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는 자기 형벌의 길이를 스스로 정할 방법이 있다. 오늘, 나의 형기가 끝난다."

『달빛 가득한 길』 / 앰브로스 비어스 단편 번역

"죄수는 자기 형벌의 길이를 스스로 정할 방법이 있다. 오늘, 나의 형기가 끝난다."

「달빛 가득한 길 / 앰브로스 비어스」

작품 및 작가 소개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 1842~1914?)는 미국 남북전쟁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냉소적이고 심리적인 단편 소설을 다수 남긴 작가입니다. 대표작 『올 크리크 다리 사건』을 비롯해 환상적 공포, 현실과 환상의 경계, 죽음 이후의 세계를 깊이 탐구했습니다. 『달빛 가득한 길』은 그의 후반기 대표작 중 하나로, 세 인물의 서로 다른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하며, 감정의 흐름과 인식의 층위를 문학적으로 정교하게 실현한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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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본문




I

조엘 헤트먼 주니어의 진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부유하고, 존경받고, 꽤 괜찮은 교육을 받았으며, 건강도 양호하다. 흔히들 갖기를 바라는 조건들이 내겐 모두 갖춰져 있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차라리 이 모든 것들이 없었다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면 내 겉모습과 내면의 삶 사이의 극명한 대조가 이렇게까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주의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핍과 노력의 고통 속에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음울한 비밀—그리고 그 비밀이 끊임없이 불러오는 수수께끼—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엘 헤트먼과 줄리아 헤트먼의 외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유복한 시골 신사였고, 어머니는 아름답고 재능 있는 여성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열정적으로,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병적일 정도로 소유욕 강하게 사랑했다. 우리 집은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고,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숲과 관목으로 이루어진 공원 속, 건축 양식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불규칙한 구조의 대저택이었다.


이야기의 시점에서 나는 예일 대학 2학년생으로, 열아홉 살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한 통의 전보가 도착했다. 그 내용은 설명 없이 다급했으며,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슈빌 역에는 먼 친척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내가 불려온 이유를 전해주었다. 어머니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동기는 물론, 범인의 정체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당시의 정황은 이러했다.


아버지는 내슈빌에 일이 있어 떠났고, 다음 날 오후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계획한 일을 마치지 못하고 그날 밤, 새벽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검시관 앞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자고 있는 하인들을 깨우기 싫었던 그는 뚜렷한 목적 없이 집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때, 건물 모퉁이를 돌며 그는 누군가가 조용히 문을 닫는 소리를 들었고, 어스레한 어둠 속에서 남자의 형체를 희미하게 보았다. 그 인물은 곧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고 한다. 하인을 몰래 만나러 온 누군가라 생각한 아버지는 급히 뒤를 쫓고 마당을 수색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곧장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방 문은 열려 있었고, 깜깜한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내딛은 아버지는 무언가 무거운 것을 넘어져 쓰러졌다. 그 무언가는—이 끔찍한 사실을 더 이상 말로 옮기고 싶지 않다—목이 사람 손에 의해 졸린 채 죽어 있는 어머니의 시신이었다!


집 안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고, 하인들도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죽은 어머니의 목을 감싼 끔찍한 손자국을 제외하곤, 살인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제발, 그 손자국만큼은 내 기억에서 지워졌으면 좋겠다!


나는 학업을 포기하고 아버지 곁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원래도 과묵하고 침착한 성격이었지만, 이제는 깊은 침울에 빠져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누군가의 발소리나 문이 갑자기 닫히는 소리 같은 사소한 자극—에는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치 공포처럼. 그는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거나 얼굴이 창백해지곤 했으며, 곧장 그보다 더 깊은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았다. 흔히 말하는 '신경쇠약자'가 된 것이다. 한편 나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다—이 차이는 크다. 젊음은 길르앗,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향유가 있다. 아, 다시 그 마법 같은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익숙지 않았고, 내가 입은 상실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제대로 가늠하지도 못했다. 얼마나 강한 고통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여름밤, 아버지와 나는 시내에서 집까지 도보로 돌아오고 있었다. 동쪽 지평선 위로 만월이 세 시간쯤 떠 있었고, 온 들판은 여름밤의 엄숙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 발소리와, 끊임없이 울어대는 베짱이 소리뿐이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그림자 사이사이 짧은 구간마다 도로는 유령처럼 희게 빛났다. 집 앞의 문에 다다르자—정면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창에는 불빛 하나 없었다—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내 팔을 움켜쥐며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맙소사, 맙소사, 저게 뭐지?”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봐! 저기 봐!” 그는 앞으로, 도로를 가리켰다.


