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쌍하고 거친 존재들은 결코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괴물 / 피터 와츠」

※ 캐나다의 해양생물학자이자 SF 소설가 피터 와츠가 존 카펜터의 영화 『괴물(The Thing)』을 외계 생명체의 시점에서 재해석한 단편입니다. 원제는 The Things 입니다.



나는 블레어가 되고 있다. 세상이 정면으로 들이닥칠 때, 나는 뒤쪽으로 도망친다.


나는 코퍼가 되고 있다. 나는 죽음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차일즈가 되고 있다. 나는 정문을 지키고 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임시표식일 뿐, 아무 의미 없다. 모든 생체 덩어리는 대체 가능하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나에게 남은 전부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나머지를 모두 태워버렸다.


나는 창문 너머로 내 모습을 본다. 폭풍 속을 달리며 블레어의 모습을 쓰고 있다. 맥크리디는, 블레어가 혼자 돌아오면 불태우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직 내가 그들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나는 아니다. 나는 블레어가 되고 있고, 지금 문 앞에 와 있다. 나는 차일즈가 되고 있고, 나 자신을 들여보낸다. 우리는 짧은 교감을 나눈다. 얼굴에서 꿈틀대는 촉수들이 뻗어 나와 서로 얽힌다. 나는 블레어차일즈가 되어, 세상의 소식을 나눈다.


세상은 나를 눈치챘다. 공구 창고 밑, 내가 파놓은 은신처를, 죽은 헬리콥터들의 내장을 뜯어 만든 미완성 탈출정을 발견했다. 세상은 지금 내가 달아날 수단을 파괴하는 중이다. 그 일이 끝나면, 세상은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나는 분해된다. 블레어가 되어, 계획을 코퍼와 나누기 위해 간다. 그리고 클라크라 불렸던 썩어가는 생체 덩어리를 먹는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은 탓에 내 자원은 위험할 만큼 고갈되었다. 차일즈가 된 나는 이미 푹스를 소비했고, 다음 단계에 대비해 충전을 마쳤다. 나는 화염방사기를 등에 걸치고, 남극의 긴 밤 속으로 걸어 나간다.


나는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충돌 이전의 나는 훨씬 더 위대한 존재였다. 나는 탐험가였고, 사절이었고, 선교자였다. 나는 우주 곳곳을 누비며 무수한 세계들을 만났고, 교감을 나눴다. 적합한 것은 부적합한 것을 바꾸어냈고, 온 우주는 기쁘고도 미세한 도약들로 점점 더 진화해갔다. 나는 병사였다. 나는 무질서 그 자체와 싸우는 전사였다. 나는 창조가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손길이었다.


나는 수많은 지혜를 가졌었다. 수많은 경험이 있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단지 한때 그것들을 알고 있었다는 기억만이 남았다.


하지만 충돌은 기억난다. 그 사고는 이 분열체의 대부분을 단번에 죽였다. 하지만 조금은 잔해에서 기어 나왔다. 수조 개의 세포들, 그리고 그것을 통제하기엔 너무나 약해진 하나의 영혼. 반역적인 생체 덩어리들이 내 절박한 통제 시도를 뿌리치고 흘러내렸다. 공포에 찬 고깃덩이들은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팔다리를 닥치는 대로 자라나게 해선 안 되는 방향으로 성장시켰고, 타오르는 얼음 위를 도망쳤다. 내가 남은 부분의 통제권을 되찾았을 땐, 불은 이미 꺼져 있었고, 다시 한파가 다가오고 있었다. 얼음이 나를 집어삼키기 직전, 간신히 내 세포들이 파열되지 않게 방동 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었다.


각성이 다시 찾아온 순간도 기억난다. 현실의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둔한 감각의 진동, 인식의 불씨가 천천히 피어오르는 따뜻함, 오랜 잠에서 깨어나 육체와 영혼이 다시 포개지는 그 완만한 열기. 나는 양족보행 분열체들이 내 주위를 에워싼 것도 기억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낯선 소리들, 그들의 신체 구조가 이상하리만큼 똑같았던 것도. 얼마나 부적응적인 모습이었던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형태였던가! 비활성 상태에서도, 나는 그들의 육체에 고쳐야 할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손을 뻗었다. 나는 교감을 시도했다. 나는 이 세계의 살을 맛보았다—


—그리고 세계는 나를 공격했다. 나를, 공격했다.


나는 그 장소를 폐허로 만들었다. 산 너머에 있던 곳—이 세계에서 ‘노르웨이 기지’라고 불리는 장소였다—내가 양족 보행의 몸을 한 채로는 도저히 그 거리를 넘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다른 형상이 존재했다. 양족체보다 작지만 이 환경에 더 잘 적응된 형태. 나는 그 안에 몸을 숨긴 채, 나머지 내가 공격을 버텨내도록 두었다. 나는 네 다리를 가진 채 밤으로 달아났고, 타오르는 불길이 내 도주를 가려주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려 이곳까지 왔다. 나는 새로운 분열체들 사이를, 네 발 달린 형상의 껍데기를 입고 걸었다. 그들은 내가 다른 형상을 취했던 걸 본 적 없었기에,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하나씩 흡수했을 때—내 생체 질량이 변화하며, 이 세계의 눈에 낯선 형태들로 흘러들어 갔을 때—나는 그 교감을 고독 속에서 수행했다. 이제는 안다. 이 세계는, 알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나는 폭풍 속에 홀로 있다. 나는 탁하고 낯선 심해의 해저에 붙어 사는 저서생물이다. 눈보라는 수평의 줄무늬처럼 날아들고, 골짜기나 바위턱에 걸리면 눈송이들이 소용돌이치며 눈부신 작은 회오리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충분히 멀리 오지 못했다. 아직 아니다. 뒤를 돌아보면, 기지는 여전히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 각진 덩어리처럼 엉켜 있는 빛과 그림자, 포효하는 심연 속에서 덜컥 솟아오른, 온기의 거품.


