던지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몇 걸음 떨어진 가로등 아래에서 그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스타일의 구렛나루를 가진 사람, 그리고 호주머니에 핑크 신문(‘The Pink 'Un’, 경마 신문)을 넣고 다니는 사람에겐 내기가 통하지.” 그가 말했다. “백 파운드를 꺼내놨더라도 저 정도 정보를 듣긴 어려웠을 거야. 자기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내기에 걸려든 덕분에 우리가 원하는 걸 다 얻은 거지. 자네, 왓슨. 이젠 거의 끝이 보이는 것 같군. 남은 건 우리가 지금 당장 오크숏 부인 댁으로 갈지, 아니면 내일로 미룰지 결정하는 일뿐이야. 그 거친 친구 말로 보아, 우리 말고도 이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그 말은 갑자기 들려온 고함 소리에 끊겼다. 우리가 방금 떠난 노점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돌아보니 작은 쥐 같은 인상의 사내가 흔들리는 가스등 불빛 아래 서 있었고, 브레킨리지가 그 문에 기대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이 사람아! 거위 타령은 그만 좀 하라고! 또다시 얼빠진 소리로 날 귀찮게 하면 개를 풀어버릴 줄 알아! 오크숏 부인을 직접 데려와야 내가 대답해줄 거야. 자네가 그 거위를 나한테 팔았어?”
“아뇨. 하지만 그중 하나는 제 거였어요...” 쥐 같은 사내가 울먹였다.
“그럼 오크숏 부인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부인이 당신에게 물어보라더군요...”
“그럼 프로이센 왕한테도 물어보라지! 난 이제 지긋지긋해! 당장 꺼져!”
그가 사납게 앞으로 나서자, 그 사내는 어둠 속으로 허겁지겁 달아났다.
“흠, 이거 덕분에 브릭스턴 로드로 직접 가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군.” 셜록이 낮게 속삭였다. “따라오게. 저 사람에게서 뭔가 얻어낼 수 있을지 보자고.”
우리는 붉은 조명 아래 흩어진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헤치고 지나 그 남자를 따라잡았다. 셜록이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자, 그는 깜짝 놀라 몸을 홱 돌렸다. 가스등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당신은 누구요? 뭘 원하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실례합니다만,” 셜록은 부드럽게 말했다. “방금 당신이 그 장사꾼에게 하신 말씀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당신이요? 뭘 안다고요?”
“내 이름은 셜록 홈즈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걸 알아내는 것이 제 일이지요.”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를 텐데요?”
“아닙니다. 전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크숏 부인이 팔았던 거위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지요. 브릭스턴 로드의 오크숏 부인에게서 브레킨리지라는 상인이 거위를 넘겨받았고, 그는 다시 알파 여관의 윈디게이트 씨에게 넘겼으며, 그 여관을 통해 헨리 베이커 씨가 소속된 클럽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아,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제가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분입니다!”
작은 사내는 두 손을 벌리고 손가락을 떨며 외쳤다.
“이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셜록은 마침 지나가던 사륜 마차를 불러 세웠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람 부는 시장바닥보다는 포근한 실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낫겠군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그 전에, 제가 도와드리게 된 분이 누구신지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그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제 이름은 존 로빈슨입니다.”
그러면서도 곁눈질을 흘겼다.
“아니죠, 진짜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셜록은 부드럽게 말했다. “가명을 쓰고는 제대로 된 일을 진행할 수 없거든요.”
그 낯선 이의 창백한 뺨에 핏기가 돌았다.
“그렇다면... 제 진짜 이름은 제임스 라이더입니다.”
“바로 그거죠. 코스모폴리탄 호텔의 수석 시중인 제임스 라이더 씨.”
셜록이 말했다. “자, 마차에 타시죠. 그러면 자네가 원하는 정보를 모두 알려주겠네.”
그 사내는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눈빛으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마치 뜻밖의 행운을 눈앞에 둔 것인지, 아니면 파멸을 목전에 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결국 그는 마차에 올랐고, 우리는 반 시간 후 베이커 가의 응접실로 돌아왔다.
가는 내내 그는 말이 없었지만, 숨을 가쁘게 쉬고 손을 꼭 쥐었다 펴는 행동에서 극도의 긴장이 느껴졌다.
“자, 도착했습니다!”
셜록이 쾌활하게 말했다.
“이런 날씨엔 난로가 참 반갑죠. 라이더 씨, 꽤 추워 보이십니다. 바구니 의자에 앉으시죠. 전 슬리퍼만 갈아신고 자네 일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자, 이제 거위 이야기를 해볼까요?”
“예, 선생님.”
“정확히는 거위 한 마리겠죠. 자네가 관심 가진 건 그 한 마리, 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흰 새였을 테고.”
라이더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선생님, 제발 그 거위가 어디로 갔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 거위는 여기로 왔습니다.”
“여기로요?”
“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새였죠. 자네가 그토록 관심을 가질 만도 하더군. 죽은 뒤에도 알을 낳았으니 말이야—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밝은 푸른색 알이었지. 지금 내 수집품 안에 보관돼 있네.”