나는 말했다.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 들어가요. 몸이 안 좋으신 거예요.”


아버지는 내 팔을 놓고 도로 한가운데, 달빛이 내리쬐는 곳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굳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달빛에 드러났고, 그 창백하고 굳은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살짝 소매를 끌었지만, 아버지는 나의 존재조차 잊은 듯했다. 이윽고 아버지는 뒤로 한 걸음씩 천천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이 보았거나—믿었던 무언가를—계속 응시하면서. 나는 몸을 반쯤 돌려 뒤따르려 했으나 망설였다. 특별한 공포심은 들지 않았지만, 그 대신 무언가 한기 어린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얼음바람이 스며드는 듯했다. 나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 바람이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집 위층 창문 하나에서 갑자기 불빛이 새어 나왔다. 어떤 하인이, 어떤 불길한 예감에 이끌려—누가 알겠는가—어떤 설명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램프를 켠 것이다. 내가 다시 아버지를 향해 돌아섰을 때, 그는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추측의 경계 너머, 미지의 세계에서조차 단 한 조각의 속삭임도 들려온 적이 없다.


II

카스파 그래튼의 진술


오늘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 불린다. 하지만 내일이면, 이 방 안에는 의식 없는 진흙덩이 하나가 누워 있겠지—너무 오래 나였던 그 형체가. 누군가 호기심에 못 이겨 그 보기 싫은 것의 얼굴 위 천을 걷어올린다면, 그것은 단지 병적인 호기심 때문일 뿐이다. 아마 그중 몇몇은 좀 더 나아가 이렇게 묻겠지. “그는 누구였지?”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답을 남긴다—카스파 그래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 이름은, 길지도 않은 내 삶의 지난 20년 동안 나에게 필요한 만큼은 역할을 다했다. 그래, 내가 직접 지어낸 이름이다. 하지만 다른 이름이 없었기에, 지을 권리는 나에게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은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체성을 증명하지 못할지라도, 혼란은 막아준다. 어떤 이들은 숫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욱 부적절한 구별 방식처럼 느껴진다.


한 번은, 아주 먼 도시의 거리에서 두 명의 제복 입은 남자를 지나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걸음을 멈추며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동료에게 말했다. “저 남자, 767번을 닮지 않았어?” 그 숫자에는 기묘하고 끔찍한 낯익음이 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옆 골목으로 달려들었고, 시골의 좁은 길가에 쓰러질 때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그 숫자는 결코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숫자가 떠오를 때마다, 음탕하게 떠들어대는 괴성들, 기쁨 없는 웃음소리, 쇠문이 쾅 닫히는 소리들이 함께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비록 스스로 지었다 해도, 이름은 숫자보다 낫다고. 조만간 나는 공동묘지의 명부에 숫자와 이름, 두 개 모두를 얻게 될 것이다. 뭐, 호사라면 호사다!


이 글을 발견할 사람에게 부탁하건대, 다소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이건 내 인생의 기록이 아니다. 그런 것을 쓸 만큼의 지식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부서진 기억들, 제각기 관련 없어 보이는 단편들의 기록일 뿐이다. 어떤 것들은 찬란한 구슬이 꿰어진 실처럼 선명하고 연속적이지만, 어떤 것들은 멀고 낯설어 붉은 꿈조각처럼 다가오고, 그 사이사이는 텅 비고 검다—거대한 황무지 속 붉게 살아 있는 마녀불처럼.


영원의 기슭에 선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대략 20년에 걸친 발자국들이 남아 있다—피 흘린 발로 찍은 자국들. 가난과 고통을 거쳐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어져 있다. 마치 짐을 진 자의 비틀거림처럼—


외롭고, 낯설며, 우울하고, 느린 걸음.


아, 시인이 예언한 나의 모습—얼마나 절묘하면서도 무시무시하게 절묘한가!


그 고통의 길, 즉 죄악과 고난이 얽힌 이 서사시의 시작 지점 너머는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 안개 속이다. 그것이 단지 2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늙었다.


사람은 자신의 출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들어서 알 뿐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한 형태로 나에게 주어졌다. 신체와 정신 모두 완성된 상태였다. 전생에 대해서는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다. 누구나 꿈처럼 느껴지는 더듬는 기억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기억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는 없다.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처음 의식을 가진 순간부터 내가 이미 성숙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놀람도, 의문도 없이 그저 나는 숲속을 걷고 있었다. 옷은 성기게 걸쳐 있었고, 발은 상처투성이였으며, 말할 수 없이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눈에 띈 농가에 다가가 음식을 청했고, 집주인은 음식을 주며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큰 당혹감에 나는 그 집을 떠났고, 밤이 되어 다시 숲속에 누워 잠들었다.