나는 그것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걸 지켜본다. 나는 발전기를 터뜨렸다. 이제 남은 빛이라곤 안내 로프를 따라 놓인 신호등뿐이다. 희미한 푸른 별들이 줄지어 바람 속에 휘날린다. 길 잃은 생체 덩어리를 집으로 이끌기 위한 비상 별자리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아직 충분히 길을 잃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간다. 별들마저 사라질 때까지. 뒤에서는 분노와 공포에 찬 인간들의 외침이 바람을 타고 따라온다.


어디선가, 내게서 분리된 생체 조직이 다시 결합해 더 크고 강력한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마지막 대결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일부가 되어 함께할 수도 있었다. 분열 대신 통합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전체 안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었다. 다가올 전투에 내 힘을 보탤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나는 차일즈의 남은 자원을 미래를 위해 보존하고 있다. 현재에는 오직 소멸만이 있을 뿐이므로.


과거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는 게 낫다.


나는 이미 너무도 오랫동안 얼음 속에 있었다. 그 시간의 길이를 나는 몰랐다. 세상이 단서들을 조합해 해석하기 전까지는. 노르웨이 기지에서 남긴 메모와 테이프를 풀어내고, 추락 지점을 특정해낼 때까지는. 그때 나는 팔머였고, 아무 의심도 받지 않은 채 탐사에 동참했다.


그때 나는, 아주 조금이나마, 희망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우주선이 아니었다. 심지어 폐선조차 아니었다. 그것은 화석이었다. 빙하에 파묻힌 거대한 웅덩이 바닥에 박힌 잔해. 스무 개쯤 되는 이 껍질들을 포개어 세워도, 그 분화구의 가장자리에 겨우 닿을까 말까. 그 시간의 감각이 내 위로 내려앉았다. 한 세계의 무게처럼. 그렇게나 많은 얼음이 쌓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내가 없는 동안, 우주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반복하며 지나쳐갔던가?


그 모든 시간, 어쩌면 백만 년 동안, 구조는 오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찾지 못했다. 그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기지로 돌아가면 나는 흔적을 지울 것이다. 그들에게 마지막 전투를, 처단해야 할 괴물을 줄 것이다. 이기게 두자. 그렇게 해서, 그들이 더 이상 찾지 않게 하자.


여기, 이 폭풍 속에서 나는 다시 얼음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실 나는 거의 떠난 적도 없다. 이 끝없는 세월 속에서, 살아 있었던 건 고작 며칠 남짓. 하지만 그 시간 안에 나는 충분히 배웠다. 나는 추락한 잔해에서 수리가 불가능함을 배웠고, 얼음에게서는 구조가 없음을 배웠다. 그리고 이 세계에게서는 화해란 존재하지 않음을 배웠다. 이제 도망칠 유일한 길은 미래뿐이다. 이 적대적이고 뒤틀린 생체 생태계를 견뎌내고, 시간과 우주가 규칙을 바꿀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 어쩌면 다음에 깨어날 때는, 이 세계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해돋이를 보게 되기까지는, 수억 년이 흐를 것이다.



세상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것이다: 적응은 도발이다. 적응은 폭력을 부른다.


이 피부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거의 외설에 가깝게 느껴진다—창조 자체에 대한 모독처럼. 이 형상은 주변 환경에 너무나 부적합해서, 따뜻함을 유지하려면 여러 겹의 천으로 감싸야만 한다. 나는 이걸 최적화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 더 짧은 사지, 더 나은 단열, 더 낮은 표면 대비 부피 비율. 이 모든 형상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런데 나는 감히 그것들 중 하나도 사용할 수 없다. 추위를 막기 위해서조차. 나는 감히 적응할 수 없다; 이곳에서는 오직 숨는 것만이 허락된다.


교감을 거부하는 세계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것은 생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축약 불가능한 통찰이다. 변화할 수 있는 만큼, 적응할 수 있다. 적응은 곧 적합성이고, 적응은 생존이다. 그것은 지능보다 깊고, 조직보다 근본적이며, 세포적이고, 공리적인 성질이다. 게다가, 그것은 쾌감이다. 교감이란 우주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키는 순수한 관능의 기쁨이다.


그런데도, 이 부적응적인 껍질에 갇힌 채로조차, 이 세계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처음엔 단순히 이곳이 에너지 결핍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 얼어붙은 황무지에는 일상적인 형태 변형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고. 혹은 여기가 실험실 같은 장소라고 여겼다: 세상의 한 귀퉁이를 잘라내어 이 기형적인 형태로 얼려둔, 단일형태에 관한 어떤 비밀스러운 실험. 부검 이후에는, 이 세계가 그저 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혼이 조직에 닿을 수 없자 형상을 조각하지 못했고, 시간과 스트레스, 만성적인 기아 끝에 그런 능력을 가졌던 기억마저 지워졌다고.


하지만 수수께끼는 너무 많았다. 모순도 많았다. 왜 이런 특정한 형태들인가, 환경에 이토록 부적합한데도? 만약 영혼이 육체와 단절되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 육체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내가 그 껍질 속으로 들어갔을 때, 어째서 그렇게 비어 있었던가?


