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20년 전에 한 약속이죠."
「20년 후 / 오 헨리」
작품 및 작가 소개
오 헨리(O. Henry, 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 1862~1910)는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로, 예기치 못한 결말과 인간적인 유머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는 일상의 소시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짧은 이야기 안에 따뜻함과 반전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재능을 지녔으며, 대표작으로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20년 후』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오 헨리식 반전’이라는 표현이 쓰일 만큼, 그는 단편 문학의 형식을 새롭게 정의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번역 본문
순찰 중이던 경찰관은 당당한 걸음으로 대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 당당함은 일부러 꾸민 것이 아니라 몸에 밴 것이었고, 사실 그걸 보여줄 구경꾼도 거의 없었다. 시각은 밤 10시가 막 되려는 참이었지만, 비 냄새 섞인 싸늘한 돌풍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몰아낸 상태였다.
문 손잡이를 확인하며 지나가고, 곤봉을 정교하게 돌리고, 때때로 조용한 거리 끝을 살피는 그의 몸짓은 그 자체로 평화의 수호자를 보여주는 멋진 장면 같았다. 이 지역은 밤이 되면 조용해지는 곳이었다. 간혹 담배 가게나 24시간 운영되는 간이 식당에 불이 켜져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문은 이미 문을 닫은 상점들이었다.
그가 한 구역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걸음을 느리게 했다. 불 꺼진 철물점 입구에 한 남자가 기대어 서 있었고, 입엔 불붙이지 않은 시가가 물려 있었다. 경찰관이 다가서자, 그 남자가 재빨리 말했다.
"괜찮습니다, 경관님.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20년 전에 한 약속이죠.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필요하시다면 설명해 드릴게요. 그때 이 가게 자리에 '빅 조 브래디'라는 식당이 있었거든요."
“5년 전까지 있었죠,” 경찰관이 말했다. “그때 철거됐습니다.”
남자는 성냥을 켜 시가에 불을 붙였다. 불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창백하고 각진 턱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으며, 오른쪽 눈썹 위엔 작은 흰 흉터가 있었다. 그의 넥타이핀은 큼직한 다이아몬드였고, 특이한 방식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20년 전 오늘 밤," 그가 말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지미 웰스와 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죠. 우리는 거의 형제처럼 뉴욕에서 함께 자랐어요. 나는 열여덟, 지미는 스무 살이었죠. 다음 날 나는 서부로 떠나 부를 쌓기 시작했고, 지미는 뉴욕을 떠날 수 없었죠. 그는 이 도시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믿었어요. 그날 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든, 어디서든, 20년 뒤 오늘 밤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어요. 그땐 서로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흥미로운 얘기네요," 경찰관이 말했다. "하지만 꽤 긴 시간이네요. 그 뒤로 연락은 없었나요?"
"처음엔 편지도 주고받았어요,"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1~2년 지나면서 서로 연락이 끊겼죠. 서부는 워낙 넓어서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 잊기 쉬워요. 그래도 지미는 꼭 올 거라고 믿어요. 그는 세상에서 가장 신실하고 든든한 친구였죠. 살아만 있다면 여기 올 겁니다. 나도 그를 위해 천 마일을 달려왔어요."
그는 화려한 회중시계를 꺼냈다. 뚜껑에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열 시까지 3분 남았네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이 식당 문 앞에서 헤어졌던 것도 정확히 열 시였어요."
"서부에서 꽤 성공하셨나 보네요?" 경찰관이 물었다.
"그럼요! 지미도 절반만큼이라도 잘 됐기를 바라죠. 그는 조금 느긋한 성격이었지만, 좋은 친구였어요. 나는 똑똑한 놈들과 경쟁하며 이만큼 벌었죠. 뉴욕은 사람을 틀에 박히게 만들지만, 서부는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죠."
경찰관은 곤봉을 돌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럼 전 순찰 계속하겠습니다. 친구분 꼭 오시길 바랄게요. 정각에 가버리시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남자가 말했다. "적어도 30분은 기다릴 겁니다. 지미가 살아 있다면 분명 올 거예요. 수고하세요, 경관님."
"안녕히 계세요," 경찰관은 그렇게 인사하고, 다시 순찰을 이어갔다.
