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마시오. 그럼 뭐하러 매일 이 집에……”

「고냄비 / 유메노 큐사쿠」



※ 아래 이야기는 유메노 큐사쿠의 단편 모음집 『시골의 이야기』에 나오는 단편 중 하나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번역에 약간의 묘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작가 본인은 지어낸 이야기라기 보다는 경험담이자 혹은 살면서 들은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유메노 큐사쿠가『시골의 이야기』말미에 남긴 아래의 말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모두 제 고향 기타큐슈의 모 지방에서 일어난 일로, 제가 견문한 것 뿐입니다. 기사로 신문에 실린 것도 있지만, 얼빠진 부분이 도리어 도에 사는 분들의 흥미를 끌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기억하고 있는 만큼 써 보았습니다. 장소도 있으므로 장소와 이름을 제외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돈을 빌려주는 과부’라 하면 이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쉰 줄 안팎의 건장한 체구에, 검은 곰보자국으로 가득한 얼굴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었고, 팔 힘으로는 웬만한 사내보다도 강했다. 탐욕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이었고, 삼미센 솜씨는 수준급, 목소리도 곱다고 했다. 그런 그녀는 외동딸 ‘오카요’와 단둘이서, 집창고가 줄지어 선 큰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딸 오카요는 죽은 아버지를 닮은 탓인지, 어머니와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다정한 성격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바느질 솜씨로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 오카요에게, 이웃 마을의 다다미 장수 집안 둘째 아들이자 중학교까지 다닌 욘사쿠라는 청년이, 요즘 밤마다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래부터 오카요에게 마음이 있었던 마을 청년들은 크게 분개했고, 다들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장맛비 내리는 저녁, 손마다 몽둥이 자루를 든 열네다섯 명의 청년이 과부의 집을 에워쌌다. 그중 호기로 소문난 셋이 대표로 집 안으로 들어가, 과부에게 직접 따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 이 집에 이웃 마을의 욘사쿠가 들어오는 걸 확실히 봤소. 순순히 내주면 좋고, 말을 얼버무린다면 이 집을 샅샅이 뒤지겠소.”


과부는 안에서 나타났다. 유카타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린 채, 오른손엔 검게 윤이 나는 램프를, 왼손엔 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 턱에 우뚝 서서, 세 청년을 내려다보며 태연자약한 얼굴로 말했다.


“응, 온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내준다고 해서 어떻게 하려는 거지?”


“반 죽여놓을 거요. 우리 마을 아가씨들은 다른 마을 놈 손에 안 넘긴다, 그게 옛날부터 내려온 우리 식이요. 그대도 알고 있겠지?”


“응, 알고 있어. 그 정도는…… 후후후후. 하지만 그건 정말 유감이네. 그런 용무라면 조용히 돌아가 줘.”


“뭐라고……?”


“별거 아니야. 욘사쿠 군은 내 딸을 만나러 오는 게 아니니까.”


“거짓말 마시오. 그럼 뭐하러 매일 이 집에……”


“헤헤헤. 내가 볼 일이 있어서 부른 거야.”


“뭐라고…… 당신이?”


“그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 중요한 일이라는 게 뭐요?”


“말하기 곤란한 일이야. 그래도 언젠간 알게 될 거다. 헤헤헤헤……”


청년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거리는 곰보 얼굴을 보며, 다들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듯했다. 그러다 그중 한 명이 의미심장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좋소. 알겠소. 그럼 오늘은 그냥 가겠소. 하지만 약속 어기면 가만두지 않겠소.”


그렇게 듣는 사람이 도통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세 사람은 억지로 어깨를 펴고 나갔다.


그 뒤로 욘사쿠는 공개적으로 이 집에 드나들었다.


그런데 다섯 달, 여섯 달쯤 지나고 가을 수확철이 되자, 과부의 아랫배가 약속이나 한 듯이 불룩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마을엔 큰 화제가 되었다. 어느 타작장에 가도 이 소문이 넘쳐났다. 그 소문이 절정에 달했을 즈음, 마을 사무소에는 ‘욘사쿠를 딸의 사위로 들이겠다’는 공식 신고서가 과부의 이름으로 접수됐다. 덕분에 소문은 더욱 무성해졌다.


“이건 마을의 도의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라며 초등학교 교장이 항의했고, 마을 장은 그 신고서를 눌러뭉개버렸다는 얘기도 돌았다. 마을 청년들이 곧 들이닥칠 작정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심지어 읍내 경찰이 내밀히 실상을 조사 중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탓인지, ‘부자 과부’ 집안 세 사람은 집의 앞뒤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는 간장도, 기름도 사러 나가지 않게 되었다. 원래라면 과부는 수확철 이후 빚 독촉으로 바쁠 시기였지만, 올해는 그런 낌새가 전혀 없어서, 빚진 이들은 모두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 수확이 어느 정도 끝나고, 마을에 축제 분위기가 감돌 무렵, 이 집이 계속 잠긴 채 연기 하나 피워올리지 않는 걸 다들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과부가 아이 낳으러 멀리 간 모양이지.” 하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무래도 수상쩍다는 분위기가 돌았다. 마침내 주재소 순경이 구청장을 대동해, 뒷문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가재도구는 그대로였지만, 금고만 뚜껑이 열린 채, 현금과 통장이 사라져 있었다. 그 앞엔 누군가 읽다 버린 남자의 필체로 된 편지가 있었고,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어머니, 그때 욘사쿠 씨를 도와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머니의 욘사쿠 씨에 대한 은혜를 앞세운 횡포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고, 욘사쿠 씨와 함께 먼 곳으로 가서 스위트홈을 꾸릴 작정입니다.

저희 둘에게 당연히 돌아올 재산의 일부를 가지고 떠납니다.

안녕히 계세요. 부디 평안하시길 빕니다.


○월 ○일   

욘사쿠, 처 카요 올림


그렇다면 과부는 어디로 간 걸까?


사람들이 집 안을 샅샅이 뒤지다, 창고 들보에서 반쯤 썩은 시체가 목을 맨 채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아래엔 낡은 천으로 싸인 고냄비 하나가 내던져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