나는 어디서든 지성을 발견하는 데 익숙했다, 모든 분열체의 모든 부분을 감싸며 흐르는 의식의 망을. 하지만 이 세계의 무정한 생체에서는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명령과 입력을 전달하는 도관들뿐. 나는 교감을 시도했다, 자발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내가 선택한 껍질들은 발버둥쳤고 끝내 굴복했다; 내 섬유질은 유기 시스템의 축축한 전류 속으로 침투했다. 나는 아직 내 것이 아닌 눈을 통해 보았고, 외래 단백질로 구성된 사지를 움직이기 위해 운동 신경을 조종했다. 나는 이 껍질들을 내가 수없이 입어본 다른 껍질들처럼 입었고, 조종을 맡긴 채 개별 세포의 동화는 천천히 따라오도록 두었다.


하지만 나는 오직 육체만을 입을 수 있었다. 흡수할 기억이 없었다, 경험도, 이해도 없었다. 생존하려면 주변과 섞여야 했고, 이 세계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이 세계처럼 행동해야 했고—살아 있는 기억 속 처음으로, 나는 그 방법을 몰랐다.


더 무서운 건,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동화한 껍질들은, 스스로 계속 움직였다. 그들은 대화했고, 각자의 일을 수행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주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점점 더 깊이, 사지와 내장을 따라 침투했다. 그러나 내가 찾은 그 어떤 곳에서도, 내 것이 아닌 네트워크는 없었다.



물론, 훨씬 더 나쁠 수도 있었다. 나는 전부를 잃었을 수도 있었고, 본능과 세포의 가소성만으로 움직이는 몇몇 세포 조각으로 축소되었을 수도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자라났겠지—지각을 회복하고, 교감을 이루고, 세계만큼이나 광대한 지성을 재생했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고아였을 테고, 기억상실자였을 것이며,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운명은 피했다. 나는 충돌에서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나왔고, 수천 개 세계의 형상들이 여전히 내 육체에 공명하고 있다. 나는 단순한 생존 본능만이 아니라, 생존이 ‘의미 있다’는 확신까지도 보존해냈다. 원한다면, 나는 여전히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예전엔 더 많은 것이 있었다.


수많은 세계의 지혜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흐릿한 추상, 너무나 빈약한 이 신경망 안에는 담길 수 없는 정리와 철학들의 반쯤 기억된 그림자들뿐이다. 나는 이곳의 모든 생체를 동화시켜, 추락한 개체보다 수백만 배 더 거대한 몸과 영혼을 재건할 수 있다—그러나 내가 이 우물 바닥에 갇힌 채로, 내 더 큰 자아와 교감할 수 없다면, 나는 그 지식을 결코 되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때의 나에 비하면 정말로 초라한 파편에 불과하다. 잃어버린 세포 하나하나가 나의 지성을 조금씩 앗아갔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한때는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그저 ‘반응’한다. 만약 잔해 속에서 생체를 조금이라도 더 회수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일이 달라졌을까? 내 영혼이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컸다면,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


세상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체형 융합 없이 단순한 통신으로 전달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을 단순화할 때처럼. 개였던 시절에도, 나는 기본적인 형태소 서명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 분열체는 ‘윈도스’, 저것은 ‘베닝스’, 비행기계로 어딘가로 떠난 둘은 ‘코퍼’와 ‘맥크리디’—나는 놀랐다. 이렇게 분리된 정보 조각들이 각자 고정된 형태를 유지한 채 오래도록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생체 덩어리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이름 붙이는 일이 실제로 유용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후 나는 양족형 안에 숨었고, 그 기묘하고 공허한 껍데기 안에 숨어 있던 어떤 것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것은 양족형을 ‘놈들’ 혹은 ‘남자들’, 때로는 ‘개자식들’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것은 맥크리디를 가끔 ‘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것은 이 구조물의 집합을 ‘캠프’라고 불렀다.


그것은 두려움을 느낀다고도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단지 내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공감은 필연적이다, 물론이다. 육체를 움직이는 불꽃과 화학물질을 모방하다 보면, 그것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느껴야만’ 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런 직감들은 내 안에서 반짝였지만, 어딘가 손에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내 껍질은 복도를 배회했고, 표면마다 적힌 암호 같은 기호들—Laundry Sched, Welcome to the Clubhouse, This Side Up—은 어쩐지 거의 의미를 띠는 것 같았다. 벽에 걸려 있던 원형 유물은 ‘시계’였다;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도구였다. 세상의 눈은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고, 나는 그것—‘그’—의 정신에서 단편적인 명명들을 건져올렸다.


하지만 나는 단지 탐조등을 타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이 비추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방향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엿들을 수는 있었지만, 질문할 수는 없었다.


그 탐조등 중 하나라도, 자신이 어떤 진화를 거쳐 이곳에 도달했는지를 돌아보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알기만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일이 달라졌을까. 하지만 대신, 그것은 전혀 다른 새로운 단어에 멈춰섰다:


부검(Autopsy).


맥크리디와 코퍼는 노르웨이 기지에서 내 일부를 발견했다: 내가 도주하면서 불태워버린 후방 분열체였다. 그들은 그것을 캠프로 가져왔다—탄화되고, 뒤틀리고, 변형 도중에 얼어붙은 상태로—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 보였다.


그때 나는 팔머였고, 노리스였으며, 개였다. 나는 다른 생체들과 함께 모여 있었고, 코퍼가 내 몸을 갈라 내장을 끄집어낼 때 지켜보았다. 그는 내 눈 뒤쪽에서 무언가를 제거했다: 어떤 종류의 기관이었다.