방문객은 자리에서 휘청 일어나더니, 벽난로 가장자리를 붙들었다.
셜록은 금고를 열어 푸른 보석을 꺼내 들어 보였다.
그 보석은 별처럼 빛났고, 차가운 광채가 날카로운 각도마다 번뜩였다.
라이더는 굳은 얼굴로 그 보석을 바라보며, 이걸 인정해야 할지 부인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눈치였다.
“이제 끝났네, 라이더.”
셜록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 그대로 놔두면 불 속으로 쓰러지겠군. 왓슨, 의자에 앉히게. 저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만큼 강단 있는 사람이 못 돼. 브랜디 한 모금 주게. 자, 이제 좀 사람 같은 얼굴이 되었군. 이 작은 인간이 이렇게 약할 줄이야!”
라이더는 잠깐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했으나, 브랜디를 들이켜고 나서야 얼굴에 약간의 핏기가 돌았다.
그는 여전히 공포에 찬 눈으로 셜록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이 사건의 거의 모든 연결 고리를 쥐고 있고, 필요한 증거도 충분히 확보했다네. 하지만 자네 입으로 조금 더 이야기해준다면 사건을 완전히 마무리할 수 있겠지. 라이더, 자네는 모르카 백작 부인의 푸른 보석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캐서린 쿠색이 말해줬습니다...”
라이더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아하니, 귀부인의 하녀로군. 그래, 쉽게 얻을 수 있는 갑작스러운 재산의 유혹은 그대보다 훨씬 나은 이들도 무너뜨려 왔지. 하지만 그대는 그 수단에 있어 결코 신중하지 않았어. 라이더, 내 보기엔 자네 안엔 제법 괜찮은 악당 기질이 도사리고 있어. 자네는 배관공 호너가 예전에 비슷한 일에 연루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의심이 그에게 쉽게 향할 것이라 판단했지. 자, 그다음에 자네가 한 일이 뭔가? 자네와 공모자인 쿠색이 귀부인의 방에 조그만 수리를 만들었고, 호너가 그 일을 맡게끔 꾸몄어. 그러고는 그가 떠난 뒤, 보석함을 뒤지고 소란을 피워 이 불쌍한 남자를 체포하게 만들었지. 그다음 자네는——”
라이더는 갑자기 러그 위에 무릎을 꿇고는 내 동료의 무릎을 부여잡았다.
“제발, 신의 이름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비명을 질렀다. “제 아버지를 생각해 주세요! 어머니도요! 두 분 다 마음이 찢어지실 거예요. 전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성경에 맹세할게요. 제발, 제발 이걸 법정에 넘기지 말아 주세요! 예수님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의자에 다시 앉게.” 홈즈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와서 기어들고 눈물 흘려봤자야. 자넨 그 불쌍한 호너가 아무것도 모른 채 피고석에 앉게 될 때엔 이런 일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지.”
“나라를 떠나겠습니다, 홈즈 씨. 영국을 떠날게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씌운 혐의도 무너질 테니까요.”
“흥,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보자고. 우선은 그다음 장면의 진실을 말하게. 그 보석이 어떻게 거위 속에 들어갔고, 거위는 또 어떻게 장터까지 가게 되었는지. 있는 그대로 모두 말하게. 자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뿐이야.”
라이더는 메마른 입술을 혀로 훑고 나서 입을 열었다.
“있는 그대로 다 말씀드릴게요, 선생님. 호너가 체포된 뒤, 경찰이 언제 내 방이나 몸을 수색하겠다고 나설지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그 보석을 들고 호텔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호텔 안에는 숨길 만한 곳이 전혀 없었고요. 그래서 뭔가 심부름 나간 것처럼 가장하고 밖으로 나와, 누이의 집으로 향했죠. 누이는 오크숏이라는 남자와 결혼해서 브릭스턴 로드에 살고 있었어요. 그 집에서는 시장에 내다 팔려고 닭이나 거위를 살찌우고 있었죠.
가는 내내, 길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이 경찰이나 형사처럼 보였어요. 그날 밤은 몹시 추웠지만, 브릭스턴 로드에 도착할 즈음엔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어요. 누이가 제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 창백하냐고 물었죠. 저는 호텔에서 있었던 보석 도난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둘러댔어요. 그러고 나서 뒤뜰에 나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죠.
모즈슬리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때는 잘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나락으로 떨어져 최근까지 펜턴빌 감옥에서 형을 살다 나왔죠. 어느 날 그를 우연히 만났고, 도둑질하는 자들의 수법이나 훔친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저는 그가 제게 충성할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의 약점 몇 가지를 쥐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킬번으로 곧장 가서 그에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가라면 그 보석을 어떻게 현금화할 수 있을지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안전하게 그에게 갈 수 있을지 막막했죠. 호텔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겪은 공포를 생각하니 또다시 겁이 났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경찰에게 붙잡혀 몸수색을 당할 수 있었고, 제 조끼 안주머니에는 그 돌이 있었거든요. 저는 벽에 기대 서 있었고, 발밑에서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위 떼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 어떤 유능한 형사라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이었죠.