다음 날, 나는 한 대도시에 들어섰다—도시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리고 이후의 인생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제 끝을 맞이할 삶이다. 떠돌이 생활, 죄에 대한 형벌처럼, 형벌 속의 죄처럼, 나를 따라다닌 끊임없는 공포와 죄책의 나날이었다. 가능하다면 줄거리를 추려 보겠다.


내가 한때 어떤 대도시 근처에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번창한 농장주였고, 내가 사랑하면서도 의심하던 여인과 결혼했다. 아이도 있었던 것 같고, 그 아이는 재능이 빛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언제나 흐릿했고, 선명하게 그려진 적이 거의 없었다. 자주 그림 밖으로 빠져 있었다.


어느 불운한 날 밤, 나는 아내의 정절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소설이나 현실에서 흔히 보이는, 천박하고 뻔한 방식으로. 나는 다음 날 오후까지 도시에서 머문다고 말해놓고는, 밤이 지나기도 전에 몰래 돌아왔다. 나는 집 뒤편으로 갔고, 미리 손봐두어 겉보기에는 잠겨 있지만 실제로는 열리는 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문에 다가서려는 순간, 그것이 조용히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고,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살의를 품고 그를 뒤쫓았지만,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때로는, 그 존재가 정말 인간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질투와 분노에 미쳐버린 나는, 모욕당한 남성성의 원초적 본능에 눈이 멀어 짐승처럼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곧장 아내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자물쇠 또한 미리 조작해둔 덕분에 쉽게 들어갔다. 방은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나는 곧 침대 옆에 도달했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침대보가 흐트러져 있었고, 아무도 누워 있지 않았다.


“1층에 있겠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서 복도 어둠 속으로 도망쳤겠지.”


아내를 찾아 방을 나가려다, 나는 잘못된 방향—그러니까, 정확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끝이 무언가를 차고 멈췄다. 방 한쪽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내였다. 내 두 손이 곧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나는 무릎으로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단 한마디 책망도 없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를 죽을 때까지 목 졸랐다.


그 지점에서 꿈은 끝난다. 나는 과거 시제로 이 이야기를 서술했지만, 사실은 현재형이 더 어울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어두운 비극은 끊임없이 내 의식 속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확신을 얻고, 복수하며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공허해진다. 그다음에는, 더러운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이 쏟아지고, 허름한 내 옷 위로 눈이 내리고, 비참한 거리에서 바퀴가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그 거리에서 나는 가난과 하찮은 일에 얽매여 살아왔다. 햇살이 있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새가 있었다면, 그들은 노래하지 않았다.


또 다른 꿈이 있다. 또 다른 밤의 환상이. 나는 달빛이 비치는 길에 서 있다. 주변에는 그림자가 깔려 있고,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느낀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저택의 그림자 아래서, 흰 옷이 반짝이는 것이 보이고, 길 한가운데에 한 여인의 형체가 나를 마주 본다—내가 죽인 아내다! 그 얼굴에는 죽음이 서려 있다. 목에는 자국이 남아 있다. 그녀의 눈동자는 내 눈을 응시한다. 거기엔 무한한 중력이 실려 있다. 그것은 원망도, 증오도, 위협도 아니다. 단지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인식이다. 그 끔찍한 환영 앞에서 나는 공포에 질려 물러선다—그 공포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뒤덮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글자를 온전히 쓸 수가 없다. 봐라, 이 글자들이—


……


지금 나는 다시 차분해졌다. 그러나 더 이상 말할 것은 없다. 그 사건은 시작된 곳에서 끝났으니—어둠과 의문 속에서.


그래, 나는 다시 나를 제어하고 있다. 다시 '영혼의 선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휴식이 아니다. 이것 또한 속죄의 또 다른 국면, 또 다른 형태다. 내 속죄는 언제나 강도는 같지만, 양상은 달라진다. 그 다양한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이 고요함이다. 결국, 이것은 종신형일 뿐이다. '지옥행 종신형'이라니—어리석은 형벌이다. 죄수는 자기 형벌의 길이를 스스로 정할 방법이 있다. 오늘, 나의 형기가 끝난다.


그대 모두에게—내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았던 평화가 함께하길.