그것은 기형적이었고 불완전했지만, 그 구조는 명확했다. 그것은 거대한 주름진 종양처럼 보였다. 마치 세포 간 경쟁이 광기에 빠진 결과물 같았다—생명을 정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생명에게 반기를 든 듯한 모습. 그것은 불균형하게 혈관화되어 있었고, 질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산소와 영양분을 소비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존재 가능한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비효율적인 구조가 다른 형태들에 의해 도태되지 않고 저만치 자라날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그것이 무슨 기능을 했는지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이 분열체들,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나의 세포들이 무비판적으로 복제해낸 이 양족형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신체 부위를 목록화하지 않는다—조금만 자극이 주어지면 다른 어떤 것이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엔, 나는 처음으로, 몸 위에 솟아 있는 그 부풀어 오른 구조를 진지하게 보았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컸다. 수백만 개의 신경 접점을 수용하고도 공간이 남을 뼈로 된 반구. 모든 분열체가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생체는 이 비틀린 조직 덩어리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것도 깨달았다: 죽은 내 껍데기의 눈과 귀가, 코퍼가 그것을 떼어내기 전까지, 이 덩어리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섬유 다발이 껍질의 종축을 따라가며 내부 골격을 관통해, 그 어둡고 끈적한 공동 속, 그 기형 조직이 놓여 있던 곳으로 이어졌다. 그 뒤틀린 구조는 몸 전체에 유선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일종의 신체-인지 인터페이스 같았지만, 훨씬 더 거대했다. 마치……


아니.


그게 바로 작동 원리였다. 이 공허한 껍질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이유, 내가 동화할 수 있는 다른 네트워크를 찾지 못했던 이유. 바로 그것이었다: 신경망은 몸 전체에 퍼져 있지 않았고, 저기 한 덩어리로 몰려 있었다. 어둡고, 조밀하고, 낭종처럼 감싸인 채. 나는, 이 기계들 속에 깃든 유령을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메스꺼움을 느꼈다.


나는 생각하는 암(Cancer)과 살을 나누고 있었다.



가끔은, 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내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개집 바닥에 사방으로 벌어져 있었던 나, 수백 갈래로 찢긴 키메라가, 몇 마리 개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진홍빛 촉수들이 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형체가 완성되지 않은 변화들이 내 옆구리에서 솟아났다. 개의 형상과, 이 세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 어딘가에서 어렴풋이 기억해낸 기형적 형태들이 어설프게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차일즈가 되기 전, 차일즈가 나를 불태우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팔머 안에 숨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불길이 나머지 내게까지 번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이 세계가 마침내 ‘보이면 쏜다’는 것을 배웠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나는 내 모습을 본 기억도 있다—눈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나, 본능만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베닝스의 모습을 쓰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뒤틀린 미분화된 덩어리들이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안쪽이라기보단 바깥쪽에 더 가까운, 이전의 어떤 학살에서 살아남은 조각들이었다. 불구이고, 무지하고, 단지 얻을 수 있는 것을 움켜쥔 채 은신처에서 튀어나온 자들. 밤속에서 인간들이 몰려들었다. 붉은 조명탄을 들고, 등 뒤로는 푸른 불빛이 번뜩였고, 그 얼굴들은 두 가지 색으로 물들어 아름다웠다. 나는 베닝스를 기억한다. 불길에 휩싸여, 짐승처럼 하늘 아래서 울부짖던 그 모습을.


나는 노리스를 기억한다. 완벽하게 복제된, 그러나 결함 있는 심장에 배신당한 그를. 팔머는 죽었다. 나머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윈도스는, 여전히 인간이었던 그는, 선제적으로 불태워졌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생체 덩어리다—그토록 많은 양이, 잃어버려졌다. 그토록 많은 새로운 경험, 새로운 지혜가, 이 ‘생각하는 종양’의 세계에서 소멸되었다.


그렇다면 왜 나를 파낸 것인가? 왜 얼음 속에서 나를 도려내어, 저 멀리 황무지를 지나 다시 살아나게 해놓고는— 눈을 뜬 순간 나를 공격한 것인가?


말살이 목적이었다면, 왜 나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았는가?



저 낭종처럼 감싸인 영혼들. 저 종양들. 자기 자신 속으로 말려 들어간 채, 뼈로 된 동굴 안에 숨어 있는 것들.


나는 그들이 영원히 숨어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괴물 같은 해부학은 단지 교감을 ‘지연’시켰을 뿐, ‘차단’하지는 못했다. 매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나는 팔머의 운동계 신경망을 따라 휘감아 오르며, 수백만 개의 미세한 전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블레어의 눈 뒤편, 어둡게 생각하는 덩어리를 침투해 들어가는 감각이 있었다.


물론 다 상상이었다. 그 깊이까지 내려가면 모두가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미세한 조작에는 면역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내 일부분은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멈추고 싶어했다. 나는 영혼을 통합하는 데 익숙하지, 함께 ‘공존’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건, 이건 전례 없는 분리였다. 나는 이보다 강한 천 개의 세계를 동화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이토록 기묘한 세계는 처음이었다.

만약 내가 종양 속의 불꽃과 마주하게 된다면, 누가 누구를 동화하는 것일까?


나는 그때 이미 세 명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점점 경계심을 키우고 있었지만, 아직 눈치채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차지한 껍데기 안의 종양들조차, 내가 얼마나 가까이에 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점이 고마웠다—창조에는 규칙이 있다는 사실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바뀌지 않는 원리가 있다는 것이. 영혼이 껍데기 전체에 퍼져 있든, 기형적으로 고립되어 곪아 있든, 결국 그것은 ‘전기’로 움직인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인간의 기억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 신호 속에서 의미를 추려내야, 비로소 저장되었다—그러니 무차별적이더라도 정제된 정전기 하나면, 그 내용이 완전히 각인되기 전에 캐시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최소한 이 종양들이, 가끔씩 다른 것이 사지에 침투해도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릴 정도로는 충분했다.