이제는 가늘고 차가운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은 간헐적인 돌풍에서 꾸준한 강풍으로 변해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도 코트를 움켜쥐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철물점 문가에 선 남자는 20년 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 마일을 달려왔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희미한 기대 속에서 시가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약 20분을 기다렸다. 그러다 긴 코트를 입고 칼라를 귀까지 올린 키 큰 사내가 거리 건너편에서 급히 다가왔다. 그는 곧장 그 남자에게 다가왔다.
“혹시… 밥인가?” 그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지미 웰스 맞아?” 문가의 남자가 외쳤다.
"이런, 정말 밥이군! 살아 있다면 여기 올 줄 알았지. 벌써 20년이라니… 그 식당도 없어졌더군, 밥. 거기서 또 한 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서부는 어땠어, 친구?"
“아주 잘됐지. 원하던 건 다 얻었어. 그런데 넌 꽤 많이 변했구나, 지미. 예전보다 키가 두세 인치는 더 커진 것 같아.”
“스무 살 이후에 좀 컸나 봐.”
“뉴욕에선 잘 지내?”
“그럭저럭. 시청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자, 밥. 좋은 데가 있어. 가서 옛 얘기나 하자.”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거리 위로 걸음을 옮겼다. 서부에서 성공한 밥은 자랑스레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옆의 사내는 조용히 경청했다.
거리 모퉁이에 선 약국은 눈부신 전기 조명으로 가득했다. 두 사람이 그 빛 속으로 들어서자,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밥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팔을 뿌리쳤다.
“너 지미 웰스가 아니야,” 그는 딱 잘라 말했다. “20년이면 사람을 바꾸기엔 길지만, 매부리 코가 뭉툭한 코로 바뀔 만큼은 아니지.”
“가끔은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바꾸기도 하지,” 키 큰 사내가 말했다. “넌 지금 10분째 체포된 상태야, ‘실키’ 밥. 시카고에서 네가 이쪽에 있을지 모른다며 연락을 했고, 그쪽에서 너랑 얘기하고 싶대. 순순히 가겠지? 그게 좋을 거야. 그 전에 이걸 전해달라고 부탁받았어. 여기서 읽어도 돼. 지미 웰스 경관이 쓴 쪽지야.”
밥은 그 작은 종이를 펴들었다. 읽기 시작할 땐 손이 흔들리지 않았지만, 다 읽을 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쪽지 내용은 짧았다.
⁕
밥.
나는 약속된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어.
네가 성냥을 켜서 시가에 불 붙이는 순간, 그 얼굴을 알아봤지.
시카고에서 수배 중인 그 남자의 얼굴이었어.
하지만… 내가 직접 체포하긴 너무 힘들더군.
그래서 다른 형사를 데려왔어.
— 지미.
작품 해설
『20년 후』는 오 헨리 특유의 짧고 명료한 문장, 그리고 마지막에 찾아오는 반전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은 단순히 우정이나 약속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마지막 순간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 도덕과 의무, 정의와 감정의 대립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두 사람의 간극은 결국 운명의 선택 앞에서 갈라서게 됩니다. 오 헨리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현실의 냉정함’을 충돌시키며 짧은 이야기 속에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인상적인 문장
-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20년 전에 한 약속이죠.”
- “만약 그가 온다면, 난 여기 있어야 하잖아요.”
- “시간은 사람을 바꾼다고 하지만, 약속은 변하지 않기를.”
- “누구든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 “나는 그를 체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경찰관을 보냈다.”
Q&A
2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가 사실 경찰에게 쫓기는 범죄자였으며, 처음 등장한 경찰은 친구를 직접 체포할 수 없어 다른 경찰을 불렀다는 것이 반전입니다.
우정, 신뢰, 정의의 딜레마입니다. 인간적 감정과 사회적 책임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짧은 구성 속에 예상치 못한 결말과 따뜻한 감정과 냉정한 현실의 대비가 있으며, 이는 오 헨리의 대표적 특징입니다.
감상 마무리
『20년 후』는 단지 한 편의 반전소설이 아닙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 시간이 만든 변화, 선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때 친구였던 두 사람의 만남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차가운 현실의 칼날을 들이밉니다. 오 헨리의 이야기는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마치 20년 전의 약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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