몇 주 전, 누이가 제게 말하길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네 거위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고, 저는 누이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바로 지금 거위를 하나 가져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안에 돌을 숨겨 킬번으로 옮기자는 생각이었죠. 마당 한쪽에 작은 헛간이 있었고, 저는 그 뒤쪽으로 거위 한 마리를 몰아넣었어요. 큼직한 흰 거위에 줄무늬 꼬리를 가진 놈이었죠. 녀석을 붙잡고 부리를 억지로 벌린 뒤, 손가락이 닿는 데까지 돌을 밀어 넣었습니다. 거위는 꿀꺽 삼켰고, 저는 그 돌이 식도를 따라 내려가 모이주머니로 들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퍼덕이며 버둥거리자, 무슨 일이냐며 누이가 마당으로 나왔어요. 제가 대답하려 돌아서는 순간, 거위는 몸을 비틀며 도망쳐 다른 거위들 틈으로 섞여 버렸죠.
‘도대체 그 거위한테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젬?’ 누이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대답했죠. ‘누나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나 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제일 살찐 놈이 뭔지 만져봤어.’
‘아,’ 그녀가 말했죠. ‘이미 네 건 따로 빼놨어. 젬 거위라고 불러. 저기 큰 흰 놈 말이야. 전부 스물여섯 마리인데, 너 하나, 우리 하나, 그리고 시장에 내놓을 두 다즌이야.’
‘고마워, 누나. 그런데 괜찮다면 아까 내가 만지던 그놈을 받고 싶어.’
‘그건 네 거보다도 세 파운드나 가벼워. 일부러 널 위해 살찌운 거야.’
‘괜찮아. 난 다른 거로 할래. 지금 그걸 가져갈게.’ 제가 그렇게 말했죠.
‘그래, 자네 좋을 대로 해,’ 누이가 다소 언짢은 듯 말했어요. ‘어느 놈이 갖고 싶은데?’
‘저기, 무리 한가운데 있는 줄무늬 꼬리 달린 흰 놈 말이야.’
‘그래, 알았어. 잡아 죽여서 가져가.’
그래서 저는 누이 말대로 했습니다, 셜록 홈즈 씨. 거위를 킬번까지 들고 갔죠. 친구한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어요.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이해할 만큼 속이 넓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는 웃음을 터뜨리다 목이 멜 정도였고, 우리는 칼을 가져와 거위를 갈랐습니다. 그런데 제 심장은 금세 식어버렸죠. 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엄청난 실수가 벌어졌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거위를 버려두고, 곧장 누이 집으로 달려가 뒷마당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거위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애들은 다 어디 갔어, 매기?’ 제가 소리쳤습니다.
‘상인한테 갔지, 젬.’
‘어느 상인?’
‘코벤트 가든의 브레킨리지.’
‘그런데 줄무늬 꼬리 달린 게 하나 더 있었어? 내가 고른 거랑 똑같은 놈?’
‘있었지, 젬. 두 마리 있었거든. 나는 둘 다 구분 못 했어.’
그 말을 듣고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고, 저는 죽을힘을 다해 브레킨리지에게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위 전부를 단번에 팔아버렸고,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았죠. 오늘 밤 자네도 직접 들었을 겁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뻣뻣하게 굴어요. 누이는 제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저도 때로는 정말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이젠—이젠 저는 도둑이란 낙인을 뒤집어쓴 꼴이 됐죠. 그토록 욕심낸 부를 한 번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제발요!”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고, 온몸을 들썩이며 오열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 사이 들리는 소리는 그의 거친 숨소리와 셜록 홈즈가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두드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러다 홈즈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활짝 열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방 안을 채운 건 그의 거친 숨소리와 셜록 홈즈가 책상 모서리를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는 손가락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홈즈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활짝 열었다.
“나가시오!” 그가 말했다.
“뭐라고요, 선생님! 아, 하느님이 당신을 축복하길!”
“말 그만 하고, 어서 나가시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복도에는 갑작스런 발소리와 난간을 부딪치는 소리, 문이 쾅 닫히는 소리, 그리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결국 말이지, 왓슨,” 홈즈가 손을 뻗어 자기 진흙 파이프를 집으며 말했다. “나는 경찰이 저지른 실수를 메우기 위해 고용된 사람은 아니야. 만약 호너가 진짜 위험에 처해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 하지만 저자는 법정에 설 일도 없고, 결국 사건은 무산될 거야. 법적으로는 중죄를 눈감아주는 셈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한 것일지도 모르지. 저자는 이제 다시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 거야. 겁에 질린 모습이 말해주잖아. 지금 교도소에 보내면, 평생 죄수로 살게 될 게 뻔하니까. 게다가 지금은 용서의 계절이기도 하잖아. 운명은 우리 앞에 실로 기묘하고도 유쾌한 문제를 던져주었고, 그걸 해결한 것만으로도 보람은 충분해. 자, 왓슨, 초인종을 눌러주시겠나. 이번에도 새 한 마리가 핵심이 될 또 다른 사건을 시작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