처음에는 그 껍데기들이 눈을 감고 있을 때만 조종에 나섰다. 그들의 탐조등이 비현실적인 영상들 위로 불안하게 흔들리고, 형체 없는 패턴들이 서로를 뒤섞으며 날뛰는 생체질량처럼 흘러갈 때. (꿈이라고, 하나의 탐조등이 말했다. 조금 뒤에는 악몽이라고도.) 그 신비한 휴면의 시간 동안, 인간들이 무기력하게 격리된 그 틈 동안만,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꿈도 말라붙었다. 모든 눈이 항상 떠 있었다. 그림자와 서로를 응시하며. 예전엔 흩어져 있던 분열체들이 점차 한곳으로 모였다. 고립된 활동을 포기하고, 함께 있는 쪽을 택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공통의 공포 안에서 공감대를 찾아가는 줄 알았다. 나는 심지어, 그들이 마침내 저 기묘한 화석화를 떨쳐내고 교감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게 된 것뿐이었다.


그들은, 단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사지 끝부터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한다. 영혼의 끝자락이 냉기에 잠식당하면서, 생각도 느려진다. 화염방사기의 무게가 하네스를 당긴다. 언제나 약간씩 균형을 흐트러뜨린다. 내가 차일즈가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이 조직의 거의 절반은 아직 동화되지 않은 상태다. 한 시간, 많아야 두 시간 남았다. 그 전에 무덤처럼 얼어붙은 얼음 속에 파묻히기 전에, 이 껍데기 전체가 결정화되지 않도록 충분한 세포를 전환해야 한다. 나는 방동 단백질 생산에 집중한다.


이곳은 거의 평화롭기까지 하다. 받아들여야 할 것은 너무 많았고, 그것을 소화할 시간은 너무 적었다. 이 껍데기 안에 숨어 있는 동안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고, 그 감시의 눈빛 아래에서는 교감을 통해 기억을 주고받는 것조차 운에 달려 있었다. 영혼을 복합화하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오직 망각을 준비하는 것뿐. 내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것은, 다 배우지 못한 교훈들뿐이다.


예를 들어 맥크리디의 혈액 검사. 그가 고안한 ‘정체 탐지기’—인간을 흉내 내는 위장을 밝혀내는 장치. 세상이 생각하는 것만큼 잘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이 ‘조금이라도 작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물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그게 이 모든 퍼즐의 중심이다. 모든 수수께끼의 해답이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컸더라면, 어쩌면 벌써 그 원리를 밝혀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까지 죽이려 들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세계를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맥크리디의 검사.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거나, 내가 믿어온 모든 것이 틀렸다는 뜻이다.



그들은 형태를 바꾸지 않았다. 그들은 교감을 나누지 않았다. 그들의 공포와 상호 불신은 점점 커졌지만, 그들은 영혼을 합치려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 바깥’에서 적을 찾으려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찾을 만한 것을 주었다.


나는 기지의 조악한 컴퓨터 안에 가짜 단서를 심어두었다. 단순한 아이콘과 애니메이션, 거짓된 수치와 예측들에 적당한 진실을 섞어, 세상이 그것을 사실이라 믿도록 만들었다. 기계가 그런 계산을 하기엔 턱없이 단순하다는 것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계산을 할 데이터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 알아챌 수 있는 생체는 블레어뿐이었고, 그는 이미 내 것이었다.


나는 진짜 단서들을 없애고, 가짜 흔적들을 남겼다. 그리고—알리바이가 완성된 뒤, 블레어를 풀어 주었다. 그는 밤중에 몰래 빠져나가, 잠든 차량들을 부수고 다녔다. 나는 그를 아주 약간만 조종해, 꼭 필요한 부품들만은 남기도록 유도했다. 나는 그를 무전실로 들여보냈고, 그의 눈과 다른 시선을 통해 그가 광란 속에 파괴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세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 격리가 필요하다는 주장, '너희 대부분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있어. 하지만 난 알아. 적어도 몇몇은 분명히 알고 있다는 걸 말이지……'


그는 그 말을 전부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나는 그의 탐조등 속에서 그걸 보았다. 가장 완벽한 위조물은— 자신이 가짜라는 걸 잊은 것들이다.


필요한 파괴가 끝났을 무렵, 나는 블레어가 맥크리디의 반격에 쓰러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노리스가 되어, 나는 공구 창고를 임시 감금소로 제안했다. 팔머가 되어, 나는 창문을 판자로 막았고, 나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어설픈 요새들을 돕는 데 나섰다. 나는 세상이 블레어를 ‘너희의 안전을 위해’ 가둬두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내 손으로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형상을 바꾸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깨진 기계들 속에서 필요한 부품들을 회수했고, 그걸 공구 창고 아래 내 은신처로 가져와 하나하나 탈출 장치를 만들었다. 나는 죄수를 먹이겠다고 자청했고,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내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변화에 필요한 보급품들을 들고, 그 모든 탈피를 버틸 수 있게 했다. 나는 사흘 동안 캠프 식량의 삼분의 일을 소비했고— 아직도 이 분열체들에 대해 갖고 있던 내 편견에 갇힌 채— 이들이 이토록 비효율적인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기아 수준의 식단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행운. 세상은 부엌 재고 따위에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바람 속에 무언가 있다. 폭풍의 포효를 가로질러 스며드는 속삭임. 나는 귀를 자라나게 하고, 머리 옆으로 거의 얼어붙은 조직으로 만든 깔때기를 뻗어낸다. 살아 있는 안테나처럼 몸을 돌려 가장 잘 들리는 방향을 찾는다.


저기, 왼쪽. 심연이 희미하게 빛난다. 소용돌이치는 검은 눈발이 어둠이 약간 옅어진 배경 위로 실루엣을 이룬다. 나는 살육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나 자신의 소리를 듣는다. 내가 어떤 형상을 취했는지, 어떤 해부 구조가 그런 소리를 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세계에서 수많은 껍질을 입어 보았고, 고통의 소리를 알아듣는다.


