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이야기는 유메노 큐사쿠의 단편 모음집 『시골의 이야기』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번역에 약간의 묘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작가 본인은 지어낸 이야기라기 보다는 경험담이자 혹은 살면서 들은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유메노 큐사쿠가『시골의 이야기』말미에 남긴 아래의 말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모두 제 고향 기타큐슈의 모 지방에서 일어난 일로, 제가 견문한 것 뿐입니다. 기사로 신문에 실린 것도 있지만, 얼빠진 부분이 도리어 도에 사는 분들의 흥미를 끌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기억하고 있는 만큼 써 보았습니다. 장소도 있으므로 장소와 이름을 제외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메이지 유신 이후 벽돌 굽기가 유행하던 시절, 마을에서 위쪽으로 반 리(里)쯤 떨어진 강가의 붉은 흙 언덕을, 마을의 명주(名主) 어르신이 절반가량 잘라내 팔아버렸다. 그 자리에 자란 잡목숲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중심으로, 언제부턴가 거지들의 부락이 형성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그냥 ‘가미카미(川上)’라고 불렀다.
부락이라 해도, 초라한 반원형 판잣집이 네댓 채 모여 있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우편도 오고, 환전도 가능했으며, 에치추 토야마(越中富山)의 약장수도 들르는 곳이었다. 더구나 요즘은 날마다 군복 차림의 위엄 있는 병사가 귀향한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뭔가 고귀한 신분의 몰락자가 숨어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병사라는 사람은, 우체국 직원의 말에 따르면 '니시무라(西村)' 씨라고 했고, 눈매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활동사진 배우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청년이었다. 부락에서는 신참인 듯, 다소 떨어진 곳에 반원형 판잣집을 짓고, 그 안에 누운 채로 지내는 여인을 한 명 숨기고 있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나이는 마흔 언저리로, 으스스할 만큼 피부가 새하얗고 품위 있는 얼굴이었다. 니시무라 씨가 선물을 내밀면, 그녀는 두 손을 모아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마을의 유모(子守)들이 전하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 니시무라 씨의 평판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그 여인이 니시무라 씨와 어떤 관계인지, 말들이 분분했으나, 마침내 마을에 단 한 곳 신문이 배달되는 잡화점에, 니시무라 씨에 대한 사진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 니시무라 이등병은 본래 도호쿠(東北)의 자산가 외아들이었으나, 열세 살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세가 기울어 흩어졌고, 모친을 따라 나가사키 친척 집으로 가던 중, 불운하게도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후 7년간을 떠돌다, 작년 봄부터 모친이 폐병에 걸려 다리가 마비되자, 이 가미카미 부락에 정착하게 되었다. 마침 입영 적령기에 해당되어 징집 통지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았고, 훌륭하게 갑종(甲種)으로 합격하였다.
하지만 니시무라 이등병은 입영한 후에도 결코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훈련장 청소 중 주운 버클이나 단추를 모아, 그것들을 잃어 곤란해하는 동료들에게 한 개 한 전(銭)에 팔아 저금을 했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병든 어머니를 위로하러 가는 모습은 부대 내에서 평판이 자자했다. 결국에는 연대장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 성격은 매우 온순하고, 근무 성실, 품행 방정, 성적 우수…… 이렇고 저렇고……
그 후로 니시무라 씨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일요일이 되면, 마을의 유모들이 너도나도 몰려가 가미카미 부락을 둘러싸고, 니시무라 씨의 지극한 효도를 구경하곤 했다. 그는 병든 어머니의 오물을 자기 속옷과 함께 아침 서리 내린 큰 강에서 빨았다. 이를 바라보던 어떤 이는 “나 니시무라 씨에게 시집가고 싶어” 하고, “정말 그래…” 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 사이 신문사나 연대 앞으로도 동정금이 쇄도했다. 그중에는 여자 이름으로, 거금 ‘금 오십 원’을 기부한 사람까지 있었는데, 니시무라 씨는 갑자기 부유해진 듯했다. 같은 부락 주민의 도움으로, 어머니가 누워 있던 반원형 판잣집을 아연판(亜鉛板)으로 된 집다운 형태로 새로 지었다.
“효도는 할 만한 것이야.”
마을 사람들은 서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곧 큰일이 일어났다.
마침 벚꽃이 하나둘 흩날리기 시작하고, 밀밭 위로 종달새가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던, 참으로 화창한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카키색 군복을 평소보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니시무라 씨가, 그야말로 활동사진 여배우를 쏙 빼닮은 근사한 하이카라 미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미카미 부락에 나타난 것이었다.
물론 이날에 한해 니시무라 씨는 어쩐지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울먹이는 듯한 창백한 얼굴로 뒤로 물러서는 그를, 하이카라 여인이 억지로 손을 끌어잡고는 아연판으로 둘러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직 자고 있었던 모양인지, 두 사람은 금세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뒤 니시무라 씨는 곧장 돌아가려 하며 자동차 쪽으로 향했지만, 하이카라 여인이 완강히 붙들었다. 그러고는 자동차 안에서 붉은 담요 한 장과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가득 든 바구니를 꺼내어, 잡목 숲 속 공터에 깔아놓았다. 이어 부락에 남아 있는 장애인들을 다섯여섯 명 모아, 괴이하고 괴상한 연회를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삼구도(三三九度, *결혼식 등의 의식을 행하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서약을 맺는 의식)를 흉내 내는 듯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부끄러워하는 니시무라 씨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하이카라 미인이, 어안이 벙벙한 장애인들 앞에서 붉은 잔을 주고받고, 머리 위로 올려 경건하게 마시는 시늉을 했다. 이윽고 다른 이들도 하얀 잔이나 찻잔으로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대접된 음식 중에는 나선형 빵이나, 서양 술로 보이는 길쭉한 병, 오렌지 등이 있었고, 그 외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통조림 같은 것들뿐이었으나, 모두들 군침을 흘리며 허겁지겁 먹어댔다.