III

고(故) 줄리아 헤트먼의 진술 — 영매 베이롤스를 통해 전해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거의 즉시 평화로운 잠에 빠졌다. 그러나 곧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에서 깨어났다. 이 감각은, 내가 기억하는 전생의 세계에서 자주 겪었던 일이다. 그것이 무의미한 공포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남편 조엘 헤트먼은 집을 비운 상태였고, 하인들은 집의 다른 구역에서 자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한 번도 나를 불안하게 만든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공포는 점점 더 견딜 수 없이 커졌고, 마침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 꺼려졌지만 이를 억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머리맡의 램프를 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램프의 불빛은 안도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불빛은 위험을 부추기는 듯했다. 그 빛이 문 아래로 새어나가 외부에 숨어 있는 무언가에게 내 존재를 알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살아 있는 여러분들, 즉 상상 속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이여, 밤의 악의적 존재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어둠을 택하는 공포가 얼마나 끔찍한 감정인지 상상해보라.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정면으로 맞붙는 절망의 전술이다!


나는 램프를 껐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떨며 누워 있었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고, 기도하는 것도 잊은 채였다. 이 비참한 상태로, 인간들이 말하는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우리에겐 시간이란 없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것이 다가왔다—계단 위로 울리는 부드럽고 불규칙한 발소리! 느리고, 머뭇거리고, 방향을 잃은 듯한 소리였다. 내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는, 그런 점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앞이 보이지 않고, 이성 없는 악의가 다가오는 소리 같았다. 나는, 혹시 현관의 램프를 켜두었나 생각했고, 그것을 더듬으며 다가오는 이 존재가 밤의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이전에 느꼈던 빛에 대한 두려움과 모순되었지만, 어쩌겠는가? 공포란 본디 이성 없는 존재다. 공포가 들려주는 증언과 그가 속삭이는 비겁한 조언은 서로 무관하다. 이 진실을 우리는 잘 안다—공포의 영역 너머를 지나온 우리는. 과거의 장면 속, 영원한 땅거미 속에 몰래 숨어 있는 우리는, 심지어 서로에게도, 우리 스스로에게조차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외딴곳에 숨어 살고 있다. 사랑했던 이들과 말하고 싶지만 벙어리이며,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또한 그들이 무섭다.


때때로 이 무능력은 사라지고, 규칙은 깨진다.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 혹은 증오의 힘으로 우리는 그 마법을 깨뜨리고—경고하거나, 위로하거나, 벌주고 싶은 이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어떤 형상으로 보이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가장 위로하고 싶고, 가장 따뜻한 감정을 갈구하는 이들에게조차 그들을 두렵게 만든다는 것만은 안다.


부디, 한때 여성이었던 내가 저지른 이 탈선된 이야기를 용서해주길. 이런 불완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묻는 당신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들은 금지된 것, 알려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은 당신들의 언어로는 의미조차 없다. 우리는 겨우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극히 적은 부분의 언어와, 더듬는 지능을 빌려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들은 우리가 ‘다른 세계’의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같은 세계에 있었고, 지금도 그 세계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단지 우리에게는 햇빛도, 따스함도, 음악도, 웃음도, 새들의 노래도, 그 어떤 교감도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오, 하느님! 유령이 되어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웅크리고 떠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아니, 나는 공포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 ‘존재’는 방향을 바꾸어 떠나갔다. 나는 그것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급히, 마치 그것 스스로가 무언가에 놀란 듯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일어나 도움을 청하려 했다. 떨리는 손이 문고리를 찾아낸 그 순간—자비로운 하느님이시여!—나는 다시 그것이 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계단을 빠르게, 무겁게, 요란하게 올라왔고, 집 전체가 흔들렸다. 나는 방 모퉁이로 도망쳐 바닥에 웅크렸다. 기도하려 애썼고, 사랑하는 남편의 이름을 불러보려 했다. 그리고 나는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뒤로는 의식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 나는 목을 조이는 손아귀를 느꼈다—나를 뒤로 넘어뜨리는 그 무언가를 향해 힘없이 팔을 내지르며—혀는 이를 밀고 나와 쑥 내밀어졌고!—그리고 나는 이 세계로 들어왔다.