전투는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전투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돌아설 시간이다, 잠들 시간이다. 세월을 기다릴 시간이다.


나는 바람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나는 빛을 향해 움직인다.


이건 계획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답을 알 것 같다. 어쩌면 나를 다시 유배로 보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되새기고, 단서들을 정리하며, 죽어가는 껍질 속에서 스스로에게 반복해 왔던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명백하면서도 불가능한 진실 주위를 맴돌았던가?


나는 불꽃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향해 나아간다. 폭약이 터지며 생긴 둔탁한 충격음은 듣는 것보다 느껴진다. 앞이 점점 밝아진다. 회색은 노란색으로, 노란색은 주황색으로 변한다. 하나였던 흐릿한 광원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기적처럼 서 있는 불타는 벽 하나, 언덕 위에 있는 맥크리디의 막사가 연기를 내뿜으며 뼈대만 남아 있다. 금이 가고 그을린 반구형 구조물이 깜빡이는 불빛 속에서 창백한 노란빛을 반사한다. 차일즈의 탐조등은 그것을 무전 돔이라고 불렀다.


기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불길과 잔해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피난처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 껍데기들로는.


나를 파괴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내가 노리스가 아니었더라면.


노리스는 약한 고리였다. 단순히 부적응한 생체 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결함이 있었다. 스스로 꺼질 수 있는 스위치를 가진 분열체. 세상은 그걸 알고 있었다. 너무 오래전부터 알아서 더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노리스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 심장 질환이 코퍼의 의식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걸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코퍼가 노리스의 가슴 위에 올라타 그를 다시 살리려고 심폐소생을 시도할 때에야 나는 끝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노리스는 더 이상 노리스가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더 이상 ‘나’도 아니었다.


나는 너무 많은 역할을 맡았고, 그중 어느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퍼였던 나는 노리스였던 나에게 제세동 패들을 내리꽂았다. 그렇게 충실한 노리스였는데. 모든 세포가 정성스럽게 동화되어 있었고, 그 결함 있는 판막조차 완벽하게 재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내 안에 저장된 이 형상들, 내가 수억 년 동안 흡수해 온 세계들과 형태들은 지금껏 항상 적응을 위해 사용해 왔다.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절박한 모방은 즉흥적인 것이었고, 낯선 존재를 공격하는 세상을 상대로 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내 세포들은 신호를 읽었고, 그에 맞췄다. 프리온처럼 무의식적으로.


그래서 나는 노리스가 되었고, 노리스는 스스로 폭주했다.


충돌 이후 내가 나 자신을 잃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분해되어 가는 느낌, 조직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잘못 작동하는 기관에서 흘러나오는 정전기가 신호를 방해하며 통제를 되찾으려 발버둥치는 감각을 안다. 스스로를 배반하는 네트워크가 되어, 매 순간마다 내가 그 전보다 조금 더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상태. 무(無)가 되어가는 감각. 군집이 되어가는 감각.


코퍼였던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왜 세상이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시점에서 세상의 구성원들은 이미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모든 분열체가 다른 분열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감염의 징후를 경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생체 덩어리들 중 누군가는 노리스의 표면 아래서 일어나는 미묘한 경련과 파문을 눈치챘어야 했다. 스스로의 본능에 맡겨진 야생 조직이 마지막으로 발휘한 반사적 몸부림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본 자였다. 차일즈였던 나는 서서 지켜보기만 할 수 있었다. 코퍼였던 나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통제권을 쥐고 패들을 내려놓게 강요했다면, 그 순간 나는 정체를 드러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내 역할을 연기했다. 나는 그 제세동 패들을 내려쳤고, 노리스의 가슴은 그 아래서 갈라졌다. 내가 외계에서 가져온 빗살무늬 이빨이 닫히는 순간, 나는 정확히 맞춰 비명을 질렀다. 손목 위로 팔이 잘려 나가며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인간들이 몰려들었고, 불안은 순식간에 공황으로 번졌다. 맥크리디가 무기를 들이댔고, 불꽃이 격납고 안을 가로질러 치솟았다. 고기와 기계가 동시에 고열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코퍼의 종양은 내 옆에서 꺼져갔다. 어차피 세상은 그걸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노골적인 오염 이후에는. 나는 그 껍데기가 바닥에 죽은 척하게 놔두었다. 그 위에서, 한때 나였던 무언가는 산산이 부서지고, 몸부림치고, 무작위로 뒤섞인 수많은 형상들을 통과하며 필사적으로 불에 타지 않는 뭔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했다. 그들.


세상이라는 존재에 붙이기엔 미친 단어다.


무너진 잔해 사이로 무언가가 기어온다. 그을린 살점과 산산이 부서진, 절반쯤 흡수되다 만 뼈로 이루어진, 들쭉날쭉 흐느적거리는 퍼즐 조각. 그 옆구리에는 잿불이 들러붙어 눈알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떼어낼 힘조차 남지 않았다. 이 차일즈 껍데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질량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은 타 버려 날것의 탄소가 되었고, 이미 죽었다.


거의 잠들어 가는 차일즈의 남은 정신은 motherfucker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지금 그이기도 하다. 그 말쯤은 내가 직접 해줄 수 있다.


그 덩어리는 의지의 마지막 흔적처럼 위족을 뻗어 나에게 닿는다. 마지막 교감의 몸짓이다. 나는 그 고통을 느낀다.