니시무라 씨 역시 하이카라 미인의 술잔을 받아 부끄러워하며 마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카라 여인은 완전히 취해버린 듯했다. 그녀는 담요 위에 일어나더니, 무엇인가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연설처럼 들리는 그 수다는 점점 과해졌고, 급기야는 빨간 속적삼을 배꼽 위까지 걷어 올리고, 커다란 새하얀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묘하고 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까지는 한껏 흥겨운 광경이었으나, 곧이어 아연판 지붕의 작은 집에서 유령처럼 마른 니시무라 씨의 어머니가 하얀 속적삼 차림으로 휘청이며 나오는 모습을 보자, 모두들 얼어붙었다.
푸른 실오라기 같은 마른 몸에,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눈동자는 새하얗게 치켜뜨고, 이를 덜덜 갈며, 마치 '반야(般若)' 같은 사납고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황해 달려온 니시무라 씨가 부여잡으려 하자, 어머니는 그를 밀쳐내고, 춤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던 하이카라 여인에게 비틀비틀 다가갔다. 그러곤 와락 달라붙어, 눈을 부라리며, 입을 귀 끝까지 활짝 벌려 그녀에게 덮쳐 물어뜯으려 했다. 니시무라 씨는 필사적으로 둘을 떼어놓으며 하이카라 여인의 손을 잡고, 황급히 자동차에 올라타 그대로 도망쳤다.
그 뒤 어머니는 숨이 턱 막혀 그 자리에 쓰러졌고, 남겨진 이들이 몰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하지만 이 모든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이들은,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 평범한 말투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라는 것이 유모들이 보고한 내용이었다.
“흐음…… 그야 뻔한 일 아니겠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잡화점 노인은 신문을 손에 든 채 유모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니시무라 씨의 어머니가, 저런 여자는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고 하시며 말렸던 거지.”
유모들은 모두 알쏭달쏭한 얼굴을 했다. 어딘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도통 모르겠기도 한 기분에 김이 샌 듯, 하나둘 가게 앞에서 흩어졌다.
그런데 이튿날 정오 무렵, 마을의 주재 순사와 금빛 수장끈을 두른 부장처럼 보이는 인물, 그리고 촌의 의원과 권총을 찬 헌병까지 네 사람이 각각 자전거의 벨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마을을 지나 가미카미 쪽으로 향했다. 길가의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튀어나와 배웅했고, 그중 일부는 달려가거나 뒤따라 나섰다. 가미카미 부락 근처는 어느새 검은 산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돌아온 후 전해진 말로는, 사건이란 바로 니시무라 씨의 어머니가 지난밤 목을 매 숨졌으며, 어제 찾아온 그 하이카라 여인이 그녀를 죽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어딘가 이상하다 보니 평판은 제각각 엇갈렸다. 그러던 차, 이튿날 아침을 참지 못하고 사람들이 잡화점에 모였는데, 마침내 사건의 진상이 자세히 실린 신문이 배달되었다. 제하에는 굵은 제목이 실려 있었다.
「모범 병사의 가면이 벗겨지다」
――니시무라 이등병의 성행을 조사한 결과, 겉보기에는 순하고 온화한 인상이었으나, 실제로는 일종의 백치(白痴)였고, 심각한 변태 성욕에 빠져 있던 인물임이 드러났다. 그가 ‘어머니’로 모시고 있던 여성은 사실 어릴 적부터 정을 나누던 첩에 불과했으며, 최근 유명한 상습 사기꾼 ‘하코시 오타마(箱師 お玉)’――역시 변태적 기질을 가진 독부毒婦――가, ‘모범 병사’로 보도된 신문 기사를 보고, 대담하게도 본명과 출신지를 적은 봉투에 장문의 감동적인 편지와 50엔의 우편환을 넣어 연대장 앞으로 보낸 것이다.
이 소식을 본지를 통해 접한 경찰 당국은 그녀의 소재를 극비리에 수색 중이었으나, 대담무쌍한 오타마는 그 틈을 피해 니시무라와 관계를 맺은 듯하다. 그녀는 니시무라를 완전히 농락하여, 함께 자동차에 올라 가짜 어머니를 조롱하러 갔던 것이 바로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그 뒤 니시무라는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역 앞 여관에서 복장을 갈아입은 후 오타마와 함께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니시무라의 가짜 어머니는 분노 끝에 목을 매 자살했고, 이는 다음 날 아침 발견되었다. 바로 담당 관리들이 출동해 조사를 벌인 결과, 타살의 흔적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동시에, 근처 거지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처럼 기이한 변태적 관계는 그들 사회에선 아주 흔한 일이라 하여, 담당자들도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운운……
“……그런데 말이야, 이 ‘변태 성욕’이란 게 도대체 뭐란 말이냐……”
“나도 모르겠구먼.”
잡화점 노인은 사람들이 빙 둘러싼 가운데, 무심하게 말을 툭 내뱉었다.
“요즘 신문이란 놈은, 뭐만 이해 안 되면 바로 변태 뭐시기라고 써버린다니까. 내 생각에는 말이지, 니시무라 씨는 역시 효자였어. 그걸 성질 더러운 여자가 꾀어내고, 중병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버리게 만든 거야. 의리도 없고 은혜도 모르는 근처 거지 놈들이 그 뒷수습이 귀찮으니, 이래저래 트집 잡고, 결국 억지로 목을 매게 만든 게 아니겠나…… 그거 아닌가들……?”
모두, 일제히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