아니, 나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죽을 때 가지고 있던 지식이, 그 전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다. 지금의 이 존재 상태에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과거의 삶에 대해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는 일은 없다. 기억이라는 책에 쓰여 있는 것만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전부다. 이곳엔, 그 혼란스러운 영역을 내려다보는 고지대의 진실 따위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 골짜기’에 머물며, 그 황량한 곳에 숨어 있다. 가시덤불과 덤불 속에서 그 광기 어린, 사악한 인간들을 바라본다. 그런 과거에 대해 우리가 어찌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일은 어느 밤에 일어났다. 우리는 밤을 안다. 그때가 되면 당신들은 집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숨어 지내던 곳에서 나와 두려움 없이 예전의 집 안을 돌아볼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거나, 안으로 들어가 자고 있는 당신들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내가 그렇게도 끔찍한 방식으로 이 존재가 된 그 집 근처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우리가 증오하거나 사랑했던 이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곳에 머문다. 나는 남편과 아들에게 나의 존재, 나의 사랑, 나의 깊은 연민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고자 애썼다. 그들이 잠들어 있으면 나는 그들을 깨웠고, 혹은 그들이 깨어 있는 틈을 노려 용기 내어 다가갔으나, 그들은 내게 그 살아 있는 자의 끔찍한 눈빛을 돌렸고, 나는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그 시선에 공포를 느꼈다.


그날 밤 나는 그들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않기를 더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집 안 어디에도, 달빛 비친 정원에도 그들은 없었다. 햇빛은 우리에게서 영원히 사라졌지만, 달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득 찬 보름달이든, 가느다란 초승달이든, 밤에도, 때로는 낮에도 떠오른다.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뜨고, 여전히 진다.


나는 정원을 벗어나, 하얀 달빛 속을 따라 조용히 길을 걸었다. 목적 없이, 슬픔에 잠긴 채. 그때 갑자기 나는 사랑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놀라움에 찬 외침이었고, 그 뒤로 아들의 목소리가 안심시키려는 듯 이어졌다. 나무 몇 그루의 그림자 옆, 그들은 가까이 있었다—정말 가까이에! 그들의 얼굴은 내 쪽을 향했고, 그 중 나이 든 이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그가 나를 보았다—마침내, 마침내, 그가 나를 본 것이다! 그 인식의 순간, 내 안에 있던 모든 공포가 악몽처럼 사라졌다. 죽음의 마법은 깨졌고, 사랑이 법을 이긴 것이다! 기쁨에 미쳐 나는 외쳤다—분명히 외쳤다, “그가 봐, 그가 보잖아! 이제 이해할 거야!”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다잡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가 아름답다는 것을 인식하며, 그의 품에 안기려 다가갔다. 그를 다정한 말로 위로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주고자 했다.


그러나, 아아! 그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렸고, 눈은 사냥당하는 짐승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뒷걸음질쳤고, 결국 몸을 돌려 숲 속으로 달아나버렸다—그가 향한 곳은, 이제 나에게 알려지지 않는 세계다.


두 번 버림받은 내 아들에게는, 내가 곁에 있다는 감각조차 단 한 번도 전할 수 없었다. 머지않아 그도 이 보이지 않는 삶으로 건너올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나에게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작품 해설

『달빛 가득한 길』은 세 인물의 시점으로 같은 사건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구조를 통해, 인간 내면의 고통과 죄의식을 탐색하는 심리 스릴러이자 철학적 단편입니다. 앰브로스 비어스는 이 작품에서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루되, 종교나 형법이 아닌 개인의 선택과 감정결국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결말로 이끕니다.

인상적인 문장

  • “죄수는 자기 형벌의 길이를 스스로 정할 방법이 있다. 오늘, 나의 형기가 끝난다.”
  • “달빛은 감옥보다 더 차가웠다.”
  • “그의 발소리는 돌보다 무거웠고, 그림자보다 가벼웠다.”
  • “나는 지금, 스스로 내리는 형벌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 “세 사람의 시선이, 단 하나의 죄를 바라보고 있었다.”

Q&A

Q 『달빛 가득한 길』의 주요 주제는 무엇인가요?

속죄, 복수, 자의식의 무게입니다. 죄의 대가를 법이 아닌 감정으로 치르는 인간의 내면이 중심에 있습니다.

Q 왜 세 명의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같은 사건을 보는 관점에 따라 감정과 판단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독자에게 더 깊은 통찰을 유도합니다.

Q ‘달빛’은 어떤 의미로 쓰였나요?

빛이지만 따뜻하지 않고, 모든 것을 드러내지만 구원하지 않는 무정한 진실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이 작품의 공기를 지배하는 정서입니다.

감상 마무리

『달빛 가득한 길』은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누구도 무죄하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죄인도 아닌 이 구조 속에서, 결국 주인공은 스스로를 심판하는 자가 됩니다. 죄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자기 자신에 의해 닫힌다는 아이러니는, 독자에게 깊은 정서적 반향을 남깁니다. 달빛은 조용히 비추되, 그 빛 아래선 누구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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