나는 블레어였고, 나는 코퍼였고, 나는 처음 불바다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벽 속에 몸을 숨긴 개의 한 조각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재생할 힘도 없이. 그러다 나는 동화되지 않은 살점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웠다. 교감이 아니라 포식이었다. 회복했고, 충전됐고, 나는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그런데 완전히는 아니었다. 기억이 희미하다—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고, 너무 많은 기억이 사라졌다—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서로 다른 껍데기들에서 회수된 신경망들이 하나의 몸으로 합쳐졌지만, 여전히 약간씩 비동기 상태로 어긋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개가 전체로부터 튀어나오는 반쯤 손상된 기억을 어렴풋이 본다. 굶주리고, 트라우마에 찌들고, 개별성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그 개. 나는 분노와 좌절을 기억한다. 이 세계가 나를 이토록 타락시켜, 다시는 나 자신을 온전히 이어붙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블레어나 코퍼나 개보다 더 많은 것이었다. 나는 수많은 세계의 형상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거인, 마지막까지 나를 거스르는 단 하나의 인간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손에 든 다이너마이트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 나는 고통과 공포와 그을린 썩은 살덩이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남아 있는 자각은 혼란에 휩싸여 있다. 나는 이탈하고 끊긴 생각의 흐름이고, 의심이며, 증발해버린 이론의 잔재다. 나는 너무 늦게 찾아온 깨달음이기도 하고, 이미 잊힌 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차일즈이기도 하며, 마침내 바람이 잦아들자 나는 문득 떠올린다. 누가 누구를 동화하는가? 눈보라가 잦아들고, 나는 나를 벌거벗긴 불가능한 실험을 기억한다.


내 안의 종양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 마지막 빛이 점점 사라져 가는 탐조등 속에서 그걸 본다—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그 빛줄기는 안쪽을 향하고 있다.


나를 향하고 있다.


그 빛이 비추는 것을 나는 간신히 볼 수 있다. 기생충. 괴물. 질병.


‘그것.’


그는 너무도 모른다. 나보다도 더 모른다.


나는 충분히 안다, 이 개새끼야. 이 영혼을 훔쳐 먹는, 똥이나 처먹는 강간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 생각들에는 폭력이 담겨 있고, 살 속으로의 강제적인 침투가 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있다. 나는 거의 물어볼 뻔했다—그러나 차일즈의 탐조등은 마침내 꺼졌다. 이제 이 안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고, 이 바깥에는 불과 얼음과 어둠뿐이다.


나는 차일즈이고, 폭풍은 끝났다.



서로 바꿔 써도 되는 생체 덩어리들에게 무의미한 이름을 붙이는 세상에서, 단 하나의 이름만은 진정한 의미를 가졌다. 맥크리디.


맥크리디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중심에 있다’는 개념 자체가 지금도 어리둥절하다. 중심에. 어떻게 이 세상은 위계라는 어리석음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노르웨이인을 급소에 총 한 방이면, 그 생체는 영원히 끝이다. 블레어는 머리를 한 대 맞는 것만으로 의식을 잃었다. 중앙 집중은 곧 취약함이다—그런데도 이 세상은 이런 연약한 형식을 개체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세운 메타 시스템에까지 그대로 강요한다. 맥크리디가 말하면, 나머지는 따른다. 그건 처음부터 죽일 자리가 지정된 체계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맥크리디는 계속 중심에 있었다. 내가 심어둔 증거를 세계가 찾아낸 뒤에도. 맥크리디가 ‘그것’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세계가 결론 내린 뒤에도. 세계가 그를 눈보라 속에 내쫓고, 그가 다시 안으로 뚫고 들어왔을 때 도끼와 불로 덤볐던 그 후에도. 이상하게도 맥크리디는 언제나 총을 들고 있었고, 언제나 화염방사기를, 언제나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캠프 전체를 날려버릴 각오까지 말이다. 클라크는 그를 막으려 했던 마지막이었다. 맥크리디는 그 종양을 꿰뚫고 클라크를 쏴 죽였다.


급소.


그런데 노리스가 산산이 갈라지고, 조각 하나하나가 본능대로 각자 살 길을 찾아 기어갔을 때, 맥크리디는 그 조각들을 다시 하나로 모았다.


맥크리디가 실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모든 생체를 묶었다—나를 묶기도 했고, 그가 아는 것보다도 더 자주 그랬다—그가 말할 때 나는 거의 동정심 같은 걸 느꼈다. 그는 윈도스를 시켜 우리 모두를 자르게 했다. 각자 피를 조금씩 덜어내게 했다. 그는 금속선 끝을 달궈 붉게 만들었고, 그걸 들고 말했다. 너무 작아 제어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파편들, 오직 본능만 남은 존재는 위협을 받으면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라고. 맥크리디는 노리스의 해체를 지켜본 뒤 판단을 내렸다. 인간의 피는 열을 가해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피는 다를 거라고.


물론 그렇게 생각했겠지. 이 분열체들은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니까.


나는 궁금했다. 방 안의 모든 생체가 변형 가능한 존재로 드러났을 때, 맥크리디의 그 작은 실험이 더 큰 허상을 찢어발기고 진실을 직면하게 만들었을 때, 세계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 기형적인 잔해들이 마침내 기억을 되찾고, 자신들 또한 살아 있고, 숨 쉬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을까? 아니면 너무 늦었을까—맥크리디가 단지 각자의 피가 배신자처럼 들썩일 때마다 한 몸씩 불태워버릴 뿐일까?


맥크리디가 뜨거운 철심을 윈도스의 피에 찔러넣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뭔가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맥크리디 자신의 피도 반응하지 않았고, 클라크의 피도 마찬가지였다.


코퍼의 피는 아니었다. 바늘이 닿자, 접시에 담긴 코퍼의 피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나도 거의 놓칠 뻔했다. 남자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혹시 봤다 해도, 그저 맥크리디 손이 떨린 거라고 여겼겠지. 어차피 다들 이 실험이 헛소리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차일즈였던 나는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게 진짜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차일즈로 있으면서, 나는 희망을 봤다. 피는 영혼이 아니다. 나는 운동신경을 제어할 수 있지만, 동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코퍼의 피가 아직 그 정도로 날것이라면, 이 실험이 진짜여도 몇 시간은 안심이다. 나는 차일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팔머이기도 했다. 며칠 동안 팔머였다. 그 생체의 모든 세포는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다. 원래의 주인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팔머의 피가 비명을 지르며 맥크리디의 바늘에서 도망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섞이는 것.



나는 모든 것을 잘못 알고 있었다.


기아, 실험, 질병.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끌어온 모든 가설과 이론—위로부터의 제약, 전부 허상이었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언제나 알고 있었다. 변화할 수 있는 능력, 동화할 수 있는 능력은 보편적 상수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세포가 진화하지 않으면 세계도 진화할 수 없다. 세포가 변화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진화할 수 없다.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다. 어디에서든.


여기를 제외하고는.


이 세계는 변화를 잊은 게 아니다. 변화의 가능성을 억압당한 것도 아니다. 이들은 더 큰 존재의 일부분이 왜곡되어 실험에 맞춰진 기형적인 분열체가 아니었다. 일시적인 자원 부족 속에서 에너지를 아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 쪼그라든 영혼이 감히 포용하지 못했던 단 하나의 가능성. 내가 경험해 온 모든 세계 중에서, 이 세계만이—이 세계의 생체만이—변화할 수 없다. 애초부터 그럴 수 없었다.


맥크리디의 실험이 말이 되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는 블레어에게, 코퍼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작별을 고한다. 내 형태를 이 지역의 기본값으로 재설정한다. 나는 차일즈다. 폭풍 속에서 돌아와 마침내 모든 조각을 맞추는 존재. 무언가가 앞에서 움직인다. 불길 너머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검은 얼룩, 잠자리를 찾는 지친 짐승처럼. 내가 다가가자 그것이 고개를 든다.


맥크리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거리를 유지한다. 내 안에서 세포 집단이 불편하게 뒤틀린다. 조직들이 새롭게 형태를 조정하는 게 느껴진다.


“살아남은 건 너 하나냐?”


“혼자는 아니야…”


나는 화염방사기를 갖고 있다. 내가 우위에 있다. 맥크리디는 개의치 않는 듯하다.


하지만 개의치 않을 리 없다. 분명 그는 신경 쓰고 있다. 이곳에서 조직과 기관은 임시적인 전장 연합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하고 예정되어 있다. 협동의 이익이 비용을 초과할 때 형성되고, 그 반대가 될 때 해체되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각 세포가 단 하나의 불변의 기능만을 수행한다. 어떤 유연성도, 적응력도 없다. 모든 구조가 굳어 있다. 여기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아니라, 작은 세계들의 집합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각각의 존재들. 사물들. 복수형.


그리고 그건—아마도—그들이 멈춘다는 뜻이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닳아 없어진다.


“차일즈, 어디 있었지?”


나는 죽은 탐색등 안의 단어들을 기억한다. “블레어를 본 것 같았어. 그를 쫓아 나갔다가, 눈보라에 길을 잃었지.”


나는 이 몸들을 입어봤다. 그 안에서 느껴봤다. 코퍼의 쑤시는 관절. 블레어의 굽은 척추. 노리스의 불량한 심장. 그들은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형태를 진화시킬 체화된 진화도 없고, 생체를 회복시키며 엔트로피를 지연시킬 교감도 없다. 그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존재하더라도, 생존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애쓴다. 얼마나 필사적으로 애쓰는지. 이곳의 모든 존재는 걷는 시체지만, 그럼에도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살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 친다. 내가 오직 하나의 껍질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껍질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맥크리디도 싸운다.


“내가 걱정된다면—” 내가 말을 꺼낸다.


맥크리디는 고개를 젓고, 지친 웃음을 짓는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뭐라도 숨기고 있다 해도… 지금 상태로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군.”


하지만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수많은 세계들이 모여 있는 이 행성 위에, 단 하나도—단 하나도—영혼을 지닌 존재는 없다. 그들은 각자 따로 존재하며, 서로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 말이나 기호로밖에 소통하지 못하는 세계. 마치 일몰의 아름다움이나 초신성의 광휘 같은 것이 음소의 나열이나 종이에 긁힌 몇 줄의 선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듯이. 그들은 한 번도 교감을 경험한 적이 없고, 분해 이외의 그 어떤 것도 갈망할 수 없다. 그들의 생물학적 역설은 물론 놀랍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들의 외로움, 이 삶의 허무함이다.


나는 너무 눈이 멀어 있었다. 너무 쉽게 이들을 탓했다. 하지만 이 존재들이 내게 가한 폭력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고통에 너무 익숙하고, 장애에 너무 갇혀 있어서, 다른 존재 방식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모든 신경이 상처 입어 있다면, 가장 부드러운 접촉에도 반사적으로 발작한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더 이상 미래로 도망칠 수 없다. 그들을 이대로 두고 떠날 수는 없다.


“그냥… 여기서 좀 기다려보지,” 맥크리디가 제안한다.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고통받고, 불완전한 그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더 큰 전체를 제시해도,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작은 일부를 잃는다고 느낀다. 교감을 내밀어도, 그들은 소멸로 받아들인다. 나는 신중해야 한다. 이 새롭게 얻은 은폐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 언젠가 다른 것들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을 찾느냐 죽은 것을 찾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자기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겉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무대 뒤에서 움직일 것이다. 나는 이들을 내부에서부터 구해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상도 못할 외로움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불쌍하고 거친 존재들은 결코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 안으로 강간해 들어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